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에서 임명한 관리 유정식劉廷式은 본시 농민의 아들이었다. 째질 듯이 가난한 옆집 노옹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 젊은이와 혼인을 약속했다. 뒷날, 정식은 여러 해를 떨어져 지내며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옆집 노옹을 찾았으나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게다가 딸은 병으로 두 눈이 멀고 집안은 끼니조차 이을 형편이 못 되었다. 정식은 사람을 넣어 예전의 혼약을 다시 살리려고 했지만 그쪽에서는 여자의 병을 까닭으로 정식의 청을 물리쳤다. 머슴살이로 살아가는 집안이라며 감히 사대부와 혼인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식은 예전의 약속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물리지 않았다. 노옹이 세상을 떠났다고는 하지만 이전에 이미 약속한데다 딸이 병을 얻었다고 하여 어떻게 혼약을 저버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