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릉 3

말의 부활

『논어論語』에 이르기를, “윗자리에 있는 자가 스스로 몸가짐을 바르게 하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실행이 되고, 그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는 바로 이 장군을 가리키는 말이렷다! 내가 아는 이 장군은 시골사람처럼 정직하고 무던한데다 입을 열어도 말을 능숙하게 할 줄 몰랐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날, 세상 사람들은 그를 알든 모르든 모두 슬퍼 마지않았다. 그의 진실한 품성이 사대부들의 믿음을 얻었던 걸까? 속담에 이르기를, “복숭아나무 오얏나무는 말을 할 줄 몰라도 그 아래 좁은 길 절로 생긴다.”라고 했다. 이 속담은 비록 사소한 일을 가리키지만 이로써 큰 도리를 비유하고 있다. 『사기史記』「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가운데 마지막 단락에서 데려왔다. 책을 읽다 ..

산문 마당 2022.10.02

스스로 목숨 끊은 장군-이광李廣

1. 사마천이 만난 장군 이광 먼저 사마천이「태사공자서」에서 밝힌「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을 쓴 이유를 한 번 보자. 적을 대적함에 용감하였고, 병사들에게는 인자하고 정이 많았으며, 명령이 번거롭지 않았기에 부하들이 그를 진심으로 따랐다. 勇於當敵, 仁愛士卒, 號令不煩, 師徒鄕之. 여기에 더하여 ‘열전’ 일흔 편의 배치를 눈여겨 살피면 위청衛靑의 여러 부장 가운데 오로지 이광李廣만이 한 편을 넉넉히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큰 전공을 세우며 널리 이름을 날렸던 표기장군 곽거병霍去病조차「위장군열전衛將軍列傳」뒤쪽에 자그마한 공간을 차지하며 단 몇 줄로 기술된 점과 비교하면 사마천이 장군 이광을 얼마나 중히 여겼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열전’ 말미에 붙인 ‘태사공왈’에는 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본..

광대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으로 일어선 사나이-이연년李延年

이연년은 중산국中山國 사람이다. 그는 부모, 형제, 자매와 함께 모두 다 광대였다. 이연년은 법을 어겨 부형腐刑을 받은 뒤 구감狗監 일을 맡았다. ……이연년은 노래에 능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노래도 만들었다. 당시 황제는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는 데 음악에 어울리는 노랫말을 만들어 연주하고 노래를 부를 작정이었다. 이연년은 황제의 뜻을 잘 받들어 새로운 노랫말을 만들어 연주하였다. 그의 누이도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에 이연년은 2천 석의 인수를 차고 협성률로 불렸다. 李延年, 中山人也. 父母及身兄弟及女, 皆故倡也. 延年坐法腐, 給事狗中. …… 延年善歌, 爲變新聲, 而上方興天地祠, 欲造樂詩歌弦之. 延年善承意, 弦次初詩. 其女弟亦幸, 有子男. 延年佩二千石印, 號協聲律. 『사기史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