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無用]과 ‘쓸모없음의 큰 쓸모’[大用]……장자와 혜자의 두 번째 논쟁
혜자가 장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게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걸 가죽나무라 부르오. 이놈의 큰 줄기는 울퉁불퉁하여 먹줄을 댈 수가 없고, 작은 가지는 구불구불 비비 꼬여서 자를 댈 수가 없소. 길가에 서 있지만 목수도 거들떠보지 않소. 지금 선생이 하는 말은 크지만 쓸모가 없으니 사람들이 외면하는 거요.”
이 말에 장자는 이렇게 받았다.
“선생은 들고양이나 족제비를 보지 못했소? 땅바닥에 바짝 웅크리고서 놀러 나오는 닭이나 쥐를 노렸다가 이리저리 뛰며 높고 낮은 데를 가리지 않소. 그러다가 결국은 덫에 걸리거나 그물에 걸려서 죽게 되오. 하지만 털 검고 꼬리 긴 저 소는 큰 몸집이 하늘 드리운 구름 같아서 큰 일 할 수 있지만 쥐는 잡을 수 없소. 지금 선생이 큰 나무를 가지고 있지만 쓸모없어서 걱정인 듯하오만, 어째서 이놈을 무하유無何有의 땅, 끝없이 넓은 들판에 심고 그 곁에서 노닐며 쉬다가 그 그늘에서 누워 잠들지는 못하오? 도끼에 찍힐 일도 누가 해를 끼칠 일도 없소. 쓸모가 없다고 괴로울 일이 어디 있겠소?”
惠子謂莊子曰:「吾有大樹,人謂之樗。其大本擁腫而不中繩墨,其小枝卷曲而不中規矩,立之塗,匠者不顧。今子之言,大而無用,眾所同去也。」莊子曰:「子獨不見狸狌乎?卑身而伏,以候敖者;東西跳梁,不避高下;中於機辟,死於罔罟。今夫斄牛,其大若垂天之雲。此能為大矣,而不能執鼠。今子有大樹,患其無用,何不樹之於無何有之鄉,廣莫之野,彷徨乎無為其側,逍遙乎寢臥其下?不夭斤斧,物無害者,無所可用,安所困苦哉!」
앞 꼭지 문단의 논쟁이 여기 다시 이어집니다. 장자는 또다시 ‘무용지용無用之用’, 곧 ‘쓸모없음의 큰 쓸모’를 강조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무용지용’이 실제적인 용도나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없는 ‘쓸모’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학이야말로 ‘무용지용’이라고 믿습니다. 철학은 다른 과학이나 수학처럼 실제 생활에 직접적으로 응용할 수 없으나 한 사람의 지혜나 삶의 방식에 관계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무용지용’에 대한 해석 가운데 하나입니다.
장자가 살았던 전국시대는 제후국 사이에 전쟁이 그칠 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야말로 피가 튀고 창이 번득이던 시대였습니다. 전국시대의 기점은 학자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대체로 기원전 475년으로 봅니다. 종주국 주周 왕실의 권위가 급격히 쇠약해지면서 제후국끼리 병탄을 위한 피 튀기는 전쟁이 계속되다가 기원전 221년 칠웅 중 서쪽의 진秦이 천하를 통일함으로써 전국시대는 막을 내립니다. 장자는 전국시대 2백 5십여 년 중 한가운데를 자그마한 제후국 송宋에서 여든 해 남짓 살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장자도 제 몸 건사하는 데 마음을 두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칠원리漆園吏라는 하찮은 벼슬을 한 적이 있지만 벼슬길의 흉험함과 윗사람 모시기가 곧 호랑이 곁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또 벼슬길의 잔혹함이 사람의 가치를 깨뜨린다고 생각하며 인간의 타고난 바탕을 지키는 일을 모든 것의 앞자리에 놓습니다.『장자』전체를 꿰뚫은 핵심되는 낱말로 ‘무공無功’이나 ‘무명無名’, 그리고 ‘무위無爲’ 등이 탄생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무無’ 자를 공분모로 가진 ‘무용지용無用之用’도 같은 뿌리입니다.
혜자는 장자에게 들이댄 ‘쓸모없는 가죽나무’로써 선생의 말은 크기만 했지 아무런 쓸모가 없기에 사람들이 외면해 버린다고 윽박지르며 기를 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장자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실용적인 태도나 공명이나 이익의 눈빛으로 사물을 대하지 말아야 비로소 ‘소요유’하며 그 나무 그늘에서 편히 쉴 수 있다고 단정적으로 분명하게 말합니다. 쓸모없다는 큰 나무를 통하여 생명의 자유와 편안함을 느끼며 생명의 즐거움까지 얻는다, 그렇다면 바로 이것이 ‘무용지용’이라는 것입니다.
장자와 혜자는 좋은 친구가 아닌 듯하지만 정말 좋은 친구입니다. 좋은 친구가 아니라면 두 사람의 논쟁은 앞 꼭지의 문단에서 끝났어야 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장자』전편을 통하여 수없이 많은 논쟁을 벌입니다. 더구나 혜자의 죽음에 낙담한 장자의 모습은 독자들을 자못 마음이 아립니다. 이 부분만 떼어서 보기로 하지요.『장자』외편「서무귀徐無鬼」에서 데려옵니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내 재능을 보일 수 있는 상대가 없어졌소. 나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졌단 말이오.”
自夫子之死也,吾無以為質矣,吾無與言之矣。
장자가 어떤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혜자의 무덤을 지나며 한 말입니다. 자기와 논쟁을 벌일 사람을 잃은 외로움이 자못 진합니다.
혜자는 가죽나무가 크기만 했지 울퉁불퉁 비비꼬여서 목수도 눈길 주지 않는다며 장자가 하는 말이 큰소리로 들릴지 몰라도 쓸모없는 빈말일 뿐이라고 차갑게 비틉니다. 목수가 눈길조차 주지 않는 큰 가죽나무처럼 당신의 말에 누구 하나 귀기울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무런 쓸모없는 큰 가죽나무라면 마땅히 버려야 하듯이 당신 말도 크기만 했지 쓸모없으니 버려야 한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혜자의 관점은 이렇게 분명합니다.
장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 가죽나무의 큰 가지 작은 가지 울퉁불퉁 비비꼬이며 자랐기에 그 쓸모없음으로 번쩍이는 도끼날을 맞지 않고 끝까지 천수를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어떻든 장자는 화제를 슬쩍 바꾸는 듯합니다. 그 나무 아래에서 더위를 피하며 유유자적 소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나무 그늘이라는 공간은 피가 튀고 창이 번득이는 전쟁터도 아니기에 상처받을 일도 없습니다. 오로지 자유와 소유만이 있을 뿐입니다.
또 장자는 ‘쓸모없음’에는 자유가 있지만 ‘쓸모 있음’에는 오히려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한西漢의 역사학자 유향劉向이 쓴『설원說苑』「정간正諫」에는 총명한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려는데, 바로 사마귀 뒤에 참새가 사마귀를 노려 죽이려는 장면이 있습니다. 유향보다 2백 년도 훨씬 앞서서 장자는 이미 사물의 쓸모 있음의 한쪽만 보다가는 배후에 놓인 위험을 못 볼 수도 있다고 밝혀 말합니다. 장자의 위대함입니다.
가죽나무 이야기는 ‘쓸모없음’을 하찮게 여기며 깔보기까지 하는 우리에게 삶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이릅니다.
가죽나무는 바로 ‘먹줄도 댈 수 없고 자도 댈 수 없기에’ 도끼나 톱의 날카로움을 피하여 세상에서 목숨을 잃지 않고 편안한 삶을 누립니다. 혹여 나는 정말 쓸모없는 존재야, 정말 눈곱만한 가치도 없는 존재야, 이렇게 절망할 때, ‘무용지용’이야말로 참으로 ‘유용有用’할 수 있다며 생각을 다잡으며 절망의 깊은 수렁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캄캄한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처럼 ‘무용지용’이 곧 ‘대용大用’이 된다는 지혜는 세상에 이름을 남긴 예술가의 삶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장자가 세상을 떠난 지 1천 몇 백 년 뒤, 11세기 북송北宋을 산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그렇습니다. 당唐 나라와 송宋 나라 때의 고문의 대가 여덟 명을 가려 뽑아 우리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라고 이릅니다. 이 가운데 동파 소식과 동생 소철蘇轍, 그리고 아버지 소순蘇洵, 이들 삼부자가 차지합니다. 글을 잘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진 명성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동파 소식의 문명文名은 더욱 대단하여 먼 동쪽 고려高麗에서는 그를 흠모하며 자식 이름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金富軾이 그렇습니다.
동파 소식의 문장에 대한 재능은 다른 많은 이들을 뛰어넘었으나 벼슬길은 울퉁불퉁 평탄하지 못하여 결국은 남쪽 먼 황주黃州로 폄적됩니다. ‘쓸모없음’으로 불명예스러운 판정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유배 기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습니다. 자기 수양은 물론 문학과 예술과 철학에 대한 탐구를 계속했습니다. 이때 이루어진 작품『적벽부赤壁賦』는 천고의 명작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되며 전해옵니다. ‘쓸모없음’의 문학 작품이 문학사의 진귀한 보물이 되었습니다. ‘쓸모없음’이 ‘큰 쓸모’로 몸을 바꾸었습니다.
참, ‘무하유無何有의 땅’을 지나칠 수 없습니다. 달리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라고도 하는 이 말은「소요유」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또 다시 내편「응제왕應帝王」에 한 번 더 등장합니다. 그리고 외편「지북유知北遊」와 잡편「열어구列禦寇」에 한 번씩 등장합니다. 이들은 모두 장자가 지향하는 지점을 명확히 한다는 데서 공통됩니다.
‘어째서 이놈을 무하유無何有의 땅, 끝없이 넓은 들판에 심지 않소?’라고 장자는 혜자에게 말합니다. 장자는 ‘무하유의 땅’을 통하여 물질의 얽매임으로부터 초탈하여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강렬하게 추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장자는 설령 쓸모없이 커다란 가죽나무일지라도 대수롭지 않다고 업신여기며 멀리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무하유의 땅’, 곧 끝없이 넓은 들판에 심어 그곳에서 자유롭게 크도록 해야 한다고 이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람들이 이 나무 그늘에서 느릿느릿 쉬엄쉬엄 ‘소요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자는 혜자에게 건넨 이 이야기를 통하여 외계의 물질적 조건이 주는 얽매임에서 벗어나서 그가 추구하는 절대 자유와 조용하고 편안한 생활 태도를 드러냅니다. 자연에 순응하는 생활, 마음이 누리는 얽매임 없는 자유, 물질세계에 속박되지 않는 삶의 추구, 이런 것들은 모두 장자 철학의 고갱이입니다. 사실 ‘무하유의 땅’은 장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유토피아, 곧 천국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죽은 뒤에 이르러 살아야 할 세상으로 천국을 꿈꿉니다.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죽은 뒤에 맞을 천국에 너무 깊이 잠긴 나머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일에 게을러서야 어디 될 일입니까? 장자는 ‘무하유의 땅’을 통하여 천국이 되어야 할 이 세상의 모습을 우리에게 내놓습니다. ‘무하유의 땅’은 어디에도 없는 땅이 아니라 ‘소요유’하며 절대 자유를 누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곳입니다.
이제 내편을 벗어나 외편과 잡편에 기록된 장자와 혜자의 논쟁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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