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말/12. 열두째 마당 - 然

촛불횃불 2021. 10. 31. 20:50

 곧은길이나 질러가는 길보다 더 편리한 길은 없다. 그러나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보다 더 아름다운 길은 없다. 대체로 새롭고 독특함을 얻기 위하여 일부러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을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곁문을 내어 집안 식구들이 드나들기에 편리하도록 한다.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닫아서 아담하고 우아한 운치를 살리면서 실제 생활의 쓰임을 모두 갖추도록 했다. 

 

 『한정우기閑情偶寄』「거실부居室部」〈방사제일房舍第一〉가운데 ‘도경途徑’ 꼭지 전문을 몽땅 데려왔다.

 구불구불 곡선으로 그려진 길이 우리가 걸었던 길의 원형이다. 길은 원형을 허물고 변형으로 치닫기를 결코 소망하지 않았지만 곡선의 부드러움과 정겨움을 허문 이는 인간이었다. 길의 원형을 허물기 시작한 인간은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국경처럼 길도 직선으로 형태 변화를 시켰다. 직선으로 곧게 뻗은 길을 보면 아프리카 여러 나라 국경선을 제 마음대로 긋던 제국주의자들의 탐욕이 그들의 높은 콧대와 함께 어른거린다. 원형이 허물어진 곳에 변형이 원형인 양 자리를 잡고 원형을 큰소리로 꾸짖으며 위세를 부리기 시작한 지 하마 오래이다.

 

외지고 조용한 숲속 오솔길

 

 그러나 자로 그린 듯 앞을 향해 내지른 넓은 길은 훤히 트여 시원할 것 같지만 실상은 오히려 막막하고 답답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이들이 하나둘 생겨나더니 이제는 무리가 되어 구불구불 골목길 오솔길 자락길 고샅길 둘레길 자드락길 찾기 시작한다.

 길은 우리에게 넌지시 이른다, 걸어온 길 한번쯤은 되돌아보라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직선의 고속도로보다 나뭇잎 몸 뒤채는 소리는 물론 돌 잔등 넘어서며 노래하는 냇물 소리도 함께 들으며 걷는 숲길도 있다는 것을.

 

 徑莫便于捷, 而又莫妙于迂. 凡有故作迂途, 以取別致者, 必另開耳門一扇, 以便家人之奔走, 急則開之, 緩則閉之, 斯雅俗俱利, 而理致兼收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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