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 이야기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만필 ②

촛불횃불 2025. 3. 10. 19:36

2--b. 사람이 부는 퉁소 소리, 땅이 부는 퉁소 소리, 하늘이 부는 퉁소 소리

[人籟], [地籟], [天籟]

 

덕행과 고결한 성품으로 알려진 초나라의 은사 남곽자기南郭子綦와 그의 제자인 안성자유顔成子游의 대화는 이제 사람이 내는 퉁소 소리’, ‘땅이 내는 퉁소 소리’, 그리고 하늘이 내는 퉁소 소리로 이어집니다. ‘나는 나 자신을 잊었다망아忘我의 경지를 아느냐고 물은 뒤 곧장 이 세 가지 소리로 훌쩍 건너뜁니다.

어느 날, 남곽자기는 책상에 몸을 기대어 조용히 앉아서 온갖 잡된 생각을 멀리한 채 자신과 세계를 모두 잊으며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빠집니다.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났을 때, 곁에서 그를 모시던 안성자유는 말라서 죽은 나무처럼, 불 꺼진 재처럼 움직임조차 없는 스승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 모습은 영혼이 벌써 몸을 빠져나간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변모할 수 있느냐는 제자의 물음에 남곽자기는 이제 사람과 땅과 하늘이 부는 퉁소 소리로 나아갑니다. 갑작스럽고도 엉뚱한 듯합니다. 가로획을 긋던 붓이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세로획으로 방향 전환하는 듯합니다.

사람이 부는 퉁소 소리는 들었겠지만 땅이 부는 퉁소 소리는 못 들었을 거라고, 다시 땅이 부는 퉁소 소리는 들었겠지만 하늘이 부는 퉁소 소리는 못 들었을 거라고, 이렇게 점층하며 절정을 향해 내닫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아 있는 이상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일을 그칠 수가 없네. 넓고 크고 위대한 대자연도 마찬가지일세. 대자연도 들숨 날숨을 하는데, 이걸 우리 인간은 바람이라고 부르네. 이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단 불었다 하면 굉장하네. 한번 불었다 하면 대자연의 온갖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갖가지 소리를 내놓네. 아마 자네도 큰바람이 노호하는 소릴 들어보았을 거네.”

이어서 남곽자기가 들려주는 갖가지 땅이 부는 퉁소 소리나 백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에 뚫린 갖가지 구멍은 대문장가의 잘 익은 비유와 묘사를 훌쩍 뛰어넘습니다. 이 부분을 읽노라면, 18세기 이 땅 조선의 선비 연암 박지원의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의 물소리 묘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두 뛰어난 명문이지만,장자열하일기熱河日記보다 거의 2천 년 앞선 작품이기에 더욱 새삼스럽습니다.

이제 안성자유는 땅이 부는 퉁소 소리가 바로 대자연이 내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사람이 부는 퉁소 소리, 스승의 다른 가르침 없이도, ‘대를 나란히 묶어 만든 피리가 내는 소리임을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이 부는 퉁소 소리[천뢰天籟]란 도대체 무엇일까, 안성자기는 여기에 이르러 그만 막히고 맙니다. 스승 남곽자기는. ‘바람이 불어 수없이 많은 다른 소리를 내어도 이 소리는 모두 각자 스스로가 내는 소리일세. 모두 각자가 제 소리 택하여 내는 소리라고 하지만 사나운 소리를 나게 하는 건 누구일까?’, 이렇게 답합니다. 그러나 ‘~하지만 사나운 소리를 나게 하는 건 누구일까?’, 라고 물음으로써 오히려 깊은 의문에 빠지며 생각하게 만듭니다.

모두 각기 자기 소리를 내게 하고 있지만, 정말 그 소리를 내게 만드는 존재가 달리 있음을 암시합니다. ‘사나운 소리를 나게 하는 것진재眞宰라고 말하는 이가 많습니다. ‘진재하늘이요 만물의 주재자를 말합니다. 이는 곧 자연을 뜻합니다. 자연은 의 본체인 하늘과 맥이 같습니다.제물론의 다른 문단에서는 참된 주재자가 있는 모양인데 그 모습은 볼 수 없다[若有真宰而特不得其眹.]는 구절이 있습니다. 대종사大宗師에는 무릇 도~ 스스로 근본이며, 천지가 생기기 전의 옛날부터 본래 존재했다[夫道~ 自本自根未有天地自古以固存]는 구절이 있습니다. 게다가 노장철학의 원조로 추앙받는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에서 는 자연을 본받는다[道法自然]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정말 그 소리를 내게 만드는 존재는 바로 하늘, 자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바람이 불어 수없이 많은 다른 소리를 내어도 이 소리는 모두 각자 스스로가 내는 소리일세. 모두 각자가 제 소리 택하여 내는 소리라고 하지만 사나운 소리를 나게 하는 건 누구일까?’[吹萬不同~怒者其谁邪?], 이 부분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눈길을 주면 몇 가지 숨은 의미와 우의를 찾습니다.

먼저 온갖 만물은 자연을 따라 발전한다는 점입니다. ‘불다[]를 자연에서 일어나는 바람으로 보면서, 세상 만물이 가진 다양성은 바람이 갖가지 구멍에서 일으키는 서로 다른 소리처럼 저절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이 소리가 각자 스스로 내는 소리라고 함으로써 온갖 만물의 다양성은 자신이 가진 특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자기 밖의 힘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어서 모두 각자가 제 소리 택하여 내는 소리라고 한층 더 강조합니다. 이는 만물은 자기의 본성과 규칙에 따라 발전한다고 봅니다. 누구도 이를 강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이나 간섭을 배척한다는 점입니다. 나는 사나운 소리를 나게 하는 건 누구일까?’에서 분노가 아니라 사나운으로 옮겼습니다. ‘노력이나 동력을 넌지시 알리려는 데 중심을 둔 번역입니다. ‘사나운 소리를 ~ 누구일까?’, 곧 이들에게 명령하는가?, 이는 곧 장자가 자연 규칙에 대한 존중과 만물이 가진 자주성에 대한 긍정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장자는 만물이 발전하는 데 외부의 힘과 간섭은 필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장자는 제물齊物, 곧 우주 만물은 하나같이 동등하다고 주장합니다. 만물은 평등하기에 자연에 순응하라고 강조합니다. 사물의 본성과 그가 가진 규율을 존종하라고 이릅니다. 과도하게 자연에 간여하지 말라고 호소합니다. 그러기에 장자가 보기에 사람이 부는 퉁소 소리땅이 부는 퉁소 소리는 결국 하늘이 내는 소리입니다. 이 소리를 만드는 바람[]이 곧

하늘이 부는 퉁소 소리’, ‘천뢰天籟라는 것이지요. 바람은 자연이니까요.

하늘이 부는 퉁소 소리’, 천뢰는 인류와 만물이 내는 소리입니다. 이런 비아非我의 경지에서 개인과 사회의 이익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한없이 큰 우주를 배경으로 무아無我와 서로 사이에 경계를 뛰어넘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늘이 부는 퉁소 소리’, 천뢰는 우주의 화해와 통일을 상징합니다. 또 인류와 자연의 조화와 공생을 통하여 자아를 뛰어넘어 천지 만물은 높고 낮은 데서 벗어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늘이 내는 퉁소 소리’, 천뢰를 학자들은 장자 철학의 최고 경지라고 이릅니다. 인류가 가진 지혜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성당 시대 시인 이백李白장유형악과한양쌍송정유별족제부도담호将游衡岳过汉阳双松亭留别族弟浮屠谈皓라는 다소 긴 제목의 오언고시가 있습니다. 제목은 형악을 유람하고 한양의 쌍송정을 지나며 족제로 스님된 담호와 헤어지면서 시를 건네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천뢰라는 시어가 있기에 이 부분만 여기 불러옵니다.

 

凉花拂戶牖, 天籟鳴虛空.

 

가을꽃이 창문을 스치니,

허공에는 새들이 하늘 소리 내며 울며 날아가네.

 

새가 우는 소리, 바람이 부는 소리, 물이 출렁이는 소리, 이 모든 소리가 바로 천뢰입니다. 바로 자연의 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