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4. 반그림자가 그림자에게 묻다[罔兩問景]- 서로 의존하는 세상 만물
반그림자가 그림자에게 물었다.
“아까는 걷더니 지금은 멈추고, 조금 전에는 앉았더니 지금은 서 있으니, 어찌하여 그대만의 지조가 없소?”
그림자가 대답했다.
“나는 기대는 데가 있어 그런 거지요. 내가 기대는 것은 또 기대는 데가 있어 그럴 테지요. 내가 기대고 있는 것이 설마 뱀의 비늘이나 매미의 날개일까요? 내가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이렇게 되지 않았는지도 알 수 없잖소?”
罔兩問景曰:「曩子行,今子止,曩子坐,今子起,何其無特操與?」景曰:「吾有待而然者邪!吾所待又有待而然者邪!吾待蛇蚹、蜩翼邪!惡識所以然?惡識所以不然?」
‘반그림자가 그림자에게 묻다’[罔兩問景], 이 이야기는 그림자 밖의 엷은 그림자, 곧 망량罔兩과 그림자가 나눈 대화입니다. 장자는 이를 통하여 자주와 의뢰, 그리고 자연의 도에 대하여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반그림자는 그림자에 기대어 행동합니다. 자주성이라고는 없지요. 그림자는 빛과 주위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기에 또한 자주성이라고는 없습니다.
반그림자는 그림자의 자주적 행동을 앙모하지만 그림자가 과연 자주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집니다. 그래서 ‘아까는 걷더니 지금은 멈추고, 조금 전에는 앉았더니 지금은 서 있으니, 어찌하여 그대만의 지조가 없소?’라고 묻습니다. 그림자의 대답을 요약하면, 만물은 어떤 조건이나 존재에 기대어 행동할 수밖에 없으며 절대적인 자주성이란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그림자와 그림자가 기대어 존재한다는 말은 세상의 만물이 모두 끊임없는 변화와 상호 의존 상태 속에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만물은 그것을 만들어내는 조물주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긴다는 것입니다. 누가 다른 누구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만물은 제일齊一하고 상대성을 갖고 있다는 장자 철학의 핵심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장자는 ‘도道’의 존재를 주장합니다. 앞서 이 장의 첫 꼭지에서도 밝혔듯이 ‘도’는 ‘자본자근自本自根’하는 존재입니다.
서로 기대어 존재하는 줄기를 따르면 최후에 만나는 존재가 ‘도’라면, 이는 곧 ‘자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노자 철학의 핵심 명제 가운데 하나인 ‘도법자연道法自然’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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