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말엽, 진秦 나라 군주 영정贏政이 칠웅 가운데 최후의 승자가 되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시황제가 된 이후, 중국 역사에 이름을 올린 황제는 모두 4백여 명이다. 이 가운데 하잘것없는 평민 출신으로 황제가 된 이는 서한西漢을 연 유방劉邦과 명明 나라를 연 주원장朱元璋, 이 둘뿐이다. 절간에서 불목하니로 일하던 주원장이 원元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일어선 홍건군에 참가함으로써 마침내 명나라의 개국황제가 된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만나려는 서한의 개국 황제 유방에 비하면 1천 년 하고도 5백 년도 더 지난 뒤의 일이다. 기원전 256년 섣달 스무여드레, 전국시대 초楚 나라 땅 패풍沛豊에서 태어난 유방이 중국 역사상 평민 출신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최초의 인물이 된 데에는 그의 어머니 유온의 간절한 꿈에 힘입은 바 크다.
전국시대는 그야말로 피가 튀고 창날이 번득이는 때였다. 춘추시대 초기 1백 4십여 개에 달하던 제후국이 이 시대에 이르면 이른바 전국칠웅이라 일컫는 일곱 개의 나라로 재편되었으니 그 동안 패자가 되기 위하여 겨룬 크고 작은 전쟁이 수도 없이 많았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 가운데 기원전 262년에 시작하여 기원전 260년에 끝난 장평대전長平大戰은 이 시대의 참혹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趙 나라 땅 장평에서 벌어진 이 전쟁에서 승리한 진나라는 포로로 잡은 조나라 군사 45만 명을 생매장하는 것으로 전쟁의 막을 내렸다. 이로써 전국칠웅 가운데 마지막 일웅은 이미 진나라가 차지하는 것으로 예비가 된 셈이었다. 칠웅 가운데 서쪽 변방 척박한 땅덩어리를 차지하여 하잘것없는 제후국으로 낮보이던 진나라의 위상이 한껏 높아지자 넓은 땅덩어리에 물산까지 한없이 풍부하던 남방의 제후국 초나라도 결국 진나라의 도마에 오른 물고기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신산한 평민의 삶을 겨우겨우 이어가던 유온 부부는 셋째아들 유방을 낳았다.
역사의 무대에서 비극을 연출하며 고통을 안기는 자는 예나 이제나 벼슬 높고 권세 있는 자들이지만 재난 속에서 이 고통을 감내하는 일은 언제나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몫이었다. 역사에 정의는 존재하는가? 역사의 갈피를 펼칠 때마다 탄식 섞인 물음을 던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평민들의 꿈은 언제나 매우 지성스럽고 절실했다. 전국시대 말엽, 운세가 기우는 초나라 땅 패풍의 한 아낙네의 꿈도 간절하기는 이웃의 다른 여인 못지않았다. 사마천司馬遷은 <고조본기高祖本紀> 첫 번째 단락을 이렇게 시작한다.
고조는 패풍읍 중양리 출신으로 성은 유劉요 자는 계季이다. 그의 아버지는 태공太公이며 어머니는 유온이다. 그의 어머니 유온은 일찍이 큰 물 곁에서 쉬다가 꿈에 신령과 만났다. 이때,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치며 날이 어두워졌다. 태공이 와서 보 니 교룡이 아내의 몸 위에 있었다. 이후 아이를 가지게 되어 마침내 고조를 낳았다.
여기서 일컫는 고조는 서한의 개국 황제 유방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곳에서 유방의 부모 유씨 부부를 만난다. 아버지는 유태공, 어머니는 유온, 제법 그럴 듯하게 보이는 이름이지만 실상은 이름은 없고 성만 살아있다. '태공'은 나이든 남성을 가리키거나 부를 때 쓰는 보통명사이다. 그리고 '온'은 나이든 여성을 가리키거나 부를 때 쓰는 보통명사이다. 이 시대 평민들의 고달픈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 지칭이요 호칭일 따름이다. 좀 높여서 '유씨 어른' 또는 '유씨 할아버지'이지만 거칠게 쓰면 '유씨 영감' 아니면 '유씨 노인'이다. '유온'도 좀 점잖게 일러 '유씨 부인' 또는 '유씨 아주머니'이지 낮추 이르면 '유씨 마누라' 아니면 '유씨 아지매'이다. 맞갖은 이름조차 제대로 가지지 못한 평민 중의 평민, 다른 이를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을 한 손에 쥔 이들의 눈으로 보면 이들 부부는 분명 철저한 '아랫것'이었다.
평민 중의 평민, 철저한 '아랫것'이었던 유씨 부부에게도 '있음의 세계'를 벗어나 마침내 누리고 싶은 '있어야 할 세계'는 있었다. 넘치고 넘쳐서 채울 곳간을 날마다 새로 세워도 더 가지려는 욕망으로 허덕이는 '가진 자'보다 내려가려야 더 내려갈 곳 없는 '아랫것'일수록 미래의 어느 날을 향한 소망은 한결 지성스럽고 간절했을 터이다. 이런 지성스럽고 간절한 소망은 예나 이제나 여성의 마음이 남성의 마음보다 더 짙게 마련이다.
초나라 땅 패풍읍 중양리에 사는 유태공과 그의 부인 유온이 나중에 서한의 개국 황제가 된 아들을 낳았다는 <고조본기>첫 번째 단락은 짧은 문장 여섯 개뿐이다. 이 여섯 가운데 앞의 두 문장은 그냥 설명하는 문장이다. 그러기에 메마르고 딱딱할 수밖에 없다. 이런 글은 독자에게 감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씨 아지매' 유온의 꿈 이야기에 이르면 달라진다. '정보'보다는 '변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있음의 세계'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있어야 할 세계'는 오지 않는다. 변화를 통하여 '있어야 할 세계'를 만들려면 '신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유온의 꿈은 사실이 아닐지라도 '진실'하다. 이것이 서한 개국을 위하여 지혜 넘치는 어떤 신하가 만들어낸 이야기라 할지라도 이 신화를 통하여 변화를 도모한 주인공은 역시 유온일 수밖에 없다.
'유씨 아지매' 유온이 꿈에 신령을 만났다. 또 '유씨 영감' 유태공이 큰 물 곁에서 잠든 아내의 몸 위에 서린 교룡을 보았다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어도 좋다. 거듭 말하거니와 신화는 정보를 전달하려고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변화를 갈망하는 간절한 마음이 탄생시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황제의 신성함을 보장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신화라고 할지라도 하잘것없는 신분으로 온갖 간난과 신고 속에 살아온 '아랫것'이 최고의 신분 상승을 이루었다는 점은 지금 봐도 통쾌하다. '유씨 아지매', 화이팅!
* <전국책>에서 인용한 위의 '위인영신부'와 <고조본기>는 온전히 '촛불횃불'이 번역하였으며, 이 고전 명문장[말]에 대한 '말'도 '촛불횃불'의 창작품입니다.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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