맑은 개울 사슴이 건넜어도 이끼는 차분하네. 幽溪鹿過還苔靜. 어려서부터 어른들 곁에 기웃거리길 좋아하던 왕이열王爾烈이었다. 지방의 풍토와 특색을 이야깃거리로 삼았지만 마침내 나라의 큰일에 이르러 설왕설래할 때면 어린 왕이열은 귀를 쫑긋 세우고 온 마음을 다 기울였다. 어른들도 그의 비범함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시구 한 구절을 던지며 짝이 되는 구절을 읊도록 채근하는 일이 잦았다. 앞에 든 시구는 탁월한 안목으로 주위의 존경을 받던 승려 한 분이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마침 명사들을 초대하여 시회를 벌이던 이 집에 들러 왕이열을 특별히 지명하며 내놓은 시구이다. 여러 사람의 이목을 한 몸에 받으며 왕이열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 시구에 짝이 될 대련을 내놓아야 했던 것이다. 깊은 산에 구름이 덮였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