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세 해 뒤에 후侯에 봉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봉해진 지 여덟 해 뒤엔 장군과 승상에 임명되어 나라의 큰 권력을 오로지할 만큼 높은 자리에 앉을 터인즉, 대신들 가운데 당신과 겨눌 자가 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뒤 다시 아홉 해가 지나서 굶어 죽을 것입니다."
서한의 개국 공신 주발周勃의 둘째아들 주아부周亞夫가 후로 봉해지지 않고 한낱 군수의 자리에 있을 때, 하늘이 내린 관상쟁이로 널리 알려진 허부許負가 그의 관상을 보며 한 말이다. 위에 단 세 줄로 인용한 글은 <사기> '강후 주발 세가' 가운데 한 부분이다.
후작에 봉해지며 귀하게 될 인물이 굶어 죽다니. 얼굴에 웃음을 띤 채 그 까닭을 자세히 알려달라는 주아부의 요청에 허부는 그의 입을 가리키며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 얼굴 코끝 양쪽 세로로 생긴 주름이 입 가장자리에 맞물렸으니, 이래서 굶어죽을 상이라는 겁니다."
주아부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통일 진秦 나라 시황제 때, 옥덩어리를 손에 쥐고 태어난 지 석 달만에 말까지 하게 되었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신화를 만들어 낸 허부의 관상은 날짜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들어맞았다.
세 해 뒤, 서한의 문제는 주아부의 형이 죄를 짓자 동생인 주아부를 조후로 봉했다. 이어서 허부의 말대로 장군과 승상이 되어 권세를 누렸지만, 경제가 문제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 황제의 비위에 거슬린 그는 끝내 닷새 동안의 단식 끝에 피를 토하며 세상을 떠났다.
사마천은 주아부가 피를 토하며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단식'도 굶는 것이긴 하지만 먹을 것 없어서 굶은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허부의 영험함을 더욱 높이어 신화적인 인물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사기>의 또 다른 편장에도 허부는 단역 배우처럼 무대에 올랐다간 금세 사라진다. 사마천은 <유협열전>에서 유협 곽해郭解가 '관상을 잘 보는 허부의 외손자'라고 이르며 당신이 직접 곽해를 본 적이 있다고 기록했다. 그렇다면 당시 중국 사람들이 '신상神相'이라는 명예를 안긴 허부의 존재를 몰랐을 리 없을 테지만, 사마천은 허부를 열전 어느 곳에도 입전시키지 않았다. 역사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일까. 어쩌면 인간의 길흉화복이야말로 자신의 마음닦기에 달렸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알 수 없다.
허부는 주아부가 단식으로 생을 마치기 다섯 해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자신이 관상으로 예언한 주아부의 마지막은 보지 못했다. 그녀는 그래도 자기의 예언을 확신했을까, 이것 또한 알 수 없다. 그리고 사마천은 주아부가 세상을 떠난 해를 앞뒤로 한두 해 사이에 태어났다. 관상이나 점복으로 길흉을 셈하며 미래를 예측하려던 인간의 이야기를 수집하며 큰 역사가 사마천의 흉리는 어떠했을까, 다시 생각에 잠긴다.
이제 한 단락만 붙인다. '허부'는 남성일까, 아니면 여성일까? 이름자 '부負'가 여성에게 쓰이는 '부婦'와 음이 같다는 이유로 여성이었으리라 추정하는 이도 있다. 또 한고조 유방에게 외상술 흔쾌히 내준 술집 주모 '무부武負'의 이름자도 '부 負'였다는 점을 들어 앞의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물론 허부가 남성이었다는 주장을 펼친 이도 있다. 하지만 여성이었다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는 듯하다. 작은 낌새로 내일을 예측하는 능력은 여성이 남성을 훨씬 능가한다는 말도 '여성 허부'의 주장에 꽃을 달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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