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 무정武丁은 꿈에 성인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열說이라고 했다. 날이 밝자 무정은 꿈에서 만났던 성인의 형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여러 신하와 많은 관리들을 두루 살폈다. 그러나 이 성인을 닮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리하여 여러 관리들을 민간으로 보내 두루두루 찾게 했다. 마침내 부험傅險에서 열을 찾아냈다. 당시 열은 공교롭게도 징역을 사느라 부험에서 길 닦는 일을 하고 있었다. 파견되었던 관리가 열을 데리고 무정 앞에 나타났다. 무정은 바로 이 사람이 열이라고 말했다. 열을 찾고 나서, 무정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야말로 훌륭한 성인임을 안 무정은 열을 가까이 두고 재상의 자리에 앉혔다. 은나라에는 멋진 정치가 펼쳐졌다. 이리하여 부험이라는 지명을 써서 열의 성으로 삼고 부열傅說이라 불렀다.
武丁夜夢得聖人, 名曰說. 以夢所見視群臣百吏, 皆非也. 於是乃使百工營求之野, 得說於傅險中. 是時說爲胥靡, 築於傅險. 見於武丁, 武丁曰是也. 得而與之語, 果聖人, 擧以爲相, 殷國大治. 故遂以傅險姓之, 號曰傅說.
-『사기史記』「은본기殷本紀」
하늘이 언제 있었나,
입 있는 이 모두 모른다네.
어진 이 죽었다고 누가 그랬나,
지금 부열성 되었는데.
天公何時有, 談者皆不經.
誰道賢人死, 今爲傅說星.
부열성은 여름밤 남쪽하늘 지평선 바로 위에 낮게 깔리는 별자리 전갈자리 가운데 하나로 3등성이다. 당나라 때 시인 교연皎然의『문천問天』은 죽었지만 죽지 않고 ‘부열성’으로 부활한 부열傅說을 노래한다. 부열은 상 왕조 무정 때 재상의 자리에 올라 선정으로 나라에 평화를 가져오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무정중흥’을 실현한 군주 무정에게는 뛰어난 지략과 큰 담력을 가진 왕비도 있었지만 이에 못잖은 훌륭한 재상 부열도 있었다.
무정이 부열을 찾아 재상 자리에 앉힌 이야기는 선진 시기에도 이미 널리 알려졌다. 훌륭한 임금이 지모와 덕을 두루 갖춘 인재를 찾는 데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은 본보기가 되는 이 이야기의 얼개는 후세에도 여러 형태로 반복되었다. 꿈이나 점괘가 이런 이야기 한 가운데 들어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는 예도 동서에 두루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무정이 부열을 발탁하는 데도 어김없이 꿈이 주요 수단으로 등장한다.
상 왕조가 여러 번의 천도 끝에 마지막 도읍으로 삼은 곳은 은이었다. 상 왕조 스무 번째 군주 반경이 이를 주도했다. 당시 나라는 쇠할 대로 쇠한 상태였다. 뒤를 이어 군주의 자리에 오른 소신과 소을을 거쳐 무정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상 왕조 중흥을 이루며 나라의 곳간도 푸짐해졌다. 무정은 자리에 오른 뒤 은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굳게 다짐했다. 그러나 그를 곁에서 도와 큰일을 처리할 어진 신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이가 그를 찾아왔다.
“저는 한낱 죄수일 뿐입니다. 제 성은 부傅요 이름은 열說입니다. 저를 보시면 옥에 갇힌 죄수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아니, 이 사람아, 좀 더 가까이 와 보시게나.”
무정이 소리를 높이며 손을 뻗어 가까이 가려는데 그만 눈이 번쩍 뜨였다. 꿈이었다.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무정은 가만가만 자기가 방금 꾼 꿈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성이 부傅라고 했겠다. 이건 보좌한다는 뜻을 가진 보補와 소리가 비슷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름은 열說이라 했지, 그럼 이건 기쁘고 즐겁다는 뜻이니 열悅과 같지 않은가? 나를 보좌하고 백성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인물이 분명해.’
날이 밝았다. 무정은 당장 화공을 곁으로 불러들였다.
“내가 말하는 대로 이 인물의 형상을 그리시오.”
무정은 꿈속에서 만났던 부열의 모습을 화공에게 그대로 일렀다. 이제 화공이 그린 형상에 따라 나라 안 골골샅샅 다 뒤져서 이 사람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결국 부암傅岩에서 ‘열說’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를 찾았다. 죄수였다. 화공이 그린 화상 그대로였다. 열은 본래 재능이 넘치는 현인으로서 부암에서 오랫동안 은둔 생활을 했다. 그러나 궁핍한 생활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제 몸을 망가뜨리며 북해北海 부근의 감옥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곳에서 성기고 굵은 삼베옷을 걸치고 발목에는 족쇄를 차고 성을 쌓는 일을 하며 거친 밥 한 술로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부암은 원래 우虞와 괵虢 사이에 위치한 지방으로 교통의 요지였다. 그런데 걸핏하면 계곡의 물이 범람하여 길을 망가뜨리곤 했기에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동원하여 무너진 축대를 쌓고 망가진 길을 보수했다. 사실 부열은 이곳에 사는 은사로서 한 그릇 밥을 위해 죄수들과 함께 이 일에 나섰다는 의견도 있다.
어떻든 부열은 무정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와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은 무정은 기쁨으로 가슴이 떨릴 지경이었다. 분명 꿈속에서 만났던 바로 그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재상 자리를 줄 것인즉, 천하의 모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시오.”
과연 부열은 무정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고 근본에 어긋나지 않은 방책을 내놓으며 상 왕조 중흥에 큰 힘을 보태었다. 무정은 부열을 진심으로 신뢰하여 그의 말이라면 하나도 물리치지 않고 따랐다. 부열의 간언에 따라 왕실에서부터 먼저 수술의 칼날을 들이대어 부패한 관리를 혼내며 본때를 보였다. 물론 은근히 저항하며 버티는 이들이 없었을 리 없다. 그러나 무정은 부열의 보좌를 받으며 큰 힘으로 개혁을 밀고 나갔다. 부열도 많은 이들의 여망을 저버리지 않고 온갖 책략을 내놓으며 자신이 쌓아온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이제 조정 안팎은 정연하게 질서가 잡혔다. 부열은 나라 안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자 주변 국가와의 관계도 원만하게 개선해 나아갔다. 감히 국경을 넘보며 집적거리는 이웃은 과감하게 응징했다. 마침내 나라는 부강해졌고 국력은 다시 일떠섰다. 동방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꿈을 이루려면 꿈을 꾸어야 한다. 꿈도 꾸지 않는 자가 어떻게 꿈을 이루겠는가? 상 왕조 550여 년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나라로 이끌었던 무정도 약할 대로 약해진 은상을 걱정하며 이루어야 할 나라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꿈꾸었을 게 분명하다. 자신을 곁에서 힘 있게 보좌할 재상의 존재도 머릿속에 그렸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권력을 더 키우기 위하여 기회만 엿보고 있을 귀족들의 존재는 언제나 눈엣가시였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큰 힘을 가진 신의 존재에 의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신탁을 받은 이, 곧 무당이나 점복하는 이를 찾아야 했을 것이다. 간밤에 꾼 꿈을 해석하는 이는 언제나 따로 있었다. 무당이나 점복하는 이도 군주 본인의 일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이들이 내놓는 해몽이나 점괘는 신통함과 영험함을 얻기에 더 적합했을는지 모른다.
무정이 군주의 자리에 오르기 훨씬 전, 선왕 소을은 아들 무정을 민간으로 보내 일반 백성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이 당하는 고통과 질곡을 몸소 체험하도록 했다. 소을이 세상을 떠난 뒤 자리에 오른 무정은 쇠락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게 가장 큰 꿈이었다. 그러나 이미 썩을 대로 썩은 귀족들은 그들이 진즉 차지한 부귀와 영화를 쉽사리 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세 해 동안 입을 열지 않고 앞뒤를 살피던 무정이 꿈에 본 인물을 화공에게 그리게 했으니, 이는 어쩌면 그가 민간에 있을 때 만났던, 아니면 그와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귀었던 ‘어진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꿈의 신통함과 영험함을 빌려 귀족들의 저항을 막으려는 의도라고 해석하면 자못 그럴 듯하다.
과연 부열은 상 왕조 스물세 번째 군주 무정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았다. 『상서尙書』「상서商書」〈열명說命〉상․중․하 세 꼭지는 모두 부열이 중심인물이다. 그 가운데 군주 무정을 보좌하며 올린 말 가운데 지금도 사람들 입에 널리 오르내리는 구절이 여럿이다.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바르게 켤 수 있고, 임금은 간언을 따르면 성군이 될 수 있습니다. (木從繩則正, 后從諫則聖)
간언에 귀 기울이지 않다가 나라를 망가뜨린 군주를 역사에서는 수도 없이 찾을 수 있다. 이와는 달리 간언에 귀 기울이며 잘못을 고쳐 나라를 바르게 이끈 성군도 있다. 이들은 역사의 무대에 부활한 모습으로 영광을 차지한다. 상나라 마지막 군주 주紂가 숙부 비간比干의 충심어린 간언을 물리치다 나라를 망가뜨린 일은 앞의 예이고,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위징의 간언을 받아들이며 태평성세를 이룬 일은 뒤의 예이다.
옛적 역사를 보면 권력을 손에 쥔 자는 탐욕에 빠져 자신은 말할 것도 없이 나라를 구렁에 빠뜨리는 일이 잦았다. 이런 점은 지금이라고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권력을 손안에 거머쥔 자가 이겨야 할 적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남을 이기려고 용을 쓰기보다 자신을 절제하며 통제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할 터이다. 권력을 한 손에 움켜쥔 군주가 올곧은 이의 직언을 물리치며 ‘눈총’을 보낸다면 자기의 몰락을 뻔히 내다보면서도 쉬지 않고 바른말을 올릴 이는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자기가 온힘을 다해 사랑해야 할 백성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배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안타까운 상황이라면, 군주는 올이 성근 빗으로 머리 빗으며 뛰어나와야 할 일이다. 그깟 머리쯤이야 손가락빗으로 빗으며 컨트롤 타워로 뛰어간다고 손가락질할 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도 머리 손질하는 군주에게 직언을 올리는 부열 같은 신하가 없다는 데 있다. 기우는 나라는 항상 그랬다.
“그대 말이라면 내 꼭 실행하리다. 그대의 간언이 없었더라면 내 애써 할 수 없었을 것이외다.”
군주 무정의 이 말에 부열이 내놓은 대답은 이랬다.
-그것을 아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는 게 어렵습니다.
(非知之艱, 行之惟艱.)
부열의 곧은 기개는 그야말로 거침이 없다. 이도『상서尙書』「상서商書」 〈열명說命〉에 나오는 일화이다. 뒷날, 사람들은 중국 최초의 성인으로 부열을 꼽는 데 전혀 머뭇거림이 없다. 거의 700년 뒤, 춘추시대 말엽, 노魯 나라의 공자孔子는 부열의 뒤를 이은 성인으로 어깨를 나란히 한다.
어떻든 이런 군주에다 이런 재상이 있는 나라의 백성은 참으로 행복할 것 같다. 백성의 입장에서도 죽어서 가는 천국보다 살아서 이룩하는 천국이 훨씬 값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부열이 걸었던 길을 오늘도 많은 이들이 따랐으면 좋겠다. 그러면 넓어진 길에 평화가 넘칠 것이다. 희망도 그 땅에 언제나 가득할 것이다.
-사실 세상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다니는 이가 많으면 바로 길이 된다.
(其實地上本沒有路, 走的人多了, 也便成了路.)
루쉰魯迅의 단편『고향』의 마지막 구절이다. 나는 원문의 이 길 ‘노路’를 ‘도道’로 바꾸어 마음속에 새겨도 좋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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