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산책

전쟁의 도화선이 된 웃음-소동숙자蕭桐叔子

촛불횃불 2022. 4. 21. 15:52

 제 나라에 사신으로 온 각극卻克은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그는 당시 진 나라의 집정 대신으로서 군사상 최고지휘관을 겸하고 있었다. 사달은 제나라 군주 경공頃公의 잘못된 판단과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터뜨린 그의 어머니의 경솔함이 합하여 크게 번지고 말았다.

 

춘추 시대 판도

 선왕 혜공惠公의 정실 소씨蕭氏는 제나라에 예속된 자그마한 나라 소국蕭國의 군주 동숙桐叔의 딸이었다. 역사는 그녀를 소동숙蕭桐叔의 딸이라 일컫는다. 그녀는 혜공에게 시집온 뒤 아들 무야無野를 낳았다. 혜공이 군주의 자리에 오른 지 십 년째 되는 해 세상을 떠나자 무야가 자리를 이었다. 이 곧 경공이다. 소부인은 남편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자주 눈물을 흘렸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던 경공은 홀로된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밖에서 들은 우스개를 자주 들려주곤 했다. 그런데 사건은 또 다른 곳에서 터졌다. 어머니의 웃음 띤 얼굴을 보며 마음속으로 기뻐하던 경공의 효심이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는 길을 만들었던 것이다.

 

진경공

 기원전 593, 진나라는 각극을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당시 진나라 군주는 경공景公이었다. 이 글을 읽는 이는 같은 시기 제나라 군주와 진나라 군주가 모두 경공이었지만 한자를 다르게 썼다는 점에 유의하시라. 진나라 경공은 꼽추였던 각극을 집정 대신에다 군사 최고지휘관으로 높여 썼다. 게다가 지금 한 나라를 대표하여 제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했다. 꼽추였지만 각극의 능력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각극

 제나라 경공은 어머니 소부인으로 하여금 장막 안에서 꼽추인 각극이 섬돌 위로 올라오는 모습을 보게 했다. 각극이 섬돌 위로 올라오자 이를 본 소부인이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비웃음이었다. 그 웃음소리를 각극의 귀가 놓치지 않았다.

이 치욕을 되갚지 않으면 하수河水를 건너지 않으리!”

 진나라의 집정 대신에 군사령관까지 겸하고 있던 그의 분노를 짐작할 만하다. 사마천은 이 부분을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진세가晉世家에 모두 실었는데,진세가쪽이 좀 더 구체적이기에 이곳에서 한 부분을 데려온다.

 

 (경공景公) 8, 각극을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제나라 경공頃公의 어머니가 누각 위에서 사신들을 보다가 비웃었다. 이렇게 비웃은 건 각극은 꼽추였고 노 나라 사신은 절름발이였으며 위 나라 사신은 애꾸눈이었기 때문이다. 제나라도 똑같은 장애인을 보내 이들을 맞이하도록 했다. 각극은 분노하여 하수 가로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제나라에 복수하지 않으면 하백이 지켜보겠지!”

 

 八年, 使卻克於齊. 齊頃公母從樓上觀而笑之. 所以然者, 卻克僂, 而魯使蹇, 衛使眇, 故齊亦令人如之以導客. 卻克怒, 歸至河上, : “不報齊者, 河伯視之!”

 

 ‘하수는 황하를 가리킨다. ‘하백은 황하를 관장하는 신이다. 소부인이 장막 안에서 겹쳐진 휘장 틈으로 사신들을 보고 웃었든 누각에 올라 이들을 내려다보며 웃었든 장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단지 소부인이 터뜨린 웃음의 색깔을 한 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짐작컨대 낄낄아니면 키득키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제후국의 태부인 소동숙자蕭桐叔子께서 남편 혜공을 떠나보낸 뒤 여섯 해 동안 슬픔과 외로움을 삭이며 얼마나 몸과 마음을 조신했겠는가. 게다가 제 몸으로 낳은 아들이 한 나라의 군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 또 얼마나 조심스러웠겠는가. 그러나 소부인은 이런 점에서 궤도를 한참 이탈했다.

 

제경공

 소부인의 아들 경공이 연출한 무대의 모습은 그야말로 다분히 작위적이다. 꼽추 곁에 꼽추 세우고 절름발이 곁에 절름발이 세우고 애꾸눈 곁에 애꾸눈 세운 모습은 아무리 여러 발자국을 물러서며 생각해도 블랙코미디이다. 이는 도를 넘어도 너무 멀리 넘은 외교적 결례였다. 같은 신체적 결함을 지닌 이를 사신 곁에 세운 제나라 경공의 발상이 어머니를 웃기기 위한 효심에서 비롯되었다며 추켜세울 수는 없다. 춘추시대도 이미 중기에 들어서서 각 제후국끼리 서로 자기 세력을 넓히기 위해 어깨를 겨누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진나라로 돌아온 각극은 자기 군주에게 제나라를 치겠다면서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진나라 군주 경공은 그대의 원한이 어찌 나라를 번거롭게 할 만한 가치가 있겠소?’, 이렇게 되물으며 각극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얼마 뒤, 제나라에서 진나라에 외교 사절을 보내자 각극은 이들 네 명을 하수 북쪽에서 붙잡아 죽였다. 그래도 각극은 그날 소부인에게 당한 치욕으로 가슴에 맺힌 원한을 삭이지 못했다.

 꼽추라는 이유로 비웃음을 당한 지 네 해가 지난 기원전 589, 칼날을 벼리던 각극에게 기회가 왔다. 제나라의 침공을 받은 노나라와 위나라가 진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했다. 진나라 군주는 각극에게 병거 8백 량을 주어 중군을 지휘하게 했다. 또 사섭士燮과 난서欒書에게는 각각 상군과 하군을 이끌고 각극과 함께 노나라와 위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제나라 정벌에 나서게 했다. 싸움은 안 땅에서 벌어졌다. 역사는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를 안지전鞍之戰’, 안 땅에서 벌어진 전쟁이라고 이른다.

 

안지전 시의도

 제나라 경공도 이 싸움에 직접 나섰다. 그가 탄 병거에는 제나라 대부 방추보逄丑父가 오른쪽에 서서 경공을 호위했다. 그 시절, 병거에는 네 마리 말을 모는 이가 중앙에 앉았다. 그리고 그 왼쪽이 지위가 가장 높은 이의 자리였다. 오른쪽을 지키는 이를 일러 참승驂乘이라고 했는데, 참승은 왼쪽에 자리한 이를 호위하는 역할을 했다. 방추보는 경공의 참승, 곧 경호실장인 셈이었다.

 그런데 싸움이 치열해지며 전세가 제나라에 불리하게 전개되자 방추보는 경공과 자리를 바꾸었다. 곧이어 경공이 탄 병거 앞에 진나라 부장 한궐韓厥이 엎드려 저희 왕께서 신에게 노나라와 위나라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아뢨다. 방추보가 경공에게 병거에서 내려 마실 물을 떠 오라 일렀다. 병거에서 내린 경공이 이 틈을 타서 비로소 자기 군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싸움은 각극이 이끄는 진나라 군대의 승리로 돌아갔다.

 제나라 경공은 잘못을 빌었다. 죄를 용서받기를 요청했다. 보물과 옥을 바치며 강화를 요구하여 청했다. 그러나 각극은 네 해 전 꼽추라는 신체적 흠 하나로 받은 치욕을 잊을 수 없었다. 치욕으로 맺힌 원한은 풀리지 않고 가슴에 똬리를 튼 채 사라지지 않았다. 자기를 비웃은 경공의 어머니, 곧 소동숙의 딸을 내놓으라고 을러멨다. 이 여인을 진나라로 데려가서 볼모로 삼으려고 했던 것이다. 게다가 제나라의 밭두둑과 밭 사이의 길을 동서쪽으로 바꾸라는 요구까지 강력하게 내밀었다. 이는 진나라의 수레가 제나라로 들어오는 데 유리하게 만들려는 데 그 뜻이 있었다.

 

그림에서 왼쪽 인물이 참승이다

 이때, 앞으로 나선 이가 있었다.제태공세가에는 이를 제나라 백성이라고 일렀고진세가에는 제나라 사신이라고 일렀다.제태공세가에서 제나라 백성이 각극에게 한 말을 가져온다.

 

 “동숙의 딸은 제나라 군주의 어머니외다. 제나라 군주의 어머니는 또한 진나라 군주의 어머니와 지위가 같은데, 그대가 어찌 그녀를 처벌할 수 있습니까? 더구나 그대는 정의를 내걸고 정벌을 나왔으면서 폭력으로써 끝내려고 하니 그것이 가능하겠소?”

 

叔子, 齊君母, 齊君母亦猶晉君母, 子安置之? 且子以義伐而暴爲後, 其可乎?”

 

 「진세가제나라 사신이 각극의 요구에 도의에 맞지 않으니 다시 싸우고자 하오.라고 다짐한다. 결국 각극은 한 발 물러섰다. 대신 제나라는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빼앗은 땅을 되돌려주어야 했다.

 사마천은 노나라 사신 절름발이와 위나라 사신 애꾸눈의 수치와 분노는 말하지 않았다. 이 두 제후국이 제나라의 침공에 진나라를 향해 구원의 손길을 내민 앞뒤 과정에 절름발이애꾸눈의 역할이 있었을 법하다. 노나라와 위나라는 비록 자그마한 제후국이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사신이라면 그들이 가진 재능이 결코 평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이들은 꼽추각극이 겪은 수모와 분노를 함께했을 가능성이 높다.

 누구도 당사자가 선택하지 않은 결과를 비웃을 수는 없다. 꼽추도 절름발이도 애꾸눈도 그가 선택한 결과로 얻은 장애가 아니다. 어머니 얼굴에 웃음을 주기 위한 제나라 경공의 효심은 출발부터 잘못된 효심이었다. 그리고 신체적 장애를 낄낄비웃은 경공의 어머니 소부인의 행위도 궤도 이탈이었다.

 

절름발이를 비웃은 결과 제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평원군의 애첩(극중 장면)

 

 이로부터 3백여 년 뒤, 전국시대 조나라 공자 평원군이 아끼던 애첩의 낄낄웃음이 사단이 되었다. 민가에 사는 절름발이가 절뚝거리며 물을 길으러 다니는 모습을 보고 큰 소리로 비웃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제 목을 내려놓아야 했다.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앞 부분에 놓인 이야기이다. 평원군의 이 애첩은 3백여 년 전 제나라를 찾은 진나라 사신 각극 이야기를 공부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녀의 본성이 그대로 소부인과 같았을까? 평원군의 애첩은 목을 내려놓으며 세상을 마쳤지만, 소부인은 아들 경공이 안 땅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당한 수모를 새기며 마음 닦아 기르기에 매진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