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왕 2

거열車裂된 밑돌-상앙商鞅

재능이 넘치는 젊은이 위衛 나라 서얼 공자 상앙商鞅이 위魏 나라로 가서 그 나라 재상 공숙좌公叔痤를 섬긴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마음속에 품은 욕망이 남달랐던 그에게 위魏 나라는 그의 뜻을 널리 펼치는 데 더없이 좋은 나라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위나라는 전국시대 여러 나라 가운데 강국이었다. 이 나라 재상 공숙좌는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관장하는 집사의 자리에 상앙을 앉혔다. 이는 그의 능력에 대한 큰 신임이 있었기에 가능한 처사였다. 당시 위나라 군주는 혜왕, 도읍을 대량大梁으로 옮겼기에 흔히 양혜왕梁惠王으로 불리는 그는 춘추시대 군주처럼 패자를 꿈꾸는 야심만만한 임금이었다. 어느 날, 혜왕은 깊은 병으로 일어날 가망이 없는 재상 공숙좌를 찾아 이 나라를 이끌 재상으로 적합한 인물의 천거를 요청했다..

재치와 해학으로 승리한 사나이-순우곤淳于髡

1. 데릴사위 그리고 작은 키 사마천은 「맹자·순경열전」과「골계열전」두 편에서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 순우곤淳于髡을 등장시킨다. 먼저 「골계열전」부터 펼친다. 순우곤은 제나라 사람의 데릴사위였다. 그는 키가 일곱 자가 채 되지 않아도 익살스러운데다 말재주가 뛰어나 여러 차례 제후 나라에 사신으로 갔지만 굴욕을 당한 일이 일찍이 없었다. 淳于髡者, 齊之贅婿也. 長不滿七尺, 滑稽多辯, 數使諸侯, 未嘗屈辱. 순우곤 ‘열전’의 첫 번째 단락이다. 데릴사위와 작은 키, 그리고 뛰어난 말재주, 이 세 가지이다. 데릴사위. 이는 그의 이름자 가운데 ‘곤髡’과 더불어 출신이 매우 비천했음을 드러낸다. ‘데릴사위’는 춘추시대 제나라에서 시작된 풍속이다. 당시 제나라에서는 맏딸이 출가할 수 없으면 집안에서 제사를 주관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