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휘지王徽之가 문을 열었다. 흰 눈이 흩날리는 밤이었다. 멀리 떨어진 친구 대안도戴安道가 보고 싶었다.
“배를 띄워라!”
그 밤, 밤새 노를 저어 대안도의 집 대문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오는 새벽이었다.
“가자, 배를 돌려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 갸웃하는 노꾼에게 그가 한 말은 이랬다.
“흥이 나서 왔지만 이제 흥이 다했으니, 됐네.”
그리움이었을까, 눈 내리는 밤, 이 양반 가슴을 흔들었던 흥이란 것이. 지금으로부터 1천 6백여 년 전, 중국 동진 때 이야기이다. 온 산천을 하얗게 만든 흰 눈이 이 그리움의 배경으로 제격이다.
이 둘이 만나 술잔 기울이며 새벽을 맞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았어야 그 맛이 더 진했을 것이다. 맛이 진해야 멋이 넘칠 게 아닌가. 흥도 역시 그러하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남아있는 원문을 내 상상을 더해 약간 각색했다. 신명나는 이는 아랫쪽에 원문을 모실 터이니
하나하나 짚으며 다시 읽어도 좋겠다, 한문 공부도 할 겸.
사족 한 두 마디 붙이면, 자유子猷는 왕휘지의 자字이다. 이 양반은 서예로 이름난 왕희지王羲之의 다섯째아들로서 역시 이름난 서예가이다. 자유가 찾았던 대안도戴安道 역시 조소彫塑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던 예술가이다.
王子猷居山陰, 夜大雪, 眠覺, 開室, 命酌酒, 四望皎然. 因起彷徨, 詠左思《招隱》詩. 忽憶戴安道. 時戴在剡, 即便夜乘小舟就之. 經宿方至, 造門不前而返. 人問其故, 王曰:“吾本乘興而行, 興盡而返, 何必見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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