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놈이 흙을 훔쳐갔다는 것을 그대는 아직도 모르는가?" "흙도 뿌리도 그리지 않고 잎과 꽃만 그렸으니 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떤 이의 이 물음에 정사초가 버럭 목소리를 높인 되물음이다. "아니, 어떤 놈이 흙을 다 훔쳐갔다는 것을 그대는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호통이었다. 이 호통 속에는 원元에 나라를 내어준 송宋의 유민으로서의 애절하고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녹아 있다. 나라가 망하자 그는 자기 이름까지 '사초思肖'로 바꾸었다. '초肖'는 '조趙'의 오른편을 취한 글자이다. 조씨가 세운 자기 조국 송宋을 그리워한다는 의미이다. 송을 세운 황제가 바로 '조광윤趙匡胤' 아닌가. 정사초의 지조와 절개가 서릿발이다. 그가 그린 국화 제시에도 무릎 꿇지 않으려는 그의 기개가 자못 오롯하다. 꽃이 피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