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연燕의 수릉壽陵에 사는 어떤 젊은이가 조趙의 서울 한단邯鄲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매우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한단에 가서 이들의 걸음걸이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가? 결국 이 젊은이는 조나라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배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원래 자기 걸음걸이 자세마저 잊어버리고 나중에는 땅바닥에 배를 대고 기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네.
<장자莊子>「추수秋水」가운데 한 부분이다.
학문과 변론은 물론 사상가로서도 당대 최고라고 자부하던 조나라 사람 공손룡公孫龍에게 위魏 나라 공자 위모魏牟가 들려준 말이다. 이 말을 들은 공손룡이 그만 벌렸던 입을 다물지 못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고 한다. 칼날이 번득이고 피가 튀던 전국시대에 (이런 글을 남긴 장자가 없었더라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연나라 수릉의 이 젊은이가 땅바닥에 배를 대고 기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어도 좋다. 어떻든 자기 바탕 잃으며 남의 것 흉내 내는 데 온 힘을 쏟는 모습은 지금도 옛적 그때와 다름이 없다. 그래서 우언은 사실보다 훨씬 더 진실하다.
걸음마 시작할 때부터 영어 노래 영어 동화 들려주는 우리 현실이 이래서 더욱 안타깝다.
원문을 여기 붙인다.
且子獨不聞夫壽陵餘子之學行於邯鄲與?未得國能,又失其故行矣,直匍匐而歸耳.
'말의 말 > 8. 여덟째 마당 - 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 가지 위험 (0) | 2021.11.19 |
---|---|
알파고의 무례無禮 (0) | 2021.10.30 |
알묘조장揠苗助長 (0) | 2021.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