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산책

재치와 해학으로 승리한 사나이-순우곤淳于髡

촛불횃불 2022. 4. 12. 10:00

1. 데릴사위 그리고 작은 키

 

 사마천은 맹자·순경열전골계열전두 편에서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 순우곤淳于髡을 등장시킨다. 먼저 골계열전부터 펼친다.

 

 순우곤은 제나라 사람의 데릴사위였다. 그는 키가 일곱 자가 채 되지 않아도 익살스러운데다 말재주가 뛰어나 여러 차례 제후 나라에 사신으로 갔지만 굴욕을 당한 일이 일찍이 없었다.

 淳于髡者, 齊之贅婿也. 長不滿七尺, 滑稽多辯, 數使諸侯, 未嘗屈辱.

 

 순우곤 열전의 첫 번째 단락이다. 데릴사위와 작은 키, 그리고 뛰어난 말재주, 이 세 가지이다.

 

순우곤

 데릴사위. 이는 그의 이름자 가운데 과 더불어 출신이 매우 비천했음을 드러낸다. ‘데릴사위는 춘추시대 제나라에서 시작된 풍속이다. 당시 제나라에서는 맏딸이 출가할 수 없으면 집안에서 제사를 주관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집안 운세가 불리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설령 가난하여 장가들 힘이 없으면 몰라도 보통 사람은 데릴사위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 순우곤이 데릴사위가 되었다는 사실은 바로 그의 출신이 경제적 부를 누리지 못하는 기층민이었음을 증명한다. 이는 우리 한국에서도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 한다는 속담과 맥을 같이 한다. ‘은 머리꼭지 주변의 머리카락을 밀어버리는 형벌이다. 이는 사람을 매우 깔보고 욕되게 하는 징벌이다. 이로써 그의 사회적 지위가 매우 낮았음을 알 수 있다.

 

곤형髡刑. 여성의 경우 수치와 분노로 자진하는 경우도 많았다.

 작은 키. 일곱 자가 채 되지 않는 키라면, 당시 한 자는 요즘과는 달리 23.1cm였으니, 160cm쯤 된다. 선진先秦 시대 남성의 평균 신장이 163cm라는 통계로 보아도 큰 키는 아니다. 1백 년 뒤, 천하를 통일하여 첫 번째 황제가 된 시황제가 세운 병마용의 용사들은 모두 180cm 이상이지만 이는 엄격하게 정선된 인물을 기준으로 했을 것이다. 사마천이 굳이 일곱 자가 채 되지 않는 키를 첫 번째 단락에 내세운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데릴사위과 더불어 사회적 지위는 물론 이 세상을 부딪치며 살아야 할 몸뚱이 역시 모두 온전치 못하다는 점을 내세우려는 데 뜻이 있지 않았을까? 이 점은 그의 뛰어난 익살과 말재주를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장치로서 의미가 있다.

 

2. 웅변과 침묵

 

 『맹자孟子의 첫 번째 편장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앞 편에는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 나눈 대화가 펼쳐진다. 양혜왕은 전국시대 위 나라 세 번째 군주로서 마땅히 위혜왕魏惠王이어야 하지만 그가 도읍을 양으로 옮겼기때문에 양혜왕으로 널리 불린다. 이는 상 왕조의 마지막 도읍지가 은이기에 나라 이름이 또는 은상殷商으로 불린 경우와 비슷하다이제 맹자와 양혜왕이 나눈 대화의 첫 대목만 한번 보자.

 

 맹자가 양혜왕을 알현했다. 양혜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영감님께서 천리를 멀다 않고 오셨으니 분명 우리나라에 이익이 될 만한 뛰어난 의견이 있으시겠지요?”

 이에 맹자는 이렇게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로지 인의仁義를 말씀하여야 될 것입니다. …….

  孟子見梁惠王. 王曰 : “叟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孟子對曰 :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

 

 

양혜왕

 전국시대 초기, 칠웅 가운데 강국으로서 가장 앞자리에 있었던 위나라 군주 앞에 선 맹자의 세 치 혀가 만들어내는 말에 힘이 넘친다. 어떤 권세 앞에서도 함부로 무릎 꿇지 않을 지식인으로서의 기백이 가득하다. 앞선 시대 공자가 어린아이에게 조곤조곤 은근하게 타이르듯이 이끄는 말투와는 전혀 다르다. 둘의 품성 탓일까, 아니면 두 시대가 만들어 낸 분위기 탓일까?

 맹자와 같은 시대, ‘데릴사위에다 키 작은순우곤도 어떤 식객의 주선으로 양혜왕을 두 번이나 만났다. 주위를 물리치고 두 사람만이 맞앉았으니 양혜왕도 순우곤의 재치와 지혜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순우곤은 입을 꼭 다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뛰어난 말재주로 널리 알려진 순우곤의 침묵에 양혜왕은 만남을 주선한 식객을 심히 나무랐다. 이 식객은 순우곤을 찾아가서 까닭을 물으며 따졌다. 순우곤의 대답을 들어보자. 맹자·순경열전이다.

 

 “그랬소이다. 내가 전에 왕을 뵈었을 때, 왕은 말을 쫓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고, 뒤에 다시 뵈었을 때는 왕이 음악에 정신이 쏠려 있었소.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소.”

 “固也. 吾前見王, 王志在驅逐 ; 後復見王, 王志在音聲 : 吾是以黙然.”

 

 귀 기울이지 않는 자의 귀에는 진군을 알리는 나팔소리도 들리지 않고, 마음 다해 귀 기울이는 자의 귀에는 미풍에 솔잎 흔들리는 소리도 들린다. 세 치 혀가 만들어 내는 재치와 해학으로 이름난 순우곤은 이런 이치를 진즉 알고 있었다. 세 치 혀 앞을 막아선 여러 개의 이와 두 입술을 방어벽으로 이용할 줄 아는 자에게 침묵은 금이다. 순우곤은 침묵할 때 침묵할 줄 알았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양혜왕은 그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다시 순우곤을 만났다. 둘은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혜왕은 순우곤에게 재상 자리를 주려고 했지만 순우곤은 끝내 사양했다. 순우곤은 양혜왕이 챙겨주는 네 마리 말이 끄는 멋진 수레, 비단 다섯 필, 벽옥, 그리고 황금 백 일을 받았지만 끝내 벼슬은 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맹자·순경열전에만 보일 뿐골계열전에는 보이지 않는다.

 

왕은 하필이면 이로울 것을 말씀하시오? 오직 인의가 있을 뿐이옵니다. 열변을 토하는 맹자의 모습

 어떻든 맹자는 폭포수 같이 시원스레 힘 있는 웅변을 쏟아내고서도 양혜왕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지만 순우곤은 말 한 마디 던지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서도 사흘 밤낮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고 챙겨주는 예물까지 받을 수 있었다.

 

3. 큰 것으로 큰 것 바라기

 

 기원전 349, 제나라 군주 위왕威王이 순우곤을 곁으로 불렀다. 이때, 위왕은 스물아홉 살, 순우곤은 서른일곱 살, 둘 다 피 끓는 젊은이였다. 당시 남쪽 초나라의 공격을 받은 제나라 군주 위왕은 서쪽으로 국경을 접한 조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할 셈이었다. 위왕이 조나라에 갈 사신으로서 순우곤을 택한 것은 그의 말솜씨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위왕은 먼저 조나라에 건넬 예물을 순우곤에게 내놓았다. 황금 1백 근과 네 마리 말이 이끄는 수레 열 대가 전부였다. 이를 본 순우곤이 하늘을 보고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갓끈이 몽땅 다 끊어질 정도였다. 까닭을 헤아리지 못한 위왕이 두 차례나 거듭 묻자 순우곤은 농부의 기도를 빌려 제 뜻을 드러냈다.골계열전을 펼친다.

 

제위왕

 

 “오늘 제가 동쪽에서 오는 길에 길가에서 풍년을 비는 농부를 보았는데, 돼지 발 하나에 술잔 하나 들고 이렇게 빕디다.

 -높고 좁은 밭에서는 광주리에 가득하고

  낮고 패인 밭에서는 수레에 넘치게

  온갖 곡식 풍성하게 여물어

  집안 가득 넘치게 해 주소서.

 저는 손에 든 것은 그렇게 적으면서 바라는 바는 그렇게 큰 것을 보고 그를 비웃었습니다.”

 “今者臣從東方來, 見道傍有禳田者, 操一豚蹄, 酒一盂, 祝曰 : ‘甌窶滿篝, 汙邪滿車, 五穀蕃熟, 穰穰滿家.臣見其所持者狹而所欲者奢, 故笑之.

 

 유세에 나섰다가 초나라 재상의 구슬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수백 차례 매질을 당하고 돌아온 장의張儀를 맞이한 그의 아내가 남편이 겪은 수모를 안타까워하자 그는 입을 딱 벌리고 혀는 붙어 있느냐고 물었다. 세 치 혀가 부리는 요술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순우곤도 세 치 혀가 부리는 요술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피가 튀고 창날이 번득이는 전국시대라는 시대적 상황이 이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순우곤의 세 치 혀는 부드럽지만 제 뜻을 드러내는 데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장의

 금세 알아차린 위왕은 황금 1천 일, 흰 옥구슬 열 쌍, 그리고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 1백 대로 조나라에 보낼 예물을 늘려 주었다. 순우곤은 비로소 위왕에게 작별 인사를 올리고 조나라로 떠났다. 당시 조나라 군주는 이제 막 자리에 오른 숙후肅侯였다. 숙후와 맞앉은 순우곤은 10만 정예 병사와 전차 1천 대의 도움을 얻었다. 부드러운 그의 세 치 혀가 이루어 낸 결과였다.

 사마천은 순우곤이 하늘을 보고 크게 웃자 제나라 위왕이 패권을 차지했으니 이 어찌 위대하지 아니한가!라고 찬탄했다. 이는 바로 재치와 해학 넘치는 순우곤의 부드러운 세 치 혀에 대한 찬탄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