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장군 이광리 3

스스로 목숨 끊은 장군-이광李廣

1. 사마천이 만난 장군 이광 먼저 사마천이「태사공자서」에서 밝힌「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을 쓴 이유를 한 번 보자. 적을 대적함에 용감하였고, 병사들에게는 인자하고 정이 많았으며, 명령이 번거롭지 않았기에 부하들이 그를 진심으로 따랐다. 勇於當敵, 仁愛士卒, 號令不煩, 師徒鄕之. 여기에 더하여 ‘열전’ 일흔 편의 배치를 눈여겨 살피면 위청衛靑의 여러 부장 가운데 오로지 이광李廣만이 한 편을 넉넉히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큰 전공을 세우며 널리 이름을 날렸던 표기장군 곽거병霍去病조차「위장군열전衛將軍列傳」뒤쪽에 자그마한 공간을 차지하며 단 몇 줄로 기술된 점과 비교하면 사마천이 장군 이광을 얼마나 중히 여겼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열전’ 말미에 붙인 ‘태사공왈’에는 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본..

한무제 유철의 추봉된 황후-이부인李夫人

위자부의 아름다운 용모도 나이를 먹어가자 스러지기 시작했다. 무제 유철의 시선은 다른 여인에게로 옮겨갔다. 조나라 출신의 왕부인王夫人이 바로 이 여인이었다. 그러나 왕부인은 아들 하나를 무제 유철에게 안기고 그만 일찍 세상을 버렸다. 이때 이부인李夫人이 때맞춰 등장한다. 이부인의 오라비 이연년李延年이 무제 유철 앞에서 부른 노래 한 곡이 이부인을 황제 곁으로 오게 만들었으니 역사는 우연이 만드는 필연처럼 극적이다.「영행열전佞幸列傳」은 황제의 총애를 받았던 아첨쟁이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 가운데 세 번째 인물이 이연년이다. 이 부분을 먼저 보기로 한다. 이연년은 중산中山 사람이다. 그는 부모, 형제, 자매와 함께 모두 노래와 춤을 추던 배우였다. 이연년은 법을 어겨 궁형을 받은 뒤 황제의 사냥개를 담당하는..

광대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으로 일어선 사나이-이연년李延年

이연년은 중산국中山國 사람이다. 그는 부모, 형제, 자매와 함께 모두 다 광대였다. 이연년은 법을 어겨 부형腐刑을 받은 뒤 구감狗監 일을 맡았다. ……이연년은 노래에 능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노래도 만들었다. 당시 황제는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는 데 음악에 어울리는 노랫말을 만들어 연주하고 노래를 부를 작정이었다. 이연년은 황제의 뜻을 잘 받들어 새로운 노랫말을 만들어 연주하였다. 그의 누이도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에 이연년은 2천 석의 인수를 차고 협성률로 불렸다. 李延年, 中山人也. 父母及身兄弟及女, 皆故倡也. 延年坐法腐, 給事狗中. …… 延年善歌, 爲變新聲, 而上方興天地祠, 欲造樂詩歌弦之. 延年善承意, 弦次初詩. 其女弟亦幸, 有子男. 延年佩二千石印, 號協聲律. 『사기史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