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의 문제가 꿈에 하늘로 오르려고 했지만 오를 수 없었다. 이때, 황두랑이 그를 뒤에서 밀어 하늘로 오르도록 해 주었다. 문제가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살피니 옷의 등 뒤로 띠를 맨 곳의 솔기가 터져 있었다. 꿈에서 깬 문제가 점대漸臺로 가서 꿈속에서 자기를 하늘로 밀어올린 이를 남몰래 찾았다. 그런데 등통의 옷 뒤 솔기가 터졌는데, 꿈에서 본 그대로였다.
孝文帝夢欲上天, 不能, 有一黃頭郞從後推之上天, 顧見其衣裻帶後穿. 覺而之漸臺, 以夢中陰目求推者郞, 卽見鄧通, 其衣後穿, 夢中所見也.
-『사기史記』「영행열전佞幸列傳」
엄릉의 가난뱅이 등통이 굶어죽었네,
황제께서 어찌 도울 힘이 없었으랴.
대장부 아직 이루지 못했다 내치지 말게,
권세에 빌붙기 굳센 기상 버리네.
鄧通餓死嚴陵貧,
帝王豈是無人力.
丈夫未達莫相侵,
攀龍附鳳損精神.
중국 역대 황제들은 늙지 않고 오래 살려고 여간 안달한 게 아니었다. 이런 점은 여염의 백성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게다가 주변의 온 나라가 자기에게 고개 숙이며 찾아와 무릎 꿇고 경배하는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 특별히 한나라 때 황제들은 하늘에 올라 신선이 되는 꿈을 하루도 꾸지 않는 날이 없었다. 서한의 문제文帝도 그랬다.
어느 날 밤, 문제는 양팔로 훨훨 날개 치며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 한 발자국쯤만 더 오르면 바로 하늘이었는데, 아무리 애를 쓰며 더위잡아도 더 오를 수가 없었다. 급한 마음에 허둥지둥 안간힘을 쓰는데 어떤 이가 뒤에서 천천히 위로 밀어주는 게 아닌가. 언뜻 뒤돌아보니 빼어난 자태며 아름다운 용모가 여자처럼 예쁜 소년이었다. 문제는 이 소년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입을 여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만 깜짝 소스라치며 잠에서 깨었다. 꿈이었다.
‘분명 이 소년이 궁전 안에 있을 터, 내 꼭 만나야 할지니라.’
문제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 곁을 지나는 이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꿈에 본 이 소년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꿈속에서 본 이 소년과 그대로 닮은 이를 만났다. 그뿐만 아니라 이 젊은이가 입은 윗옷 뒤쪽 솔기도 한 뼘쯤이나 타진 상태였다. 꿈속 그 소년도 그랬던 것이다.
“그대 이름을 한번 말해 보시오.”
“등통鄧通이옵니다.”
문제는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등鄧’은 ‘등登’과 음이 같으니 ‘통 通’과 합하여 하늘로 오르는 길이 막힘없이 원활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피니 그날 밤 자기를 하늘에 오르도록 뒤에서 밀어준 바로 그 소년이 분명했다.
바로 이 소년이 앞의 시에 등장하는 등통이다. 물론 이 시는 이로부터 몇 백 년 뒤 당나라 때 허작許碏이 읊은『제남악초선관벽상題南岳招仙觀壁上』 중 한 부분이다. 사마천은『사기』「영행열전佞幸列傳」에서 등통을 이렇게 평가했다.
-하지만 등통은 별다른 재능이 없었기에 훌륭한 선비로 추어올릴 수도 없었다. 등통은 단지 일처리를 조심스럽게 하며 황상의 비위를 맞추며 아첨할 따름이었다.
황제의 꿈속에 등장하여 하늘로 올라가려는 황제의 꿈을 이루게 만든 등통은 이제 거칠 게 없었다. 황제가 모든 권력을 손안에 넣고 행사할 수 있었던 시대에 황제의 말 한 마디는 그대로 법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상금을 내리고 상대부上大夫라는 높은 벼슬도 안겼다. 사실 그가 가진 재주를 굳이 찾으라면 노를 잡고 배 젓는 일 하나밖에 없었다. 그의 아버지 등현鄧賢는 딸 셋 끝에 낳은 이 아들을 금이야 옥이야 귀히 여기며 온갖 정성을 기울여 공부를 시켰지만 말 타고 사방을 내달으며 놀기만 즐겼기에 이름을 ‘통通’이라 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물놀이를 즐기고 물고기 잡는 데 정신을 쏟았다. 약관의 나이가 되자 아버지는 등통에게 책을 읽혀 봤자 별 성과를 거둘 게 없다고 판단하고 상아대로 배 젓는 데 솜씨를 발휘하도록 힘을 기울였다. 나중에 장안으로 올라온 등통은 배 젓는 솜씨를 인정받으며 황궁의 부름을 받아 황두랑黃頭郞이 되었다.
누런 색깔의 두건을 머리에 두르고 배 젓는 일에 종사했기에 붙여진 황두랑이라는 직책은 정말로 하잘 것 없는 자리였다. 그런 등통이 하루아침에 어마어마한 녹봉에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높은 벼슬까지 받았다. 등통은 남의 눈에 띌 만한 재주가 없었다고 하지만 황제의 꿈속으로 달려갈 수 있는 희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로부터 황제의 굄은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것뿐이 아니었다. 그는 황제의 은총에 보답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황제의 환심을 살 만한 일이 무엇일까. 앉으나 서나 이 생각뿐이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면 묘안이 떠오르는 게 예나 이제나 두루 통하는 세상의 이치이다.
때마침 문제는 몸에 생긴 종기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옛적에 종기는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었던 병 가운데 하나였다. 등통은 황제가 당하는 고통을 재빨리 알아챘다. 언제나 황제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입을 대고 피고름을 알뜰히 빨아주었다. 역한 냄새에도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구려.”
황제는 진심으로 감동하여 어쩔 줄 몰랐다. 며칠 뒤, 황태자 유계劉啓가 문안 차 들렀다. 황제는 옷을 내리고 황태자에게 피고름을 빨게 했다. 어떻게 명령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 감히 거역할 수 없었던 황태자는 이마를 잔뜩 찡그린 채 잠자리가 꼬리로 수면을 살짝 치고 날아가듯이 입을 대었다가 그만 구역질을 하며 밖으로 달려 나가 토하기 시작했다. 황태자 곁에 있던 어떤 이가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등통의 음험한 계략이 분명하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황태자는 이를 갈며 다짐했다.
‘내 언젠가는 이놈의 목을 내리고 말 것이니라.’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그렇지만 특별히 황궁 안에는 언제나 남을 해치기 위하여 사실을 왜곡하는 이가 많았다. 속임수를 써서라도 그 사람을 넘어뜨리고 그 자리에 자기가 앉아 권세를 부리며 부귀와 영화를 누리려고 했다. 등통을 모략한 인물도 언젠가 황태자가 큰 권력을 차지하는 날 자기도 권력의 한 조각을 입에 물 생각을 했음이 분명하다.
최고 권력을 한 손에 쥔 황제도 앞날이 궁금했다. 게다가 시정의 평범한 이들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걸핏하면 점쟁이를 찾았고 관상쟁이를 곁으로 불렀던 것도 가슴을 시도 때도 없이 압박하는 불안 때문이었을 것이다. 등통을 한껏 총애했던 문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양반은 장차 가난으로 굶어죽을 상이옵니다.”
문제의 부름을 받은 관상쟁이가 등통의 관상을 보고 내놓은 말이었다.
“말도 안 되오. 내가 있는데 어떻게 등통이 굶어죽는단 말이오?”
문제는 사천 지방의 구리 광산을 등통에게 내렸다. 그리고 이곳에서 구리를 채굴하여 동전을 주조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등통이 만든 ‘등통전鄧通錢은 당시 법정 화폐와 똑같이 유통되었다. 그로부터 등통에게는 대단한 권세가 따라붙었고 큰돈이 끝 간 데 없이 쌓이기 시작했다.
분수를 헤아릴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이는 언젠가 제 눈앞에 닥칠 화를 내다보고 대처할 줄 안다. 그러나 등통은 그러지 못했다. 한번 뜬 해는 지지 않고 천년만년 하늘 한복판에 떠 있을 줄만 알았다. 기원전 157년, 등통을 곁에 두고 온갖 사랑을 다 주었던 문제가 세상을 떠났다. 문제는 등통에게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태양이었다. 이 태양이 졌으니 등통도 어둠을 맞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문제의 뒤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이는 황태자 유계, 바로 한경제漢景帝였다. 아버지와 함께 ‘문경의 치세’를 이루며 태평성대를 이룬 인물로 높임을 받고 있지만 그도 눈엣가시를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먼저 등통의 관직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여기에 더하여 제멋대로 동전을 주조했다는 죄명을 씌워 재산을 몰수하라고 명령했다. 몰수한 재산은 모두 국고로 환수되었다. 경제의 누이 관도공주館陶公主가 등통의 불쌍한 모습을 가련하게 여기며 약간의 재물을 남몰래 내려주었지만 등통을 지키던 관리에게 압류되고 말았다. 경제에게는 한 어머니 배에서 태어난 하나뿐인 누이 관도공주도 어쩔 수 없었다. 먹을 것 약간과 옷가지 몇 벌을 보내는 것으로 끝내야 했다. 결국 등통은 한 푼도 없는 빈털터리 신세가 되어 가난 속에서 먹을 것 하나 입에 넣지 못하고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관상쟁이의 예언은 옹글게 현실이 되었다. 관상쟁이는 최고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며 알랑거리는 일로 높은 자리를 차지한 자의 끝은 언제나 이럴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익히 알았던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자기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뒤에도 이 일로 밥 먹으며 어깨 으스댈 후배 관상쟁이를 위하여 아예 이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관상쟁이에게도 먹고 사는 일은 다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가치였을 테니까.
황제도 인간이기에 자기를 추어올리며 알랑거리는 자가 곁에 있으면 즐거웠을 것이다. 황제도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는 귀가 얇아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수없이 받았을 터이지만 높은 자리에 올라 큰 권력을 손에 쥐는 순간 이 가르침은 까만 옛날이 되었을 것이다. 절대 권력자인 황제 곁에서 자기 이익을 손에 넣으려는 자가 부리는 술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했다. 이 가운데 알랑거리기야말로 윗사람을 녹이기에 밑천이 거의 필요 없는 무기였다. 세 치 혀만 있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남을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많은 자일수록 등통을 통해 큰 지혜를 얻어야 할 것이다. 아, 참, 남을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바로 '권력'이다. 물론 이런 힘을 가진 자를 우리는 '권력자'라고 부른다.
이제 노자老子가 내놓은 말 한 마디를 여기 붙인다.
-믿음성 있는 말은 번드르르하지 않고,
번드르르한 말은 믿음성이 없느니라.
(信言不美, 美言不信.)
『도덕경』의 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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