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산책

음악으로 평화 이룬 연주가-종의鍾儀

촛불횃불 2022. 3. 31. 18:58

 나라 군주 경공景公이 군대 안의 곳집을 시찰하다가 종의를 보자 곁에 있던 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남쪽 지방의 모자를 쓴 저 죄수는 어떤 이인가?”

 이 물음에 곁에 있던 관리가 대답했다.

 “나라에서 바친 초나라 죄인이옵니다.”

 경공이 그를 풀어주며 곁으로 불러 위로했다. 종의는 머리를 조아리며 두 번 절을 올렸다. 경공이 초나라에 있는 그의 겨레붙이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악관이었습니다.

 그러자 경공이 다시 물었다.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겠구려?”

 

 晉侯觀于軍府, 見鍾儀, 問之曰 : “南冠而縶者, 誰也?” 有司對曰 : “鄭人所獻楚囚也.” 使稅之, 召而弔之. 再拜稽首. 問其族, 對曰 : “泠人也.” 公曰 : “能樂乎

 『좌전左傳』「성공9成公九年

 

 

옛적에 공자께서 진에 계실 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탄식하셨지.

종의鍾儀는 진 나라 감옥에 갇혀 초 나라 가락 연주했고,

장석庄舄 나라 큰 벼슬했지만 월 나라 사투리 썼지.

사람마다 고향을 그리니,

낮은 지위 높은 지위 어찌 두 마음이랴!

 

昔尼父之在陳兮,

有歸歟之嘆音.

鍾儀幽而楚奏兮,

庄舄顯而越吟.

人情同于懷土兮,

豈窮達而異心!

 

 동한 말기, 문학으로 이름을 날린 건안칠자建安七子가운데 하나였던 왕찬王粲등루부登樓賦가운데 한 부분이다. 부분으로 제시된 이 작품 가운데 등장한 세 인물 중 공자는 한국 독자들에게 한껏 널리 알려진 분이지만, 나머지 두 인물은 낯설다. 두 인물 가운데 전국시대를 살았던 장석은 원래 월나라 출신이지만 초나라로 와서 벼슬을 한 인물이었다. 초나라에서 큰 벼슬을 하면서도 고향땅 월나라 사투리를 잊지 않았던 모양이다

 

왕찬

 종의는 이보다 앞서 춘추시대를 살았다. 역사에는 그의 생몰 연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없지만, 그의 행적에 초나라 공왕共王 때 이 나라 운읍鄖邑의 행정장관이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대략 기원전 600년 전후를 살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역사는 가장 이른 시기의 칠현금 연주자로 종의를 기록했다. 이로부터 세세대대로 그의 집안은 궁중에서 칠현금을 연주하는 악사로 이름을 날렸다.

 초나라 공왕 7(기원전 584), 이 나라 영윤令尹 자중子重이 군사를 이끌고 정 나라를 공격했다. 종의도 이 싸움에 따라나섰다. 스스로 광대라고 자청해 온 그의 불행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이 싸움에서 초나라 군대는 참패했고, 종의는 포로로 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주위의 여러 제후들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정나라 편을 들었던 것이다. 정나라의 공중共仲과 후우侯羽는 초나라 군대를 에워싼 채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이 싸움에서 패한 초나라는 결국 무릎을 꿇으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포로로 잡은 종의를 진 나라에 넘겼다. 포로로 잡힌 종의는 진나라 군중 곳집에 수감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나라 군주 경공景公이 군중 곳집을 직접 둘러보며 자세히 살피러 나왔다가 종의를 보고 곁에 있던 이에게 물었다.

 

종의

 

저기 저 양반, 남쪽 지방 모자 쓰고, 남쪽 지방 옷 입은 저 양반은 누구인가?”

곳집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이가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정나라에서 우리에게 올린 초나라 포로입니다.”

이를 들은 경공이 이렇게 일렀다.

저 양반을 풀어주게. 그리고 내 앞으로 데려오게.”

종의는 경공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몇 번이나 조아리며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래, 그대는 초나라에서 무슨 일을 했소?”

악관樂官이었습니다.”

 

연주하는 종의

 

경공이 종의의 대답을 듣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겠구려?”

음악 연주는 선친의 임무였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다른 것을 익힐 수 있었겠습니까?”

종의가 칠현금에 손을 얹고 뜯기 시작했다. 이를 듣던 경공이 눈을 지그시 감고 귀를 기울였다. 종의가 연주하는 곡은 남쪽 지방 악곡이었다. 칠현금에 손을 얹고 줄을 타면서 종의는 눈물을 비 오듯이 흘렸다. 칠현금 뜯는 손가락을 통해 울리는 고향의 소리가 한껏 쌓였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했던 것이다. 게다가 전쟁에 패한 초나라의 운명이 감정을 더욱 복받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한참을 지켜보던 경공이 종의의 모습을 넌지시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

그대 초나라 군왕의 인품은 어떤지 궁금하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종의가 대답했다.

그건 쇤네가 알 수 있는 게 아니옵니다.”

그러나 경공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재우쳐 물었다.

그래, 그대가 아는 바 그렇게 없단 말이오?”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종의는 눈빛으로 대답을 재촉하는 경공을 보며 입을 열었다.

 

진경공

 “그분께서 태자였던 시절, 왕실의 자제를 지도하는 관리가 그분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이른 아침에는 영제嬰齊와 공무를 상의했으며, 저녁에는 또 다른 이에게 가서 배움을 청했습니다. 이 밖에 다른 것은 알지 못합니다.”

진나라 군주 경공景公은 이 일을 범문자范文子에게 빠지지 않고 다 말했다. 군주 경공의 말을 한 마디도 빠지지 않고 다 들은 범문자가 이렇게 아뢰었다.

 “참으로 군자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직관職官을 말했다니 그가 근본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고, 칠현금으로 연주한 곡이 자기 나라 음악이라니 옛것을 잊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태자를 말할 때는 사심이 없었습니다. 또 두 신하의 이름을 터놓고 말함으로써 자기 군왕을 존경하는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근본을 버리지 않았으니 인덕仁德을 이를 만하고, 자기 나라를 잊지 않았으니 신덕信德을 이를 만합니다. 게다가 사심이 없으니 충덕忠德을 이를 만하고, 자기 군왕을 존경하니 민덕敏德을 이를 만합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범문자가 다시 입을 열어 이렇게 마무리했다.

 

진의 대부 범문자

 

 “인덕으로 일을 처리하고, 신덕으로 그것을 굳게 지키며, 충덕으로 그것을 완성하고, 민덕으로 그것을 널리 펼쳐 쓰면 아무리 큰일도 능히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이 양반을 석방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후하게 접대하여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 우리 진나라와 우호를 다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종의를 사덕공四德公이라 일컫게 된 건 바로 이때부터였다.

 넘치는 그리움을 고향땅 악곡으로 연주하며 눈물을 쏟은 종의를 바라보는 군주와 범문자의 눈길도 넉넉하고 푸근하여 사람의 정이 가득하다. 칼날 번득이고 피가 튀는 싸움터의 찬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했기에 진나라와 초나라는 평화에 이를 수 있었다. 자기 조국 초나라로 돌아온 종의가 진나라 군주의 간절한 뜻을 지나치지 않고 싸움을 그칠 것을 강력히 건의했고, 초나라 군주는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진이 패권을 차지하던 때의 형세도

이로부터 12백여 년이 지난 당나라 초기, 초당 사걸初唐四傑 가운데 하나인 양형楊炯화유장사답십구형和劉長史答十九兄에서 종의의 칠현금과 서한의 애국자 소무蘇武의 충절을 함께 노래했다. 이 작품 가운데 극히 작은 한 부분을 여기 보인다.

 

종의의 칠현금 연주 아직 끝나지 않았고,

소무의 절의 여전히 새롭네.

봉록 받는다고 어찌 죽음을 마다하며,

명성 날린다며 제 몸을 돌보았을라.

 

鍾儀琴未奏, 蘇武節猶新.

受祿寧辭死, 揚名不顧身.

 

 종의가 칠현금 연주에 담았던 그리움엔 평화가 강물처럼 흐른다. 이 평화의 강물이 지금 이 땅에도 막힘없이 흘렀으면 참 좋겠다. 제 맘에 들지 않는다고 그리움 담아 평화를 연주한 음악가의 작품을 조각조각 칼질하는 것도 모자라 페인트 붓으로 마구 색칠까지 했던 역사는 이제 끝나야 한다. 종의의 모습에 겹쳐 한 많은 삶을 살았던 작곡가 윤이상을 떠올리는 건 상상의 지나친 비약일까? 이 땅의 바람이 그의 키를 높였을 터, 그도 어찌 이 땅 고샅길을 꿈엔들 잊었으랴. 그의 꿈도 하나 되는 한반도였을 것이고 평화가 온누리에 가득한 세상이었을 것이다.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또 하나, 종의와 겹쳐 지금 이 땅의 다문화 정책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다문화 정책이라는 깃발을 높이 휘날리며 우리 문화 동화 쪽으로 물 끌어들이는 길을 열심히 닦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한낱 기우에 그치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떻든 나는 제 고향 떠나 멀리 이 땅에 온 이들이 부르는, 또는 불러야 할 노래에 귀 기울이며 함께할 때 평화는 강물처럼 온 누리에 가득하게 되리라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