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유 2

단순과 진솔

왕자유王子猷가 배를 타고 서울 가는 길에 올랐다. 배가 부두에 정박한 채 아직 뭍에 오르지 않았을 때였다. 그는 환자야桓子野가 피리를 잘 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알지는 못했다. 바로 이때, 환자야가 저편 강기슭을 지나가고 있었다. “저 사람이 바로 환자야입니다.” 왕자유는 배 안에서 환자야를 아는 어떤 이가 하는 말을 듣고 당장 사람을 보내 자기의 뜻을 전하게 했다. “당신이 피리를 잘 분다는 말을 진즉 들었소이다. 나를 위해 한 곡 들려주시구려.” 환자야는 당시 높은 벼슬을 한 적이 있었지만 왕자유의 명성을 익히 들어온 터라 즉시 수레에서 내려 배에 올랐다. 그리고 접의자에 앉아 왕자유를 위해 세 곡을 분 뒤에 다시 뭍에 올라 수레에 몸을 싣고 자리를 떴다. 두 사람은 모두 말 한 마디 나누지 ..

산문 마당 2023.06.21

왕휘지王徽之가 문을 열었다. 흰 눈이 흩날리는 밤이었다. 멀리 떨어진 친구 대안도戴安道가 보고 싶었다. “배를 띄워라!” 그 밤, 밤새 노를 저어 대안도의 집 대문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오는 새벽이었다. “가자, 배를 돌려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 갸웃하는 노꾼에게 그가 한 말은 이랬다. “흥이 나서 왔지만 이제 흥이 다했으니, 됐네.” 그리움이었을까, 눈 내리는 밤, 이 양반 가슴을 흔들었던 흥이란 것이. 지금으로부터 1천 6백여 년 전, 중국 동진 때 이야기이다. 온 산천을 하얗게 만든 흰 눈이 이 그리움의 배경으로 제격이다. 이 둘이 만나 술잔 기울이며 새벽을 맞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았어야 그 맛이 더 진했을 것이다. 맛이 진해야 멋이 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