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 3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두보杜甫

1. 원문 知章騎馬似乘船, 眼花落井水底眠. 汝陽三斗始朝天. 道逢麴車口流涎, 恨不移封向酒泉. 左相日興費萬錢, 飮如長鯨吸百川, 銜杯樂聖稱避賢. 宗之瀟灑美少年, 擧觴白眼望靑天, 皎如玉樹臨風前. 蘇晉長齋繡佛前, 醉中往往愛逃禪. 李白斗酒詩百篇, 長安市上酒家眠. 天子呼來不上船, 自稱臣是酒中仙. 張旭三杯草聖傳, 脫帽露頂王公前, 揮毫落紙如雲烟. 焦遂五斗方卓然, 高談雄辯驚四筵. 2. 주석 1) 知章...하지장賀知章. 벼슬이 비서감에 이름. 천성적으로 마음이 넓고 활달하여 스스로 호를 '사명광객四明狂客'이라 함. 장안에서 이백을 보자마자 '적선인謫仙人'이라 일컬으며, 그 자리에서 당장 옆구리에 찼던 금거북을 끌러 술과 바꾸더니 통음함. 첫 두 구는 하지장이 취한 뒤 말등에 올랐는데, 흔들흔들 그 모습이 배에 탄 모습과 같..

한시漢詩 2023.07.02

시동생을 향한 형수의 염량세태炎涼世態 - 소진蘇秦

1. 첫 번째 단역 제후들 사이를 오가며 이 나라 저 나라의 힘을 종횡으로 합쳐서 힘센 나라에 맞서기를 주장했던 이들을 흔히 일러 종횡가라고 한다. 이들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이가 바로 귀곡鬼谷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귀곡자鬼谷子이다. 사마천의 ‘열전’ 일흔 편 가운데 당당하게 각각 한 편씩을 차지한 ‘소진蘇秦’이나 ‘장의張儀’는 모두 귀곡자의 문생이었다. 귀곡의 위치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의견이 여럿이지만 사마천은 ‘낙양洛陽 동쪽의 제나라 땅’이라고 일렀다. 귀곡 선생 곁을 떠난 소진이 제후국의 군주를 찾아 유세를 펼쳤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가 당한 부끄러움과 욕됨을「소진열전」은 이렇게 기록한다. (소진은) 집을 떠나 여러 해 동안 유세했지만 큰 어려움만 겪고 돌아왔다. 이때 형제,..

신뢰의 중요성

의생 구竘는 진秦 나라의 명의였다. 그는 제齊 나라 선왕宣王의 여드름을 다스렸고 진秦 나라 혜왕惠王의 치질을 다루었는데 모두 다 고쳤다. 장자張子가 등에 종기가 돋자 구에게 치료를 부탁하며 이렇게 일렀다. “이 등을 나의 등이라 여기지 말고 그대 뜻에 따라 마음대로 치료해도 좋소이다.” 치료가 시작되자 그의 종기는 점점 나아졌다. 구는 물론 병을 치료하는 데 뛰어난 고수였지만 장자도 구가 마음 놓고 치료하도록 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사실 사람의 몸이나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모두 이와 같다. 반드시 다른 사람을 깊이 믿으며 권력을 마음 놓고 넘겨줘야 나라를 훌륭하게 다스릴 수 있다. (有醫竘者,秦之良醫也. 爲宣王割痤, 爲惠王治痔, 皆愈. 張子之背腫, 命竘治之. 謂竘曰: “背非吾背也,任子制焉.” 治之遂愈..

산문 마당 2022.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