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衛 나라의 어떤 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다. 새댁은 수레에 오르자 마부에게 이렇게 물었다.
"바깥쪽에서 달리는 말은 뉘 집 것이오?"
"빌렸습니다."
그러자 새댁이 마부에게 이렇게 일렀다.
"바깥쪽에서 달리는 말은 채찍질해도 되지만 안쪽에서 달리는 말은 채찍질해선 안 되오."
수레가 신랑 댁 문간에 이르자 새댁은 들러리의 부축을 받으며 수레에서 내렸다. 이때, 새댁이 들러리에게 이렇게 일렀다.
"빨리 부엌의 불을 끄게, 자칫 불나겠네."
새댁이 이제 방에 들어가려는데, 마당에 놓인 돌절구가 눈에 들어오자, 이번에는 이렇게 일렀다.
"이놈을 창문 아래로 옮기게, 오가는 이들에게 거치적거리겠네."
이 말을 들은 신랑 댁 어른들이 피식 웃었다.
새댁이 이른 세 마디는 하나같이 꼭 필요한 말이었지만 비웃음을 면치 못했으니, 이는 당시 이 말을 해야 할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게 없는 말은 언제나 침묵보다 훨씬 가벼운 법이다.
<전국책戰國策> '송위책宋衛策' 가운데 '위인영신부衛人迎新婦(위나라 사람이 새댁을 맞아들이다)' 꼭지 전문이다.
꼭 필요한 말도 상황이 아니면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서 이르는 상황이란 발화의 시간과 장소를 가리킨다.
침묵이 황금보다 오히려 값진 경우를 하루에도 어디 한두 번 만나는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경우 하는 게 바로 '예禮'이며,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 하지 않는 게 바로 '의儀'이다. 말과 행동은 '언행言行'으로 한 묶음이지만 '언言'을 '행行'에 앞세워 낱말을 만든 선인의 지혜를 한 번쯤은 곱씹어 볼 일이다.
말이란 나들이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실제보다 불리기를 더없이 좋아하는 속성이 있다. 말을 애써 삼갈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정 해야 할 말이라면 시간과 장소를 힘써 가려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 나온 이 새댁처럼 동네의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화자와 청자의 관계도 꼼꼼히 따져야 한다. 저마다 사회적 지위나 자격에 따라 각각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나팔꽃은 저녁에 나팔 불지 않고 분꽃은 새벽에 꽃잎 열지 않는다. 이런 세상 이치를 나팔꽃도 분꽃도 모두 잘 아는데, 덜 익은 인간은 이 이치를 아직 깨닫지 못한다. 허투루 입을 여는 모습을 어느 곳 어느 때나 늘 만나기에 하는 말이다.
이 이치를 지키지 않을 때, 말은 무게를 잃고 비틀거리다 쓰러진다. 말을 한 사람도 함께 비틀거리다 쓰러진다.
* <전국책>에서 인용한 위의 '위인영신부'는 온전히 '촛불횃불'이 번역하였으며, 이 고전 명문장[말]에 대한 '말'도 '촛불횃불'의 창작품입니다.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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