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공주 4

이연년가李延年歌-이연년李延年

1. 원문 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寧不知傾城與傾國? 佳人難再得. 2. 주석 1) 傾城, 傾國...여색 때문에 나라가 망함. 뒷날 여인의 용모가 매우 아름다움을 형용함. 2) 寧不知...어찌 알지 못하랴. 3. 옮기기 북쪽 지방에 아름다운 여인 있는데, 자태는 세상에 견줄 이 없이 하나뿐이라. 그녀가 성을 지키는 장수 한 번 보면 무기 버리니 성을 지키지 못하고, 그녀가 천하에 군림한 황제 한 번 보면 황제 마음 기웃 나라가 무너지네. 그대는 어찌 이 아름다운 여인을 모른단 말인가. 자칫 다시 만나기 어려울지니. 4. 덧붙이기 에 이런 기록이 있다. '어느날 궁중에서 벌어진 잔치에서 이연년이 춤을 추며 이 시를 노래로 불렀다. 이 노래를 들은 한무제는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이렇게..

한시漢詩 2023.06.20

한무제 유철의 두 번째 여인-위자부衛子夫

집안은 물론 사회적인 신분이나 지위마저 구차하고 변변치 못했던 위자부의 팔자가 백팔십도로 바뀐 건 오로지 황제의 느닷없는 굄 때문이었다. 기원전 139년, 자리에 오른 지 세 해째 되던 해 춘삼월, 열여덟 살 난 황제 유철은 복을 기원하고 재앙을 멀리하려는 마음으로 황궁 동남쪽 패상霸上으로 나아가서 선조들에게 제사를 올렸다. 제사를 올리고 황궁으로 돌아오던 무제 유철이 손윗누이 평양공주의 집에 잠시 들른 게 위자부와의 첫 만남을 만들어냈다. 참으로 우연이었다. 당시 위자부는 평양공주의 한낱 가희였을 뿐이었다. 평양공주 집에는 공주의 시중을 드는 여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위자부도 이들 여러 미인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날, 평양공주는 이들을 무제 유철에게 보였다. 그러나 무제 유철은 전혀 달가운 표정을 보..

한무제 유철의 첫 번째 여인-진아교陳阿嬌

사마천의 「외척세가」세 번째 인물 첫 번째 단락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면, 여태후는 자신이 득세할 때, 궁녀들을 각각 다섯 명씩 나누어 여러 제후 왕들에게 내려 보낸 일이 있었다. 당시 조나라 땅 두 씨 집안의 딸 하나가 여태후를 시중드는 직분을 받으며 입궁했었는데, 자기 뜻과는 달리 대代 땅으로 가게 되었다. 대 땅에 이른 이 여인 두 씨는 이곳 제후왕 유항의 굄을 받으며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대왕 유항에게 안긴다. 유항은 여태후 천하가 끝난 뒤, 여러 대신들의 추대를 받으며 서한의 다섯 번째 황제로 자리에 오르니 이가 곧 문제이다. 여태후의 시중을 들던 궁녀 두 씨는 두황후가 된다. 문제가 붕어하자 그녀의 몸으로 낳은 맏아들 유계가 자리를 이어 오르니 이가 곧 경제이다. 대 땅에서 유항의 굄을 받으며 ..

광대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으로 일어선 사나이-이연년李延年

이연년은 중산국中山國 사람이다. 그는 부모, 형제, 자매와 함께 모두 다 광대였다. 이연년은 법을 어겨 부형腐刑을 받은 뒤 구감狗監 일을 맡았다. ……이연년은 노래에 능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노래도 만들었다. 당시 황제는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는 데 음악에 어울리는 노랫말을 만들어 연주하고 노래를 부를 작정이었다. 이연년은 황제의 뜻을 잘 받들어 새로운 노랫말을 만들어 연주하였다. 그의 누이도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에 이연년은 2천 석의 인수를 차고 협성률로 불렸다. 李延年, 中山人也. 父母及身兄弟及女, 皆故倡也. 延年坐法腐, 給事狗中. …… 延年善歌, 爲變新聲, 而上方興天地祠, 欲造樂詩歌弦之. 延年善承意, 弦次初詩. 其女弟亦幸, 有子男. 延年佩二千石印, 號協聲律. 『사기史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