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衛 나라의 어떤 부부가 함께 기도를 했다. 먼저 아내가 간절히 바라며 빌었다.
“저에게 시련을 거두어 주시고 그저 삼베 일백 필만 손에 쥐게 하소서.”
그녀의 남편이 물었다.
“왜 겨우 그것뿐이오?”
이 물음에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보다 많으면, 당신이 작은마누라 들일 테니까요.”
<한비자韓非子> '내저설하內儲說下'에서 가져왔다.
본성이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은 그 일이 자기에게 미칠 이해관계부터 셈한다. 더구나 재물은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각기 다른 마음을 가지도록 부추기는 요물이다. 이 요물은 소망을 욕망으로 재빨리 바꾼다. 아니 욕망을 건너뛰어 탐욕의 키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마구 키운다.
다른 한편, 참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재빨리 짚어내는 이 여인의 지혜를 지나칠 수 없다. 사랑 없는 ‘함께’가 가져올 불행을 이 여인은 이미 알고 있다. 사랑 없는 만남은 만남 없는 사랑보다 더 불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위 인용한 글의 원문은 이러하다. 관심 있는 독자는 살펴보시라.
衛人有夫妻禱者而祝曰:“使我無故,得百束布.” 其夫曰:“何少也?“ 對曰:“益是,子將以買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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