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齊 나라 사신이 위魏 나라 도성 대량大梁에 왔다. 손빈孫臏은 형벌을 받은 신분으로 제의 사신을 남몰래 만나 자기 의견을 털어놓았다. 제나라 사신은 이 양반이 굉장한 인재임을 알아보고 몰래 자기 수레에 태우고 제나라로 돌아갔다. 제나라 장군 전기田忌가 그를 높이 평가하여 큰손님 대접하듯이 높여 대우했다.
전기는 걸핏하면 제나라 귀족 자제들과 큰돈을 걸고 경마를 즐겼다. 손빈은 이들 말의 실력이 큰 차이가 없음을 발견하고 이들을 상, 중, 하 세 등급으로 나누었다. 그런 뒤, 손빈은 전기에게 이렇게 일렀다.
"이제 크게 지르십시오. 제가 어르신을 승리하게 만들겠습니다."
전기는 이 말을 그대로 믿고 제나라 왕공 귀족의 자제들과 경마를 벌이기로 하고 천금의 판돈을 걸었다. 경기에 임하기에 앞서 손빈은 전기에게 이렇게 일렀다.
"어르신의 말 가운데 세 번째 등급의 말을 저쪽 첫 번째 등급의 말과 맞붙이고, 첫 번째 등급의 말은 저쪽의 중간 등급의 말과 맞붙이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가운데 등급의 말은 저쪽 맨 아래 등급의 말과 맞붙이십시오."
세 차례 경기가 끝났다. 전기는 한 차례는 졌지만 두 차례는 이겼기에 결국은 이들이 판돈으로 건 천금을 손에 넣었다. 이에 전기는 손자를 제나라 위왕威王에게 소개하며 천거했다. 위왕은 그에게서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을 듣고 나서 자기의 스승으로 삼았다.
<사기史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가운데 한 부분이다.
위에서 인용한 손빈은 마릉馬陵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자신을 불구로 만들며 위기에 빠뜨렸던 위나라 장수 방연龐涓을 패배시키며 한판 멋진 복수극을 벌인 인물이다. 귀곡자鬼谷子를 스승으로 모시고 동문수학한 두 사람이 훗날 서로 원수가 되어 벌인 지혜 싸움은 지금 돌이켜보아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거듭된 실패 속에서 찾아야 할 승리의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 생각의 방향을 달리했을 때, 승리의 여신이 미소를 짓는 경우가 있다. 생각의 방향을 달리하면 책략도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장점은 무엇일까? 또 단점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상대편의 장점은 무엇이고 또 단점은 무엇일까? 바꾸어서 장점의 단점도 찾아보고 단점의 장점도 생각해 볼 일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서 장점도 단점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단점도 장점이 될 수 있다. 이게 바로 세상의 이치이다. 따라서 단점의 장점을 찾아서 앞으로 나아가는 자는 승리할 수 있다. 또 장점의 단점을 찾아서 신중하게 처신하는 자는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결함 하나 없이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얼 하나 없이 깨끗한 옥이 어디 있는가? 잡스런 성분 하나 섞이지 않은 순금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병법의 달인 손빈은 일찍이 이런 점을 깊이 깨쳤음이 분명하다.
이 글을 읽는 이를 위하여 한 단락만 더 보태면,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지은이로 잘 알려진 손무孫武는 춘추시대 말엽 인물로서 전국시대를 산 손빈보다 한 세기 반을 앞서 살았다. 두 사람 모두 병법의 달인으로 유명하다. 특히 손빈은 동문수학한 동창 방연의 시기와 모함으로 종지뼈를 도려내는 형을 받고 영원히 불구자가 된다. 그러나 손빈은 훗날 마릉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제나라 군사軍師로 참전하여 위나라 군사를 이끌던 방연을 패배시키며 멋진 복수극을 펼친다. 참, 손빈의 이름자 '빈臏'은 '종지뼈'라는 뜻이다.
*인용한 <손자오기열전>의 일부도 온전히 '촛불횃불'이 번역했으며, 여기에 더하여 붙여진 '말'도 '촛불횃불'의 창작품입니다.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말의 말 > 4. 넷째 마당 - 智'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원蒲元의 지혜 (0) | 2021.09.24 |
---|---|
남당의 서예가 서현의 '마침내' (1) | 2021.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