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을 물리고 나면 (남편과 함께) 귀래당歸來堂에 앉아 차를 우렸다. 그러면서 가득 쌓인 책을 가리키며 어떤 전고典故가 어느 책 몇 권 몇 쪽 몇째 줄에 있는지 알아맞히기로 승부를 결정하여 차를 마시는 순서를 정했다. 맞히면 찻잔을 들고 크게 웃다가 가슴에 찻물을 쏟아 한 모급도 마시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환경에서 한 평생을 지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기에 우리 부부는 비록 환난과 곤궁 속에 살지라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북송과 남송 어름에 살았던 여류시인 이청조李淸照의 <금석록후서金石錄後序> 가운데 한 부분이다. 이청조는 문학과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사대부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뛰어난 시문으로 이름을 날렸다. 열여덟 살에 스물한 살 난 태학생 조명성趙明誠과 북송의 도성 변경汴京에서 결혼했다. 때는 휘종徽宗 건중정국建中靖國 원년, 당시 북쪽에서 일어난 금金의 세력이 욱일승천의 기세를 떨치며 남쪽을 엿보고 있었으니, 이들 부부에게도 간난이 닥쳐올 날이 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들 부부에게는 서재에 가득한 책이 있었기에 행복이 넘쳤다.
남편 조명성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이청조는 고통과 고독을 견디며 수없이 많은 작품을 세상에 남겼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차를 마시며 책을 읽었던 아름다운 옛 추억이 시대가 안긴 고통과 고독을 이기며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원천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들 부부의 삶에는 향기가 넘친다, 언제 보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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