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산책

나라의 평화를 위해 사라져야 할 인물-경보慶父

촛불횃불 2022. 4. 5. 14:10

중손仲孫이 돌아와서 아뢰었다.

경보를 없애지 않으면 노 나라에 재난이 그칠 날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제환공齊桓公이 물었다.

어찌해야 그 양반을 없앨 수 있겠소?”

중손이 대답했다.

재난이 그치지 않으면 장차 스스로 무너질 것이오니, 왕께서는 그냥 기다리기만 하소서.”

 

 仲孫歸曰 : “不去慶父, 魯難未已.” 公曰 : “若之何而去之?” 對曰 難不已, 將自斃, 君其待之!”

-『좌전左傳』 「민공원년閔公元年

 

탐관오리 백성 괴롭히면서도 거리낌 없고,

간신들 임금 속이면서도 두려움 없네.

 

貪吏害民無所忌,

奸臣蔽君無所畏.

 

백거이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채시관采詩官가운데 한 부분이다. 백성 괴롭히고 임금 속이면서도 거리낌도 두려움도 없었던 간사한 신하는 어느 왕조에나 존재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는 이들이 저지르는 잘못을 두고 보지 못하고 용기 있게 앞으로 나서서 옳은 말로 임금에게 간언하는 신하도 어느 왕조에나 존재했다. 앞의 간사한 신하를 간신奸臣이라 일렀고, 뒤의 올곧은 마음으로 임금을 일깨우는 신하를 간신諫臣이라 했으니, 이 둘은 같은 음, 언제나 같은 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다른 존재였다.

 때는 기원전 662, 서른두 해 동안 노 나라 군주의 자리에 있던 장공庄公은 자신의 몸에 깃든 병이 점점 더 힘을 키우자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순간적으로 느끼어 알게 되었다. 이 나라 사직을 맡길 후계자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던 그는 둘째동생 숙아叔牙를 머리맡으로 가만히 불러들였다. 병상에 누웠던 그는 숙아가 들어오자 몸을 반쯤 일으켜 비스듬히 기댄 채 무겁게 입을 열었다.

 

노장공

이 자리에 오른 지 서른두 해가 되었지만 일을 크게 그르친 적 없었기에 마음은 외려 편안하네. 하지만, 하지만 말일세, 내 뒤를 이을 자를 아직 정하지 못해서 마음이 자못 무겁네.”

 장공의 정실 애강哀姜은 자식을 낳지 못했지만 애강의 여동생 숙강叔姜과의 사이에는 공자 계가 있었다. 그리고 장공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애첩 맹임孟任은 공자 반을 낳았고, 또 한 여인 성봉成鳳은 공자 신을 낳았다. 이 세 아들 가운데 누구를 자리에 앉혀야 할 것인가? 셋 가운데 장공의 마음에 온전히 드는 아들은 공자 반이었다. 그러나 장공은 형세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결정적인 열쇠는 세 동생이 쥐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둘째동생을 자기 곁으로 남몰래 불렀던 것이다.

 

경보

 

 제밑동생 경보慶父도 있었지만 마주할 생각이 없었다. 성격이나 언행이 모질고 인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실 애강과도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공은 깜짝 놀랐다.

아직 조카들이 어리니 맏형님을 자리에 앉히면 좋을 것입니다.”

맏형님이 누구인가? 바로 경보 아닌가? 세상에 이럴 수가! 장공은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머릿속이 아득해지며 등불 하나가 꺼질 듯 아물거렸다.

그렇구나, 경보가 벌써 둘째 숙아를 자기편으로 꾀었구나!’

장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둘째의 속을 알았다는 표시로 고개만 한 번 끄덕이는 것으로 끝냈다. 그리고 곧 막냇동생 계우季友를 곁으로 불렀다. 이번에도 장공은 둘째 숙아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하며 막내의 속내를 알려고 했다. 계우는 이미 장공의 속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공자 반의 어진 덕성이라면 백성들의 마음을 사는 데 모자람이 없을 것입니다.”

병상에 비스듬히 기댄 채 막냇동생을 지긋한 눈으로 바라보던 장공에게 계우는 한 마디 더 힘 있게 덧붙였다.

제가 공자 반을 떠받들어 모시며 왕위를 잇도록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장공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어서 마주 내민 막냇동생 계우의 손을 맞잡았다. 일은 장공의 뜻대로 결정되었다.

 

계우

 가을바람이 나뭇잎을 물들이기 시작하던 어느 날, 장공이 세상을 떠났다. 계우는 이미 촘촘하게 짜두었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먼저 숙아를 독살했다. 숙아를 살려두고서는 그 다음 계획을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숙아가 없었기에 경보를 고립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장공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미 마련해 두었던 조서를 널리 선포하고 공자 반을 임금의 자리에 앉혔다. 여기까지는 성공이었다.

그런데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던 경보가 꺾인 콧대를 어찌 참을 수 있었겠는가? 애강을 끌어안고 맘껏 환락에 빠졌던 경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나 입을 먼저 연 건 애강이었다.

새로 자리에 오른 공자 반의 목을 내립시다.”

!”

자신의 고민을 단 한 음절로 드러냈던 경보가 다시 한 마디 짧게 내뱉었다.

좋소, 그놈을 없애야겠소.”

그러나 자리에 오른 공자 반을 없앤 뒤가 문제였다. 경보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럼 누굴 그 자리에 앉히면 좋겠소?”

당연히 그 자리는 당신 것이지요.”

 

애강

 애강이 눈을 반짝이며 통통 물방울 떨어지는 목소리로 짧은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눈을 지그시 감고 그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던 경보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니오,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소. 먼저 이제 여덟 살 된 계를 그 자리에 앉힌 뒤, 때가 무르익으면 다시 움직여도 늦지 않을 거요.”

 계는 바로 아래 여동생 숙강이 낳은 아들 아닌가? 애강은 망설일 것 하나 없었다.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때마침 공자 반의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에 경보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이 기회를 지나칠 수는 없었다. 공자 반이 외할아버지를 문상할 때가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날, 궁중은 비게 될 터였다. 경보는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빈틈이 없었다.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뒤집었으니 정변이었다. 정변은 경보의 뜻대로 이루어졌다. 반의 목이 땅에 떨어졌고, 계가 민공閔公으로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 이때, 그의 나이 겨우 여덟 살이었다.

이번 정변의 목표는 하나였지만 없애야 할 인물은 하나만이 아니었다. 공자 반을 없앴으니 그의 편에 섰던 동생 계우도 가만 둘 수 없었다. 그런데 경보가 부하를 보내 공자 반의 목을 내렸다는 소식이 날개를 달고 계우의 귀에 들어갔다. 계우는 자기를 겨눈 시퍼런 칼날이 가까웠음을 느낀 순간 공자 신을 데리고 재빨리 이웃 자그마한 나라 주로 몸을 피했다.

 

제환공 시 춘추 형세도

 애강과 숙강은 둘 다 제 나라의 공주였다. 그러니까 장공이 세상을 떠난 뒤 우여곡절을 겪으며 노나라 군주의 자리에 오른 민공도 제나라 군주의 외손이었다. 경보는 자기가 일으킨 정변을 통해 여덟 살밖에 안 된 계를 민공으로 자리에 앉혔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자기 처지도 불안했지만 민공의 지위도 든든하지 않았던 것이다. 경보는 허둥지둥 제나라로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제나라 군주는 그 이름도 널리 알려진 환공桓公이었다.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성어를 탄생시킨 관중管仲의 보좌를 받으며 춘추시대 첫 번째 패자가 된 바로 그 환공이었다. 환공은 경보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올곧은 신하가 그때라고 없었겠는가? 그러나 환공의 도움을 얻고 돌아온 경보의 광기는 멈추지 않았다. 어질고 올곧은 이들이 경보가 미친 듯이 휘두르는 시퍼런 칼날이 향하는 곳이었다. 자신의 목표 앞에 놓인 걸림돌은 그가 올라앉아야 할 황금마차를 뒤집어엎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보란 듯이 걸핏하면 애강을 곁으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조금도 거침이 없었다. 이듬해, 경보는 애강과 손을 맞잡고 민공을 없애고 자신이 그 자리에 올랐다.

 

제환공

 이쯤 되자 제나라 환공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바로 이웃, 코앞에서 벌어진 어지러운 모습을 지나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목숨을 잃은 이는 제나라의 외손이었다. 또 그는 중원의 패자가 아니었던가? 그는 대부 중손추仲孫湫를 곁으로 불렀다.

노나라에 다녀와야겠소. 명목은 조문이지만 그곳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시오.”

맞갖은 대책을 세우기 위한 환공의 주도면밀함이었다. 노나라에서 돌아온 중손추의 보고는 짤막하지만 단호함이 넘쳤다.

불거경보, 노난미이(不去慶父, 魯難未已.)

 여덟 글자밖에 되지 않는 이 구절은좌전』「민공閔公원년에 기록으로 남아 전한다.

 

慶父不死 魯難未已

경보를 없애지 않으면 노나라에서 벌어지는 재난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노나라 내란의 뿌리는 오직 한 사람 경보이다, 게다가 그는 안녕과 평화를 허무는 괴수이다, 이런 뜻이었다.

노나라 군주 둘을 연이어 살해하며 도리에 어긋난 짓을 제멋대로 벌인 원흉 경보는 이미 백성들의 마음에서 멀리 버려진 인물이었다. 가슴 가득 분노에 가득 찬 백성들의 원한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진 상태였다. 이때, 주나라에서 사태의 진전을 날카롭게 분석하던 계우가 경보 토벌을 시작하는 격문을 날렸다. 그리고 공자 신을 새 임금으로 떠받들어 모신다며 목소리를 높여 널리 알렸다. 노나라 백성들은 뜨겁게 호응했다.

 경보도 자기가 저지른 죄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 몰랐을 리 없다. 게다가 맞서래야 맞설 수 없을 만큼 분노에 찬 백성들의 힘이 커진 상태였다. 경보는 어떻게 할 겨를도 없이 거 나라로 도망쳤다. 그러자 계우는 공자 신을 데리고 노나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공자 신을 군주의 자리에 올려 앉혔다. 희공僖公이었다. 나라가 제법 안정되자 계우는 거나라와 물밑거래를 하며 경보의 송환을 요구했다. 노나라로 압송되던 경보는 스스로 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이제는 제 몸 하나 의탁할 곳이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경보가 스스로 세상을 버리면서 노나라는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없어지자 우물물은 다시 맑아졌던 것이다.

 

水能載舟 ,  亦能覆舟

 군주가 안정된 위치에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필요한 여러 조건 가운데 으뜸은 백성의 믿음이다. 이런 점에서 경보는 백성의 믿음을 잃은 지 오래였다. 제 조카이기도 한 군주를 둘이나 잇달아 죽이고 제 형수와 사통하면서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으니 그 심성의 사악함이 백성의 믿음을 얻기엔 도무지 가능하지 않았다.

수도선부水到船浮’, 그날 자기 사무실에서 입장을 발표하던 지난 시절 최고 권력자의 등 뒤로 보이던 액자 속 글귀였다. ‘물이 불으면 배도 물위로 뜬다.’는 말이다. 뒤집으면 물이 줄면 배는 가라앉아야 한다. ‘모든 일은 결국엔 다 바로잡혀진다.’는 뜻도 있다. 굽은 곳은 펴져야 하는 법이다. 위기에 처한 이들은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들에겐 자기 살아생전의 위기만이 위기이다. 그들은 공소시효 없는 역사의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지 모르는 것 같다.

 아, 또 있다. ‘수능재주, 역능복주(水能載舟, 亦能覆舟)’,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엎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전국시대 말엽 순자荀子순자荀子』 「애공哀公에 나오는 구절이다.

물은 백성을, 배는 권력 가진 자를 가리킨다. 물이 노하면 어깨 겯고 큰 물결로 일어선다. 그러면 아무리 큰 배도 뒤엎어진다. 예나 이제나 물은 그렇다. 물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경보를 다시 생각하는 소이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