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말/10. 열째 마당 - 對

참 용기

촛불횃불 2021. 10. 8. 10:54

 25년 봄, 제나라 최저崔杼가 군사를 이끌고 우리 노魯 나라 북쪽 변경을 공격했다.

 여름 5월 을해일에 최저가 자기 임금을 죽였다. 

 

 <좌전左傳> '양공25년襄公二十五年'에서 앞 부분 두 문장만 가져왔다.

 

춘추시대 제나라 장공의 모습

 춘추시대, 제齊 나라 장공莊公이 대부 최저의 아내와 남몰래 정을 통했다. 이를 안 최저는 계책을 세워 장공을 죽이고 그의 배다른 동생 저구杵臼를 임금으로 세웠다. 그리고 최저 자신은 스스로 재상 자리를 차지하고 제멋대로 조정을 오로지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임금을 죽였기에 자못 두렵고 불안했다. 이 사실을 사관이 그대로 역사에 기록하면 천고에 오명을 남길 게 뻔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는 태사太史를 가만히 불러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매하고 무능한 임금이 세상을 떠났으니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겠소? 나는 임금께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하기를 원합니다. 만약 그대가 내 뜻대로 쓴다면, 내 잊지 않고 그대를 후대하겠소이다. 하지만 그렇게 쓰지 않는다면, 그대는 내가 무례하다고 원망하지 마시오!”

 부드럽게 시작한 최저의 말은 끝내 차갑게 바뀌었다. 말할 것도 없이 얼굴빛도 싹 달라졌다. 게다가 칼까지 빼어들고 태사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태사는 고개를 들어 최저를 한 번 바라보고 나서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붓을 들어 죽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최저가 자기 임금을 죽였다.

 최저가 발끈 화를 내며 손에 든 칼을 휘둘러 태사의 목을 내렸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붓을 들어 진실을 기록하는 제나라 사관의 모습 

 사관은 세습되었다. 이것이 당시의 관례였기 때문이다. 최저는 태사의 동생을 불러 이렇게 일렀다.

 “그대 형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에 이렇게 목을 내렸소. 이제 그대가 태사의 직책을 담당할 것인즉, 장공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하기 바라오.”

 그는 태사의 주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매섭게 한 마디 덧붙였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의 끝장도 바로 이럴 것이오.”

 최저는 태사의 동생이 두려움에 떨며 제 뜻을 따를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태사의 동생은 차분하게 죽간을 펼치더니 붓을 들어 이렇게 기록했다.

 -최저가 자기 임금을 죽였다.

 화를 참지 못한 최저가 태사의 동생까지 죽였다.

 이 뒤, 그는 또 죽은 동생의 동생까지 불렀다.

 “그대의 두 형이 이미 세상을 버렸소. 그래도 그대는 자기 목숨이 아깝지 않단 말이오? 형과는 달리 기록하시오, 그게 사는 길이오.”

 그러나 태사의 이 동생도 정말 태연하게 대답했다.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이 사관이 마땅히 해야 할 직분입니다. 직분을 팽개치게 하느니 차라리 죽여주십시오. 제가 기록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이 기록할 것이니, 어른께서 아무리 사람의 목을 내려도 임금을 죽였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결국 이 동생도 죽간 위에 이렇게 썼다.

 -최저가 자기 임금을 죽였다.

 최저는 이를 북북 갈았다. 이놈을 당장 갈기갈기 찢어도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두려웠다. 수많은 백성들이 분노하여 일어서면 수습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태사로 이 양반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최저가 저지른 사건은 이렇게 사관의 참 용기가 있었기에 역사에 기록으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참 용기있는 이는 거짓 앞에 결코 무릎 꿇지 않는다. 그리고 진실을 위해 제 목숨을 기꺼이 내놓는다.

 ‘참 용기있는 이는 진실을 위해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당함 때문에 당하는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동참한다.

 

 *인용한 글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二十有五年春, 齊崔杼帥師伐我北鄙. 夏五月乙亥, 齊崔杼弑其君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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