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산책

황후의 몸종에서 숙비淑妃가 된 여인-풍소련馮小憐

촛불횃불 2022. 4. 11. 19:40

 

 후주가 총애하는 풍소련은 총명한데다 비파까지 잘 탔다. 게다가 노래와 춤에도 남달리 뛰어났다. 후주는 그녀에게 빠져 숙비로 올려 앉혔다.

 

 齊後主有寵姬馮小憐, 慧而有色, 能彈琵琶, 尤工歌儛, 後主惑之, 拜爲淑妃.

-수서隋書

 

미색에 빠지니 나라 곧 망하고,

가시나무 가득하자 슬픔이 비롯되네.

소련小憐의 아름다운 몸 가로누운 밤,

북주의 군사가 진양에 들어왔다네.

 

一笑相傾國便亡,

何勞荊棘始堪傷.

小憐玉體橫陳夜,

已報周師入晋陽.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북제2北齊二首가운데 앞부분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소련小憐이 바로 북제의 후주 고위의 후궁 풍소련馮小憐이다. 그녀는 원래 황후 목야리의 몸종이었다. 목야리가 고위에게 버림을 받은 뒤, 그녀의 신분은 한꺼번에 껑충 뛰어오르며 숙비淑妃에 봉해졌다.

 

고위와 풍소련(극중 장면)

 

 풍소련은 목야리의 몸종이었지만 눈치 빠르고 영리했다. 게다가 비파 연주에 뛰어난 솜씨를 발휘했으며 노래와 춤에도 능했다. 고위는 목야리의 몸종을 지켜보며 깊이 빠져들었다. 고위는 그녀를 숙비로 봉한 뒤 언제나 함께했다. 자리도 함께하여 앉았으며 나들이를 할 때도 같은 수레에 탔을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한 곳에 묻히기를 바랐다. 이쯤 되면, 독자는 2백 몇 년 뒤, 당나라 때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 ‘연리지되고 비익조되어 영원히 양귀비와 함께하고 싶었던 현종의 소망이 눈앞에 떠오를 수도 있을 터이다. 북제의 후주 고위는 풍소련에게 융기당隆基堂에 머물도록 했다. 이곳은 일찍이 조소의曹昭儀가 평상시 살던 곳이었다.

 

전설 속의 새 비익조

 

 조소의가 누구인가? 그녀도 후주 고위가 한때 총애하던 여자 가운데 하나였다. 꽃처럼 아름다운 용모에 비파를 잘 타기로 널리 이름을 날렸던 그녀는 행동 하나하나가 매우 고혹적이어서 고위를 금세 홀리게 만들었다. 그녀는 원래 악사로서 언니와 함께 아버지를 따라 궁중에 들었다. 궁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언니는 후주 고위에게 밉보여 사형을 당했다. 그러나 그녀는 비파 솜씨 하나로 고위의 환심을 사며 소의에 봉해졌다. 게다가 고위는 그녀를 위해 융기당을 짓기까지 했다. 한때 그녀가 받은 후주 고위의 총애는 궁중의 어떤 비빈보다 대단했다. 그러나 고위의 유모 육영훤이 그녀가 무당의 술법으로 저주를 퍼붓는다고 무함하자 고위는 그녀에게 사약을 내렸다.

 

북제의 후주 고위

 이런 조소의가 살던 곳을 풍소련이 마뜩하니 여겼을 리 없다. 그녀는 고위의 총애를 받았던 여인이 살았던 곳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샘이 솟으며 배알이 뒤틀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 사람을 불러 명령했다.

여기 바닥을 한 자 걷어내고 다른 곳의 흙으로 채워 다지시오.”

 그녀는 그런 뒤에야 융기당에 머물렀다.

 한 왕조의 멸망은 마지막 황제의 아둔함만을 원인으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마지막 황제가 영민한 데다 기백까지 넘칠 때, 그 왕조는 중흥을 맞을 수 있음을 역사는 증명한다. 쓰러져가는 상 왕조를 다시 일떠세우며 중흥을 맞은 무정이 그랬고, 봉건 사회 마지막 중흥이라 일컬어지는 청 왕조의 동치제와 광서제의 동광 중흥도 그랬다. 그러나 지혜의 작은 조각조차 없었던 고위는 곁에 가까이 두었던 여인들마저도 지혜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쩌면 지혜가 넘치는 여인을 곁에 두었을지라도 이 지혜를 받아들이기에 그의 마음에는 한 치의 공간도 없었을지 모른다. 이럴 때, 불행은 활짝 열린 문을 통해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기 마련이다.

 

북제의 강역【北齐】

 AD 576년 시월, 고위는 사냥터에 있었다. 물론 풍소련도 곁에 함께했다. 당시 국경을 넘어 침입한 북주와의 싸움으로 북제는 위급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날 이른 아침, 북제의 처지를 급히 알려야 할 전령이 말을 달려 황제의 사냥터에 이르렀다.

 “북주군이 평양성平陽城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곧 진주晋州까지 위급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전갈이 이른 아침부터 한낮까지 세 차례나 이어졌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승상 고아나굉高阿那肱이 오른손 집개손가락을 입술 중앙에 세로로 세우며 막아서곤 했다.

 “지금 황상께서는 사냥 재미에 푹 빠졌네. 그깟 변경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군사 행동이야 노상 일어나는 일 아닌가. 어찌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가!”

저녁 무렵, 구조를 요청하는 사자가 달려왔다.

 “평양성이 이미 함락되었습니다.”

그제야 고위에게 이 소식을 보고했다. 고위는 이 소식을 듣자 빨리 돌아가 원군을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풍소련이 끼어들었다.

 “폐하, 아직도 흥이 가라앉지 않았사옵니다. 한 차례만 더 몰아본 뒤 돌아가도록 하시지요.”

 

  이 위급한 상황에서 한 왕조의 황제가 해야 할 일은 빨리 궁궐로 돌아가 작전 지휘를 내리고 원군을 보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고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황제 곁에 있던 신하들도 황제의 어리석음을 일깨우지 않았다. 풍소련도 마찬가지였다. 이 위급한 순간에 짖는 개는 한 마리도 없었다. ‘총체적 난국은 예나 이제나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이들에게는 눈앞의 즐거움만 있으면 되었다. 내일 다가올 불행을 미리 셈하기엔 이들의 아둔함에 한 톨 지혜라도 들어올 공간은 한 뼘도 허락되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국경을 넘어온 북주군과 맞서 벌어진 전투로 아우성인데 고위는 북쪽으로 몸을 피하면서도 풍소련을 좌황후의 자리에 높여 앉히려고 마음먹었다. 고위는 부하에게 황후가 입을 옷을 준비하라고 명령한 뒤, 풍소련과 함께 말을 타고 멀리서 벌어지는 전투를 지켜보았다. 자기 나라 군대의 동쪽 끝 부대가 차츰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던 풍소련이 겁에 질려 소리쳤다.

 “우리 군대가 패했어요!”

 성양왕城陽王 목제파도 목소리를 높였다.

 “폐하, 빨리 떠나소서! 어서 빨리!”

 그러자 곁에 있던 고급 관원 해장奚長이 목제파를 한번 힐끗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고위를 올려보며 이렇게 일렀다.

 “일진일퇴는 작전할 때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 병사들은 질서 정연하게 싸움에 임하고 있습니다. 기도 시퍼렇게 살아 있고 죽은 자도 없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 이곳을 떠나면 또 어디로 가신단 말씀입니까! 폐하께서 한 발자국이라도 옮기신다면 사람들은 놀라 두려움에 떨며 혼란에 빠져 다시는 일떠서지 못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속히 이들을 안위하소서!”

 무위武衛 장상산張常山도 뒤쪽에서 달려오더니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폐하, 떠나시면 안 됩니다. 성을 지키는 병사들도 동요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 말을 못 믿으신다면, 폐하께서 태감을 데리고 한 번만 살펴보소서!”

 그러나 고위는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게다가 목제파는 고위를 어깨를 밀며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 말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고위는 끝내 풍소련과 함께 북쪽을 향해 후퇴했다.

이들이 홍동洪洞 변방에 이르렀을 때, 거울 앞에 앉아 얼굴 단장을 하며 자기 모습에 취하고 있던 풍소련은 깜짝 놀랐다. 말발굽 소리에 뒤섞인 함성이 요란한가 싶더니 금세 적군이 저쪽 언덕을 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말채찍을 휘두르며 다시 북쪽을 향해 몸을 피해야 했다.

 

 

북주 무제

 어차피 왕조의 멸망은 코앞이었다. 이럴 때, 붕괴를 앞당기는 이는 언제나 측근의 배반이었다. 다른 이도 아닌 북제의 우승상 고아나굉이 북주와 남몰래 내통했다. 우렁찬 밖의 힘을 막아내는 일보다 안에서 허무는 개미 한 마리의 힘이 더 힘든 법이다. 더구나 힘없는 일반 백성이 아니라 한 왕조의 내부를 너무나 잘 아는 우승상이 등을 돌리고 제 살 길 찾았으니, 바람이 불지 않아도 등불은 꺼지게 되어 있었다. 고위가 자루에 황금을 하나 가득 담아 말안장에 올렸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열 필이 넘는 말이 이들을 태우고 달렸지만 더 이상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관문을 열고 북주의 군대 앞에 항복한 이는 이미 그들과 내통하던 고아나굉이었다.

북제는 이렇게 멸망했다. 풍소련은 고위와 함께 장안으로 압송되었다. 고위는 북주의 무제 우문옹에게 간절하게 청했다.

제발 풍소련은 제게 돌려주소서!”

우문옹이 비웃듯이 껄껄 웃으며 내뱉었다.

내겐 천하가 벗어놓은 신발인데 그까짓 계집 하나쯤이야!”

 우문옹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풍소련을 고위에게 하사했다.

 그러나 우문옹은 고위를 그냥 두지 않았다. 얼마 뒤, 고위의 목을 내렸던 것이다. 우문옹에게 풍소련은 한낱 전리품에 지나지 않았다. 우문옹은 풍소련을 다시 대왕代王 우문달宇文達에게 내렸다. 우문달은 풍소련을 제법 총애했던 모양이다. 진즉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우문달의 후궁 이씨와 나누어가질 수 없는 우문달의 총애를 놓고 목숨까지 내걸고 다투기도 했지만 세상은 또다시 기우뚱거리고 있었다. 한 번 기울기 시작한 여인의 운명도 따라서 기우뚱거리기 시작했다.

 

수문제 양견

 AD 581, 수문제隋文帝 양견楊堅이 북주를 뒤엎고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고 수 왕조를 세우자 풍소련은 또다시 포로의 몸이 되었다. 양견은 풍소련을 우문달의 후궁 이씨의 오라비 이순李詢에게 내렸다. 이순은 풍소련에게 결이 거친 무명옷을 입힌 뒤 곡식 빻는 일을 시켰다. 풍소련은 이제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가 얻은 전리품은 인간도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이순의 어머니는 일찍이 풍소련이 자기 딸을 못살게 굴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풍소련에게 걸핏하면 매질을 하며 분풀이를 했다. 풍소련은 결국 제 목숨 스스로 끊으며 파란만장한 한평생을 끝냈다. 남자의 총애만 받으며 영화를 누렸던 여인이 큰 어려움 앞에서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자진뿐이었다.

옥체횡진玉體橫陳은 고위와 풍소련이 만든 성어이다. 앞에서 보인 이상은의 시에는 소련小憐의 아름다운 몸 가로누운 밤이라는 구절이 있다. 풍소련의 피부가 얼마나 투명한지 건드리면 그대로 터질 것 같았고, 숨을 내쉴 때면 향내가 진동했으며, 몸매는 굴곡이 뚜렷했다. 고위는 대신들과 나랏일을 의논할 때에도 풍소련을 품에 안거나 무릎에 앉히곤 했다. 이 때문에 대신들은 얼굴이 붉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고위는 걸핏하면 이렇게 말했다.

 “혼자 즐기기보단 여럿이 함께 즐기는 게 낫지!”

 그녀의 옥처럼 말끔한 몸매를 세상 남자들이 다 감상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를 굳게 믿은 고위는 풍소련의 알몸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갖가지 자세를 보이도록 했다. 이렇게 하여 조당에 나온 대신들에게 풍소련의 알몸을 감상하게 했던 것이다. 대신들은 줄을 지어 이 모습을 아름다운 풍경을 앞에 둔 것처럼 감상했다. ‘가로 누운 미인의 몸을 가리키는 옥체횡진은 이렇게 탄생했다.

 

달콤한 웃음은 군왕이 처리해야 할 일도 잊게 만들고,

미녀는 몸에 군장을 걸쳐도 군왕 눈엔 아름다워라.

진양은 이미 함락되었으니 돌아보지 말고,

한 번만 더 사냥 몰이하자 군왕에게 청하네.

 

巧笑知堪敵萬幾,

傾城最在著戎衣.
晋陽已陷休回顧,

更請君王獵一圍.

 

이상은

 

이상은의 북제2가운데 뒷부분이다. 말할 것도 없이 군왕은 후주 고위, ‘미녀는 풍소련이다. 또 하나, 원문에 보이는 경성傾城은 이연년이 서한의 무제 앞에서 불렀던 가인곡佳人曲에서 나라 기우뚱하게 만드는 아리따운 여인을 비유한 바로 그 경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