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산책

저년의 코를 당장 베어라-위부인魏夫人과 정수鄭袖

촛불횃불 2022. 3. 16. 19:41

회왕懷王이 화를 내며 명령을 내렸다.

“코를 베어라.”

정수鄭袖는 앞서서 시종들에게 이렇게 일러두었다.

“대왕께서 말씀이 있으면 반드시 그 뜻을 따라야 하오.”

시종이 칼을 뽑아 이 여인의 코를 베었다.

 王怒曰 : “劓之.” 夫人先誡御者曰 : “王適有言, 必可從命.” 御者因揄刀而劓美人.

-『한비자韓非子』 「내저설하內儲說下

 

 

  저년의 코를 당장 베어라.”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 초회왕의 명령은 서슬이 퍼랬다. 군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고 살릴 수 있는 권한을 한 손에 틀어쥐었던 그 시절에 감히 앞을 막아서는 자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가 그렇게도 아낌없이 사랑을 주던 한 여인에 대한 미움 때문에 내린 명령이었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초회왕은 전국시대 일곱 개의 강국 가운데 하나였던 초나라의 서른일곱 번째 군주였다. 그는 거의 서른 해 군주의 자리를 지켰다. 처음에는 그도 다른 영명한 군주처럼 인재를 가까이 등용하며 나라의 기반을 굳건히 다졌다. 애국시인으로 이름난 굴원을 곁에 두고 그의 쓴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며 칠웅 가운데 하나였던 위 나라를 대파하여 나라의 위세를 크게 떨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도 거기까지였다.

 

초회왕

 영명한 군주를 혼미에 빠뜨리며 갈팡질팡 방향을 잡지 못하게 만드는 데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한몫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한몫했다는 말은 부정적인 결과로 이끄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더구나 무릎을 꿇는 치욕을 당한 위나라가 초나라 군주를 그냥 가만히 두고 보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역사는 위나라가 초나라에 잘 보이기 위하여 미인 하나를 골라서 초왕에게 보냈다고 전하지만, 그 이면에는 미인 하나로 초왕을 넘어뜨리겠다는 위왕의 절치부심이 작용했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위나라가 회왕에게 안긴 여자가 바로 위부인이었다. 회왕이 위부인을 정말로 총애한 이야기가 전국책戰國策에 기록으로 남아 전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회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던 총비 정수鄭袖에게는 위부인이 눈엣가시였다. 아니 마구 솟아오르는 샘 때문에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 정수는 보통여자가 아니었다. 솟아오르는 강샘을 철저히 감춰둔 채 후비后妃의 덕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가장 멋진 옷을 골라서 위나라에서 온 동생에게 입게 했으며, 가장 훌륭한 집을 골라서 위나라에서 온 동생에게 머물게 했다. 그러면서 정말 다정한 목소리로 동생이라고 부르며 살갑게 대했다. 그러자 회왕은 정수야말로 보통의 여자와는 달리 대단히 너그럽고 대범하다고 믿었다. 정수에 대한 회왕의 신임도 이제는 반석처럼 굳었다. 회왕은 물론 위부인도 정수를 경계하지 않았다. 정수에게는 바야흐로 때가 온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수는 위부인에게 이렇게 한 마디 툭 던졌다.

우리 임금의 자네 사랑은 정말 대단하네. 그런데 딱 한 가지 만족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네.”

그러곤 입을 한참이나 다물고 뜸을 들였다. 답답해진 건 위부인이었다. 자기 결점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하면서 자못 긴장했다.

 

정수의 모습

 “동생, 이건 임금께서 한가할 때 지나는 말씀으로 내게 던졌는데, 자넨 다 좋은데 코가 좀 이상하다고 하셨네.”

 보는 방향에 따라서 장점도 단점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단점도 장점이 될 수 있다. 이게 바로 세상의 이치이다. 따라서 단점의 장점을 찾아서 앞으로 나아가는 자는 승리할 수 있다. 또 장점의 단점을 찾아서 신중하게 처신하는 자는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결함 하나 없이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얼 하나 없이 깨끗한 옥이 어디 있는가? 잡스런 성분 하나 섞이지 않은 순금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위부인은 자기의 단점을 알려준 정수가 고마웠다.

 ‘코가 좀 이상하다고?’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어려서부터 잘 생겼다는 말을 늘 듣고 살았지만 코가 잘 생겼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눈이 잘 생겼다는 말은 여러 번 들었지만 자기 코가 잘 생겼다고 말한 이는 없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코 때문에 회왕의 총애를 잃는다면 모든 게 끝이었다. 이 뒤, 위부인은 초왕을 뵐 때면 자기도 모르게 코를 손으로 가리곤 했다. 이런 일이 거듭되자 이제는 정작 초왕이 이런 위부인의 행동을 보고 까닭을 몰라 답답한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초왕이 믿을 만한 인물은 정수였다. 정수가 꺼내든 후비의 덕이라는 카드는 이제 그 효과를 그대로 드러냈다.

위부인이 나만 만나면 코를 가리는데, 그 까닭을 그대는 알고 있소?”

 

초회왕의 사랑을 독차지한 위부인(극중 장면)

 얼마나 기다렸던가, 오늘 이 순간이 오기까지. 오랫동안 계획하며 진행해 왔지만 정수의 가슴은 순간 멈추는 것 같았다. 우선 한 차례 심호흡을 한 정수가 낮은 목소리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대왕께서 묻지 않았기에 제가 말씀 올릴 수 없었습니다. 위부인은 대왕의 옥체에서 풍기는 냄새를 견딜 수 없어서 코를 가린다고 합니다.”

 이 글의 첫머리를 이제 이곳에 놓을 차례이다.

저년의 코를 당장 베어라.”

이리하여 군주의 사랑을 한 몸에 듬뿍 받아오던 위부인은 정수가 인내심을 가지고 펼친 작전에 철저하게 몰락했다. 회왕도 작은이를 너그럽게 대하는 정수의 겉만 보았지 시앗을 그냥 둘 수 없는 여인의 심리를 지나쳤음이 분명하다. 시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고 했다. 부처처럼 어진 부인도 시앗을 보면 마음이 변하여 시기하고 증오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회왕은 점점 혼미에 빠졌다. 정수의 베갯머리송사에 휘청거리며 굴원을 포함한 바른 신하들을 곁에서 내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일은 바로 인물을 연구하는 일이다.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은 언제나 그 중심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황런위黃仁宇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에서 대륙의 북방에 설치된 만리장성의 선이 연간 평균 강수량과 일치한다고 지적하며 건조한 지역 때문에 식량을 확보할 수 없었던 북방 유목 민족이 남방 농경민족과 벌인 길고 오랜 대립을 자연 조건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역시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자연 환경이 사람살이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나 흐름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많은 이들은 지금까지 모든 재앙의 근원을 여성에게서 찾는 일이 많았다. 선진 시대 서주西周의 마지막 군주 유왕幽王이 나라를 망친 원인도 그의 곁에 있었던 포사褒姒에게서 찾았으며, 그보다 앞서 은의 마지막 군주 주가 나라를 망친 원인도 그의 곁에 있었던 달기妲己에게서 찾았으며, 또 이보다 앞서 하의 마지막 군주 걸이 나라를 망친 원인도 그의 곁에 있었던 말희妺喜에게서 찾았다.

 

남성의 질투를 그린 카툰

 이야말로 뒤집어씌우기이다. 중국어에서 화수禍水는 화나 재난을 야기하는 근원, 곧 화근을 뜻하는데, 주로 여성을 가리켰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여성에 비하여 물리적으로 큰 힘을 가졌던 남성이 역사의 심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억지로 만든 덫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을 받을 기회를 아예 원천적으로 차단당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육체적인 힘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여성이기에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역사를 기록하는 이는 회왕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정수의 사악함이 빚은 결과라고 기록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바야흐로 여성이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시대가 닥쳐왔다. 이 거대한 흐름은 누구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도도하다.

이제 한 마디만 더 붙이겠다.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데서는 왜 여성의 강샘은 돋을새김으로 내보이면서 남성의 강샘을 표현하는 데는 그렇게도 인색한가? 생각하면, 남성의 강샘도 예술 작품의 주제로 여성의 강샘보다 더 크게 부상할 날도 머지않은 성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