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은『사기』곳곳에 인륜을 어지럽히는 문란한 남녀 관계를 기록으로 남겼다. 게다가 군주가 맞아들인 서로 다른 빛깔의 여인들이 보이지 않게 벌이는 투쟁에다 이들이 낳은 배다른 형제들의 암투를 읽노라면 곧장 나라가 무너질 것 같은 위기감에 사로잡힌다.
위衛 나라 열다섯 번째 군주 선공宣公은 이 나라 열두 번째 군주 장공莊公의 아들이다. 이들을 둘러싸고 얽히고설킨 관계를 제대로 알려면 A4 용지를 가로로 펼친 채 가계도를 그린 뒤, 한 차례 더 정리해야만 실타래가 제대로 풀린다. ‘장공 5년,……’으로 시작되는「위강숙세가衛康叔世家」의 이 단락은 제나라 여자, 진陳 나라 여자1, 진나라 여자2, 애첩, 이렇게 네 여자가 장공 곁에 등장한다. 게다가 이들이 낳은 배다른 형제 셋도 등장한다. 사마천이 무대에 올린 군주들의 삶을 볼라치면, 이 정도는 평균치에 해당하지만, 이들이 벌이는 갈등과 투쟁의 삼각관계는 얽히고설켜 눈을 밝히며 읽지 않으면 길 잃기 십상이다.
기원전 737년, 위나라 군주 장공이 세상을 떠났다. 뒤를 이어 앞의 진나라 여자1의 동생 진나라 여자2가 낳은 아들 완完이 자리를 이었다. 이 사람이 위나라 열세 번째 군주 환공桓公이다. 이 뒤, 장공의 애첩이 낳은 아들 주우州吁가 배다른 형 환공을 죽이고 자리에 올라 위군衛君이 되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형을 죽인 데다 전쟁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 때문에 백성들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장공에게 ‘주우가 전쟁을 좋아하여 그를 장수로 삼았으니 난리가 이로부터 일어날 것’이라고 간언을 올렸던 상경上卿 석작石碏이 복수濮水에서 주우의 목을 내리고 환공의 동생 진晉을 위나라 군주의 자리에 올렸다. 이 사람이 바로 선공이다.
선공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이다. 그가 군주의 자리에 있을 때 쌓아올린 정치적인 업적이 아니라 음탕하고 난잡한 그의 행동이 그를 역사의 무대에 불어내어 종아리를 걷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선공이 총애한 부인 이강夷姜은 애초 장왕의 첩실이었다. 바로 선공의 서모였다. 선공이 이 여자와 눈 맞고 배 맞아 낳은 아들이 급伋이었다. 급은 태자가 되었다. 선공은 우공자右公子에게 태자 급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겼다. 우공자는 혼기가 된 태자 급을 위해 제나라 여자를 얻어 주었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이 성사되기도 전에 선공이 먼저 이 여자를 차지하고 말았다. 이는 훗날, 초나라 평왕의 경우와 그대로 닮은꼴이다. 며느리가 되어야 할 이 여자는 시아버지의 여자가 되어 수壽와 삭朔, 두 아들을 낳았다.
한때, 젊은이들이 만든 ‘안 봐도 비디오’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이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아비의 여자를 제 여자로 만든 것도 모자라 아들의 여자를 또 제 여자로 만들고도 나라가 안녕할 수는 없다. 먼저 권력의 중심부에서 보이지 않던 갈등이 분규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태자 급을 헐뜯는 말이 선공을 가만두지 않았다. 같은 말도 반복하면 세뇌되는데 선공의 머릿속은 이미 헐대로 헌 상태였으니 훼언을 만들어내기도 쉬웠다. 이미 태자의 아내가 될 여자를 자기 것으로 취했으니 그동안 마음이 편했을 리도 없었다.
태자 급을 죽이는 데 아비인 선공이 앞장서서 모의했다. 선공은 태자 급을 제나라로 떠나보내며 신표로서 백모白旄를 주었다. 그리고 국경에 이르면 백모를 들고 가는 이를 죽이라고 도적들에게 단단히 일렀다. ‘백모’는 털이 긴 쇠꼬리를 장대 끝에 매달아 놓은 기이다. 위기가 앞에 닥친 것을 안, 배다른 동생 수가 태자 급의 행차를 막으며 말렸다.「위강숙세가」를 잠시 펼친다.
“국경의 도적이 태자께서 가지고 있는 백모를 보면 그 자리에서 태자를 죽일 것입니다. 태자께서는 떠나지 마옵소서.”
태자가 말했다.
“아버님의 명을 거스르고 살기를 도모하는 건 안 될 일이오.”
이 말을 마치자 곧장 길을 떠났다. 수는 태자가 갈 길을 멈추지 않는 것을 보자 그의 백모를 훔쳐 먼저 국경으로 내달았다. 국경의 도적은 그 표시를 보자 즉각 수를 죽였다. 수가 죽고 나자 태자 급이 다시 국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도적에게 이렇게 일렀다.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일세.”
도적은 다시 태자 급을 죽이고 선공에게 보고했다.
“界盜見太子白旄, 卽殺太子, 太子可毋行.” 太子曰:“逆父命求生, 不可.” 遂行. 壽見太子不止, 撲盜其滄旄而先馳至界. 界盜見其驗, 卽殺之. 壽已死, 而太子伋又至, 謂盜曰 : “所當殺乃我也.” 盜竝殺太子伋, 以報宣公.
이러고도 안녕한 나라는 없다. 아첨은 달콤하고 훼언은 솔깃하지만 여기에 귀 기울이는 순간 나라는 끝장난다. 적은 바깥에 있지 않고 언제나 안에 있다. 안 가운데 가장 안쪽은 자기 자신이다. 군주의 자신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면 귀를 열려는 간언이 날을 세운다. 이때, 냉수 한 동이 덮어쓸 때처럼 정신 번쩍하면 새 날이 열리지만, 귀를 닫고 간언 올리는 이에게 눈 부라리면 자신도 불행한 끝장 맞고 나라도 불행한 끝장 맞는다.
선공이 세상을 떠난 뒤, 삭이 자리를 이으니 혜공惠公이다. 그러나 나라는 계속 혼란의 연속이다. 패륜적 불화는 불행의 씨가 되어 결국 위나라를 속국으로 전락시킨다. 애초 강숙康叔이 나라를 세우며 펼쳤던 덕정은 잠시뿐, 선공 같은 군주의 음란함이 여러 번 이어지며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사마천은 이렇게 탄식한다.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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