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봄, 제나라 최저崔杼가 군사를 이끌고 우리 노魯 나라 북쪽 변경을 공격했다.
여름 5월 을해일에 최저가 자기 임금을 죽였다.
<좌전左傳> '양공25년襄公二十五年'에서 앞 부분 두 문장만 가져왔다.
춘추시대, 제齊 나라 장공莊公이 대부 최저의 아내와 남몰래 정을 통했다. 이를 안 최저는 계책을 세워 장공을 죽이고 그의 배다른 동생 저구杵臼를 임금으로 세웠다. 그리고 최저 자신은 스스로 재상 자리를 차지하고 제멋대로 조정을 오로지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임금을 죽였기에 자못 두렵고 불안했다. 이 사실을 사관이 그대로 역사에 기록하면 천고에 오명을 남길 게 뻔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는 태사太史를 가만히 불러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매하고 무능한 임금이 세상을 떠났으니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겠소? 나는 임금께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하기를 원합니다. 만약 그대가 내 뜻대로 쓴다면, 내 잊지 않고 그대를 후대하겠소이다. 하지만 그렇게 쓰지 않는다면, 그대는 내가 무례하다고 원망하지 마시오!”
부드럽게 시작한 최저의 말은 끝내 차갑게 바뀌었다. 말할 것도 없이 얼굴빛도 싹 달라졌다. 게다가 칼까지 빼어들고 태사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태사는 고개를 들어 최저를 한 번 바라보고 나서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붓을 들어 죽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최저가 자기 임금을 죽였다.
최저가 발끈 화를 내며 손에 든 칼을 휘둘러 태사의 목을 내렸다.
사관은 세습되었다. 이것이 당시의 관례였기 때문이다. 최저는 태사의 동생을 불러 이렇게 일렀다.
“그대 형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에 이렇게 목을 내렸소. 이제 그대가 태사의 직책을 담당할 것인즉, 장공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하기 바라오.”
그는 태사의 주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매섭게 한 마디 덧붙였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의 끝장도 바로 이럴 것이오.”
최저는 태사의 동생이 두려움에 떨며 제 뜻을 따를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태사의 동생은 차분하게 죽간을 펼치더니 붓을 들어 이렇게 기록했다.
-최저가 자기 임금을 죽였다.
화를 참지 못한 최저가 태사의 동생까지 죽였다.
이 뒤, 그는 또 죽은 동생의 동생까지 불렀다.
“그대의 두 형이 이미 세상을 버렸소. 그래도 그대는 자기 목숨이 아깝지 않단 말이오? 형과는 달리 기록하시오, 그게 사는 길이오.”
그러나 태사의 이 동생도 정말 태연하게 대답했다.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이 사관이 마땅히 해야 할 직분입니다. 직분을 팽개치게 하느니 차라리 죽여주십시오. 제가 기록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이 기록할 것이니, 어른께서 아무리 사람의 목을 내려도 임금을 죽였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결국 이 동생도 죽간 위에 이렇게 썼다.
-최저가 자기 임금을 죽였다.
최저는 이를 북북 갈았다. 이놈을 당장 갈기갈기 찢어도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두려웠다. 수많은 백성들이 분노하여 일어서면 수습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태사로 이 양반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최저가 저지른 사건은 이렇게 사관의 ‘참 용기’가 있었기에 역사에 기록으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참 용기’ 있는 이는 거짓 앞에 결코 무릎 꿇지 않는다. 그리고 진실을 위해 제 목숨을 기꺼이 내놓는다.
‘참 용기’있는 이는 진실을 위해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당함 때문에 당하는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동참한다.
*인용한 글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二十有五年春, 齊崔杼帥師伐我北鄙. 夏五月乙亥, 齊崔杼弑其君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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