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친공주 2

오손烏孫에서 눈물 흘리며 시를 읊은 공주-세군細君

오손烏孫이 말 1천 필을 건네고 한나라 딸을 맞이하려고 하자, 한나라는 종실의 딸인 강도옹주江都翁主를 오손왕의 아내로 보냈고, 오손왕 곤모昆莫는 (그녀를) 우부인으로 삼았다. 烏孫以千匹馬聘漢女, 漢遣宗室女江都翁主往妻烏孫, 烏孫王昆莫以爲右夫人. 『사기史記』「대원열전大宛列傳」 한고조 유방 흉노를 치다가 포위되었는데, 어느 날 곤경에서 벗어나려 화친을 도모했네. 그때에도 날카로운 검 있었는데, 어찌하여 봉춘군을 죽일 이 없었던고. 漢帝西征陷虜塵, 一朝圍解議和親. 當時已有吹毛劍, 何事無人殺奉春. 서한의 개국 황제 고조 유방이 백등산에서 흉노의 선우單于 묵돌冒頓에게 밤낮 이레 동안 포위되었다가 겨우 빠져나와 조정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강대한 묵돌의 군대가 북쪽 변경을 걸핏하면 넘보는 상황에서 평화를 기대하기는 힘..

토번吐蕃으로 간 당나라의 화친공주-문성공주文成公主

나라의 기운이 한창 번성하던 시대에는 최고 통치자의 위세에 전혀 막힘이 없었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그랬다. 그가 나라를 이끄는 힘이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이 우렁찼다. 당의 북쪽에 동서로 제법 큰 세력을 펼치던 동돌궐과 서돌궐도 이세민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지 네 해만에 무릎 꿇렸고, 십 년도 채 안 된 정관 9년(AD 635년)에는 당의 왼쪽 옆구리를 집적거리던 토욕혼土谷渾을 물리쳤다. 몇 해 뒤, 정관 12년(AD 638년)에는 송주松州(지금의 스촨성四川省 쑹판현松潘縣)에서 벌어진 큰 싸움에서 토번에게 큰 패배를 안겼다. 당시 송주를 미리 점령했던 토번의 군주는 쑹짼감뽀松贊干布였다. 그는 젊은 나이에 칭장고원靑藏高原에 여기저기 흩어진 부족들의 잦은 내란을 잠재우고 이들을 하나로 모아 왕국을 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