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당南唐의 서현徐鉉은 소전小篆에 능했다. 그가 쓴 소전 작품을 햇빛에 비춰보면, 필획의 가운데에 한 가닥 짙은 먹물이 공교롭게도 한가운데를 차지한다. 필획이 구부러진 곳에도 짙은 먹물은 역시 한가운데에 있다. 필획 양쪽에 이 짙은 먹물이 치우치지 않았으니, 이는 필봉이 뒷걸음치거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언제나 필획의 한가운데를 직행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소전 서법의 진정한 운필법이다.
서현이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늘그막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왜편법歪匾法을 알아냈소."
대체로 소전은 보통 여위고 긴 것을 좋아한다. 절충하여 비스듬하고 평평한 운필법을 쓰는데, 경험이 많고 노련한 서예가가 아니면 쓸 수 없다.
11세기 북송의 학자 심괄沈括이 펴낸 <몽계필담夢溪筆談> '서화書畵' 가운데 한 부분을 데려왔다.
'늘그막에 이르러서야' 소전 서법의 진정한 운필법을 마침내 터득했다니,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고심과 간난이 적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어떤 분야에서 '가家'를 이루는 일은 하늘이 준 천재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텃밭에서 김을 매면서도 앞으로 펼쳐질 소설의 내용에 온 신경을 쏟았다는 박경리 선생이 떠오른다. 긴 겨울 칼바람 견디며 수없이 몸을 뒤챈 끝에 봄꽃은 마침내 노란 꽃잎을 벌지 않던가.
서현의 이 이야기를 한 꼭지로 담은 <몽계필담>도 심괄이 '늘그막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 보니, '마침내'는 인고의 세월 저 끝에서 만날 수 있는 낱말인가 보다.
한 마디 덧붙이면, '왜편법'은 달리 '화편법竵匾法'이라고도 이르는 서예에서의 하나의 필법으로, 전서를 초서의 방법으로 씀으로써 일찍이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질서를 잃고 정연하지 못한 것 같지만 이 속에서 통일된 질서를 발견할 수 있는 서체이다.
*인용한 글의 원문을 여기 모신다. 관심 있는 이는 살펴보시라.
江南徐鉉善小篆. 映日視之, 畫之中心, 有一縷濃墨, 正當其中; 至於屈折處, 亦當中, 無有偏側處. 乃筆鋒直下不倒側, 故鋒常在畫中, 此用筆之法也. 鉉嘗自謂 ; "吾晚年始得竵匾之法." 凡小篆喜瘦而長, 竵匾之法, 非老筆不能也.
*인용한 <몽계필담> '서화'의 일부는 온전히 '촛불횃불'이 번역했으며, 여기에 더하여 붙여진 '말'도 '촛불횃불'의 창작품입니다.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출처: https://anqial.tistory.com/14 [말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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