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 이야기

<장자莊子> 만필-두 가지 일화(장자와 혜시)⑦

촛불횃불 2025. 2. 22. 07:34

두 가지 일화-외편추수秋水에서

 

혜자가 양 나라의 재상이 되자, 장자가 찾아가서 그를 만나려고 했다. 그런데 어떤 이가 혜자에게 이렇게 일렀다.

장자가 와서 당신 재상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오.”

그러자 혜자는 두려워서 사흘 동안 밤낮으로 온 나라 안에서 그를 찾았다. 장자는 (이를 알고) 그를 찾아가서 만나자 이렇게 말했다.

남쪽 땅에 새가 있는데, 이름을 원추鵷鶵라고 하오. 그대는 이 새를 아시오? 이 새는 남녘 바다를 떠나 북녘 바다로 날아가는데, 오동나무가 아니면 머물러 쉬지 않고 멀구슬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감미로운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소. 그런데 썩은 쥐를 얻은 올빼미가 지나는 원추를 보고 쳐다보며 !’하고 소리를 질렀다지 않소. 지금 그대가 양나라 재상 자리 때문에 내게 하고 소리를 지르는 거요?”

 

惠子相梁莊子往見之或謂惠子曰:「莊子來欲代子相。」於是惠子恐搜於國中三日三夜莊子往見之:「南方有鳥其名為鵷鶵子知之乎夫鵷鶵發於南海而飛於北海非梧桐不止非練實不食非醴泉不飲於是鴟得腐鼠鵷鶵過之仰而視之曰:『!』今子欲以子之梁國而嚇我邪?」

 

여기서 이르는 양 나라는 전국시대 칠웅 가운데 하나였던 위 나라를 가리킵니다. 앞의 춘추시대 강국이었던 진 나라가 위, , , 이렇게 셋으로 갈라진 뒤 시작된 전국시대 초기만 해도 위나라의 위세가 칠웅 가운데 앞이었습니다. 이 위나라의 세 번째 군주가 바로 혜왕惠王입니다. 중원을 차지하여 패자가 되려는 욕망이 남달랐던 혜왕은 도읍을 안읍安邑(지금의 산시성山西省 샤현夏縣)에서 동쪽으로 36km나 떨어진 곳 대량大梁(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카이펑시開封市)으로 옮깁니다. 이제 양나라는 곧 위나라의 또 다른 이름이 됩니다.맹자孟子첫 장에서 를 두고 맹자와 토론을 벌이는 양혜왕의 나라가 바로 이추수에 등장하는 양나라입니다.

혜자가 양나라의 재상이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가 종횡가縱橫家로서 모략에 뛰어난 이 시대의 소진蘇秦처럼 혜왕에게 외교 전략을 유세하며 권력의 한 조각을 차지하려는 욕망을 실현하려고 힘썼던 사실은 여러 가지 사료를 통해 확인됩니다. 장자가추수를 직접 쓰지는 않았다고 해도 우리는 위 문단에서 장자와 혜자 이 두 사람의 가치관의 차이가 뚜렷함을 알 수 있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우리는 이를 통하여 공을 세워서 이름을 널리 드러내고 싶은 욕망, 그리고 이익이나 관록 따위를 하찮게 여기는 장자를 만납니다. 이보다는 자유로운 정신적 경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장자를 만납니다. 장자는 자신을 전설 속의 큰 새 봉황과 같은 원추에 비깁니다. 고상하고 순결한 새에 비김으로써 자신이야말로 고상한 인품의 소유자로서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넌지시 강조합니다. 이와는 달리 혜자는 교활함을 상징하는 올빼미에 견줍니다. 혜자가 제 이름 알리며 이익과 관록을 탐하는 데다 다른 이를 까닭없이 시기하는 인물로 에두릅니다. 그러나 에두르지만 자못 날카롭습니다.

장자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혜자의 편협함과 시기심을 찬웃음으로 폭로하고 공격하는 것으로 단락을 맺습니다. 둘 사이에 논쟁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혜자는 장자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맞받아치는 혜자의 언설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이 둘은 정말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혜자가 자신의 자리를 잃을세라 두려워하며 사흘 밤낮을 장자를 찾았지만 이를 알고 온 장자를 해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귀곡자鬼谷子를 같은 스승으로 모시고 동문수학한 손빈孫臏과 방연龐涓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처절한 복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손빈과 방연은 모두 전국시대를 살았던 장수들입니다. 방연은 동문 손빈이 자기보다 재능이 뛰어남을 시기하며 그의 종지뼈를 발라내는 사형私刑을 저지르고, 손빈은 이보다 더한 생명의 위기를 탈출하여 뒷날 방연을 전장에서 처철하게 복수합니다.

한 가지만 더 찾아봅니다. 전국시대 말엽 한 나라의 공자 한비자韓非子와 진왕秦王 영정嬴政(뒷날 통일 진나라의 시황제)의 재상이었던 이사李斯의 이야기도 비슷합니다. 한비자와 이사, 이 둘은 순자荀子를 같은 스승으로 모시고 동문수학했습니다. 뒷날 진 나라의 재상이 된 이사는 임금이 한비자의 글을 읽고 탄복한 나머지 그를 궁전으로 불렀지만, 이사는 자기보다 재능이 뛰어난 한비자가 자신을 밀어내고 재상이 될세라 두려워하며 한비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분명 좋은 친구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서로 달랐지만 폭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지 않습니다. 장자는 자신의 가치관과 인생철학을 드러내는 데 그쳤을 뿐 혜자를 다른 궤도로 옮겨 행동하도록 강제하지 않습니다. 이제추수의 마지막 문단을 여기 불러옵니다. 앞의 이야기가 권력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를 보여준다면 이 문단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대단히 큼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널리 알려진 철학적 논쟁의 원문을 먼저 봅시다.

 

장자와 혜자가 호수 물가에서 노닐고 있었다. 장자가 입을 열었다.

피라미가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구려. 이게 물고기의 즐거움이지요.”

그러자 혜자가 바로 받았다.

그대는 물고기가 아니면서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오?”

이제 장자가 맞받았다.

그대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는 걸 아오?”

혜자가 다시 받았다.

나는 그대가 아니니까 당연히 그대를 알지 못하오. 그러니까 그대는 정말로 물고기가 아니니까 그대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게 확실하오.”

장자가 이에 응하여 입을 열었다.

,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대는 어떻게 그대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오?’라고 물었소. 이는 이미 내가 안다는 것을 알고서 내게 물은 거요. 나는 호수 물가에서 물고기를 알았단 말이오.”

 

莊子與惠子遊於濠梁之上莊子曰:「儵魚出遊從容是魚樂也。」惠子曰:「子非魚安知魚之樂?」莊子曰:「子非我安知我不知魚之樂?」惠子曰:「我非子固不知子矣子固非魚也子之不知魚之樂全矣。」莊子曰:「請循其本子曰汝安知魚樂云者既已知吾知之而問我我知之濠上也。」

 

장자와 혜자가 호수濠水 물가에서 물고기를 보며 논쟁을 벌이는 모습

 

위 원문의 숙어儵魚는 피라미 조어鯈魚라야 마땅하다는 게 많은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기에 나도 이를 따랐음을 밝힙니다.

, 잠시 머리도 식힐 겸 가벼운 문제 하나 던집니다. ‘장자와 혜자가 호수濠水 물가에서 물고기를 보며 논쟁을 벌이는 모습이라는 캡션이 달린 이 삽화 속의 두 사람 가운데 어느 쪽이 장자일까요? , 벌써 알고 있었군요. 그렇습니다. 왼쪽 검은색 옷을 입은 이가 바로 장자입니다. 벼슬길에 오르지 않은 일반 백성은 숯이나 먹의 빛깔처럼 어둡고 짙은 색의 옷을 입었습니다. 민중이나 백성을 이르던 여민黎民이나 검수黔首에서 은 모두 검다는 뜻입니다.

장자가 혜자와 함께 호수 물가에서 벌인 철학적 논쟁으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이 논쟁은 물고기가 즐거운지 아닌지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는지를 놓고 펼쳐집니다. 이 논쟁은 장자와 혜자가 가진 각기 다른 철학 관념의 틈이 엄청 크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장자는 천지天地와 나는 함께 살고, 만물은 나와 하나라고 일관되게 주장합니다. 또 사람은 이성이 아닌 직관으로 만물의 상태를 감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기에 물고기의 즐거움도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혜자는 다릅니다. 그는 논리, 곧 객관적 법칙성과 이성을 강조합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주관적인 느낌을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장자는 세속적이거나 일반적인 한계를 벗어나서 감성적인 방식으로 자기의 심경을 물고기에 투사합니다. 그러했기에 자신은 물고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혜자는 이성적 각도에서 출발하여 사람은 물고기의 느낌을 주관적으로 억측하고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논쟁은 도가와 명가의 두 가지 서로 다른 사유 방식을 보여줍니다. 도가는 감오感悟, 느끼어 깨달음을 중시합니다. 또 자연의 융합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명가는 논리를 중시합니다. 또 사물이나 개념의 한계나 범주의 확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호수 물가에서 장자와 혜자가 벌인 논쟁은 두 사람의 사유 방식의 차이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지혜의 넓이와 깊이까지 드러냅니다. 장자는 이 논쟁에서 혜자의 논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그가 이미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고 있다고 뒤집어 반박합니다. 이렇게 교묘하게 혜자가 던진 질의를 되받아칩니다.

아주 깊고 오묘한 철학적 묘미로 독자들을 깊이 끌어들이는 논쟁입니다. 이로써 호수 물가에서 물고기를 바라보며 벌인 이 논쟁은 중국 고대 철학사에 중요한 경전으로 자리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