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마당

물의 큰 힘

촛불횃불 2022. 9. 7. 15:43

 노 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깊은 궁중에서 태어나 여인의 손에 자랐기에 이제껏 무엇이 슬픔인지 그리고 무엇이 근심인지 모릅니다. 게다가 무엇이 고생인지 또 무엇이 두려움인지 모릅니다. 그뿐만 아니라 무엇이 위험인지도 모릅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임금께서 말씀하신 건 슬기롭고 영명한 군주께서도 물으시는 문제입니다. 저 같이 하찮은 인물이 어찌 그런 것들을 알 수 있겠습니까?”

 애공이 다시 말했다.

 “선생이 아니면 어디 물어볼 데가 없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일렀다.

 “임금께서 종묘의 큰문에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향해 동편 계단으로 본채에 올라 고개를 들면 서까래와 용마루가 보이고 고개를 숙이면 위패가 보일 것입니다. 이런 기물은 여전히 거기 있지만 조상은 벌써 돌아가셨습니다. 임금께서는 이런 점에서 슬픔을 생각한다면 어찌 슬픔의 감정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또 임금께서는 이른 아침 일어나 머리 빗고 관을 쓰신 뒤 날이 밝으면 조정에 나와서 정사를 살피십니다. 이때, 한 가지 일이라도 맞갖게 처리하지 못하시면 재난의 꼬투리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점에서 근심을 생각한다면 어찌 근심의 감정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임금께서는 날이 밝으면 조정에 들어 정사를 살피다가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조정을 나오시지만 여러 제후국에서 몸을 피해 이곳으로 온 제후의 자손들은 분명 궁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임금을 뵈려고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이런 점에서 고생을 생각한다면 어찌 고생의 느낌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임금께서는 노나라 서울을 벗어나 이곳저곳 성문에 올라 이 나라 변두리를 바라보면 망해버린 나라의 폐허 속에 분명 몇 채의 허름한 집이 있을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이런 점에서 두려움을 생각한다면 어찌 두려움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저는,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라,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엎을 수도 있다.’,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임금께서는 이런 점에서 위험을 생각한다면 어찌 위험한 감정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노나라 애공

 

 『순자荀子』「애공哀公가운데 한 부분이다. 좀 길긴 하지만 한 단락을 몽땅 다 데려왔다.

 임금은 배에, 그리고 백성은 물에 비유한 이 단락의 마지막 부분이 널리 인용되면서, 출처를 두고정관정요貞觀政要에 위징魏徵이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에게 한 말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으나, 이보다 몇 백 년이나 앞서 나온순자에 벌써 이런 기록이 보인다. 그것도 순자는 공자가 들은 내용을 진술한 것으로 기록했으니,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라,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엎을 수도 있다.’라는 이 말은 진즉부터 민간에 널리 회자되던 구절일 수도 있겠다.

어떻든 노나라 애공이 공자에게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털어놓으며 가르침을 청한 것을 보면 그런대로 괜찮은 군주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단락 앞과 뒤로 애공이 공자의 가르침을 청하는 장면이 계속되는데, 독자들도 한번 찾아 읽어보기 바란다.

한 나라 최고지도자가 슬픔도 근심도, 그리고 고생도 두려움도 모른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배에 올라 떵떵 권세를 누리던 이들도 불행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분노로 일어난 세찬 물결이 배를 뒤집어엎을 수 있다는 경고에는 서슬 퍼런 한기가 가득하다.

 

 위 가져온 글의 원문을 여기 보인다.

 魯哀公問於孔子曰寡人生於深宮之中長於婦人之手寡人未嘗知哀也未嘗知憂也未嘗知勞也未嘗知懼也未嘗知危也. ”孔子曰君之所問聖 君之問也小人也何足以知之非吾子無所聞之也孔子曰君入廟門而右登自胙階仰視榱棟俯見幾筵其器存其人亡君以此思哀則哀將焉而不至矣君昧爽而櫛冠平明而聽朝一物不應亂之端也君以此思憂則憂將焉而不至矣君平明而聽朝日昃而退諸侯之子孫必有在君之末庭者君以思勞則勞將焉而不至矣君出魯之四門以望魯四郊亡國之虛則必有數蓋焉君以此思懼則懼將焉而不至矣且丘聞之君者舟也庶人者水也水 則載舟水則覆舟君以此思危則危將焉而不至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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