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초기, 한韓 나라는 칠웅 가운데 상대적으로 약소한 제후국이었다. 하지만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 따르면 한나라도 신불해申不害가 펼친 개혁이 성공을 거두며 다른 제후국들이 함부로 넘보지 못했던 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불해는) 학술로써 한나라 소후昭侯에게 유세하여 재상이 되었다. 그는 안으로는 정치와 교육을 바로 닦고 밖으로는 제후들을 상대하기를 열다섯 해 동안 했다. 결국 그가 자리에 있을 때 나라는 다스려지고 군대는 강하여 한나라를 쳐들어오는 자가 없었다.
<사기> 속의 위 원문을 이어 붙인다.
學術以干韓昭侯, 昭侯用爲相. 內修正敎, 外應諸侯, 十五年. 終申子之身, 國治兵彊, 無侵韓者.
칠웅의 자리에는 올랐지만 상대적으로 약소했던 한나라도 제 몸 하나 간수하며 제법 어깨를 폈던 시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제 손안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귀족들의 거센 저항은 개혁의 지속을 무너뜨리며 그런대로 괜찮던 시기도 짧게 끝난다. 신불해가 세상을 떠난 지 마흔 해쯤 뒤, 기원전 376년부터 세 해 동안 군주의 자리에 있었던 이가 바로 애후哀侯였다.
바로 이 시기에 대부 엄중자嚴仲子가 한나라 애후의 굄을 받으며 제법 세력을 가지게 되자 재상 협루俠累가 견제하고 나섰고 마침내 둘 사이는 풀지 못할 원수 사이가 되고 말았다. 구석에 몰린 엄중자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위衛 나라 땅 복양濮陽으로 몸을 피했다. 엄중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며 한나라 재상 협루에게 원한을 갚을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이때, 엄중자가 만난 인물이 바로 섭정聶政이다. 당시 섭정은 사람을 죽이고 원수를 피해 어머니와 누이와 함께 제나라로 와서 도축을 생업으로 삼고 있었다. '자객열전刺客列傳'에서 한 부분을 데려 온다.
(엄중자가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섭정에게 말했다.)
“제게는 원수가 있습니다. 원수 갚아 줄 이를 찾아서 제후들의 나라를 두루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제나라에 이르러 당신의 의기가 매우 높다는 말을 가만히 듣고 100금을 올리오니, 장차 어머니를 위해 음식 경비로 쓰시게 하여 당신과 친하게 사귀려는 뜻이지 어찌 감히 달리 바람이 있겠습니까!”
이에 섭정이 입을 열었다.
“제가 뜻을 낮추고 몸을 욕되게 하며 저자에서 백정 노릇을 하는 것은 단지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하려는 데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살아 계신 동안 저는 제 몸을 감히 다른 이에게 허락할 수 없습니다.”
엄중자가 굳이 100금을 드리려고 해도 섭정은 끝내 받지 않았다. 그런데도 엄중자는 결국 빈객과 주인의 예를 다하고 자리를 떴다.
원문은 이러하다.
臣有仇, 而行游諸侯衆矣 ; 然至齊, 竊聞足下義甚高, 故進百金者, 將用爲大人粗糲之費, 得以交足下之驩, 豈敢以有求望邪!” 聶政曰 : “臣所以降志辱身居市井屠者, 徒幸以養老母 ; 老母在, 政身未敢以許人也.” 嚴仲子固讓, 聶政竟不肯受也. 然嚴仲子卒備賓主之禮而去.
섭정은 어머니가 세상을 뜬 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제 목숨을 내놓기로 했다. 그리하여 한나라 군주의 숙부이면서 재상 자리에 있는 협루를 없애기 위해 한나라로 향했다.
한나라에 다다른 섭정은 창을 들고 호위하는 자가 겹겹인 상황에서 당상에 앉은 협루를 향해 계단을 뛰어오르며 칼을 뽑았다. 순식간이었다. 이보다 2백 6십여 년 전, 사마천의 첫 번째 자객 조말曹沫이 제나라 환공을 향해 내달은 발걸음도 이처럼 쏜살같았으리라. 협루는 한칼에 쓰러졌다. 이를 확인한 섭정도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겨내고 눈을 도려냈다. 그리고 이어서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내고 세상을 떠났다.
섭정의 주검을 도성 저자에 내놓은 한나라는 재상 협루를 죽인 자를 알아내기 위해 1천금의 현상금까지 걸었다. 얼마 뒤, 섭정의 윗누이 섭영聶榮이 이 소문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면서 한나라 도성 저자에 나타났다. 분명 동생 섭정이었다. 그녀는 주검 위에 엎드려 슬피 울었다. 저자를 오가던 이들이, ‘어찌 일부러 찾아와서 이 자를 안다고 하시오?’, 이렇게 나무랐지만 윗누이는 오히려 당당했다. 그녀의 말을 한 번 들어보자. '자객열전'이다.
“ ……, 선비는 본래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고 합니다. 지금 제가 살아있기 때문에 자기 모습을 훼손시켜 저를 이 일에 연루시키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어찌 제 몸 죽을세라 두려워 어진 동생의 이름을 없애겠습니까!”
한나라 저잣거리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했다. 이어 하늘을 우러러 세 차례 큰 소리로 외치더니 마침내 몹시 슬퍼하며 동생 곁에서 숨을 거두었다.
다시 원문을 보인다.
“……士固爲知己者死, 今乃以妾尙在之故, 重自刑以絶從, 妾其奈何畏歿身之誅, 絶滅賢弟之名!” 大驚韓市人. 乃大呼天者三, 卒於邑悲哀而死政之旁.
슬프다. 그럼에도 오히려 씩씩하고 장하다. 비장하여 사뭇 아름답다. 짧은 생을 살았던 한 여성이 이루어 낸 장편서사시이다.
같은 시기, 지구 저쪽 편 아테네의 장군 포키온Phocion의 아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테네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온힘을 기울이던 포키온은 결국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밀려나며 반역죄로 처형당한다. 정적들은 그를 죽인 뒤에 그 주검을 아테네에 묻지 못하게 한다. 어쩔 수 없이 메가리로 옮겨져 그의 주검은 화장된다. 이런 현실이 뼈에 사무칠 정도로 가슴 아팠던 그의 아내는 가루가 된 유골을 몰래 아테네로 가져와서 자기 집 부뚜막에 숨긴다. 플루타르코스는 이때 포키온의 아내가 남겼다는 말을 이렇게 전한다.
“축복받은 부뚜막아, 착하고 용감했던 분의 유골을 너에게 맡기니 부디 잘 지켜 다오.”
17세기 프랑스의 화가 푸생Nicolas Poussin은 <포키온의 유골을 모으는 그의 아내>라는 제목을 단 그림 한 폭을 세상에 내놓았다. 화가 푸생도 포키온의 아내, 이 여성의 모습을 떠올리며 사뭇 비장한 감정에 몸을 떨었으리라. 물론 사마천도 섭영의 모습을 떠올리며 사뭇 비장한 감정에 몸을 떨었을 테고.
타자의 고통에 참여하기는 인간이 가진 보편성이다. 예와 이제가 다르지 않고 저쪽과 이쪽이 다르지 않다. 섭정의 윗누이가 그리스에 태어나 포키온의 아내가 되었더라면 남편의 유골을 수습하여 제 집 부뚜막에 모셨을 테고, 포키온의 아내가 전국시대에 섭정의 윗누이가 됐더라면 또한 동생의 주검을 기꺼이 안았을 것이다. 참사랑은 이러하다, 이제와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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