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楚 나라 여왕厲王이 전선의 위급함을 알리는 북을 울려 백성들이 모두 방어에 나서도록 했다. 그가 술에 취한 뒤 잘못 북을 울렸기에 백성들이 매우 놀라서 허둥댔다. 여왕은 사람을 보내 백성들을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이 몸이 취하여 곁에 있던 측근과 농담하다가 장난삼아 북을 울리고 말았소.”
이리하여 백성들은 긴장을 늦추었다.
몇 달이 지나 전선의 위급함을 보고 받은 여왕이 북을 울렸지만 사람들은 전쟁 준비에 나서지 않았다. 여왕은 이제 명확한 경고로 바꾸어 명령을 내렸다. 그제야 백성들이 믿고 따랐다.
『한비자韓非子』「외저설좌상外儲說左上」가운데 한 부분이다.
이보다 불과 몇 십 년 전, 서주의 마지막 군주 유왕幽王이 포사褒姒의 미소 짓는 모습을 보려고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희롱한 이야기가 겹쳐서 떠오른다.
나라를 이루는 데 앞자리에 놓아야 할 가치는 ‘신뢰’이다. 군주가 백성의 믿음을 얻지 못하면 그 나라는 제 구실을 할 수 없다. 자공子貢의 거듭된 물음에 스승인 공자孔子는 ‘먹을 것을 풍족하게 하는 것’과 ‘병력을 넉넉하게 하는 것’을 뒤로 하고 ‘백성들의 신뢰’를 가장 앞자리에 놓았다. ‘먹을 것을 풍족하게 하는 것’은 ‘경제’일 터이고, ‘병력을 넉넉하게 하는 것’은 ‘안보’일 터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경제도 안보도 ‘백성들의 신뢰’ 없이는 힘없이 무너질 모래성으로 보았다.
‘백성들의 신뢰’를 ‘경제’나 ‘안보’보다 앞자리에 둔 공자의 이런 주장은 세월이 2천 년 하고도 몇 백 년도 더 지난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참이다.
위 가져온 글의 원문은 이렇다.
楚厲王有警鼓與百姓爲戒,飲酒醉,過而擊之也. 民大驚. 使人止之曰:“吾醉而與左右戲擊之也. ”民皆罷. 居數月,有警,擊鼓而民不赴,乃更令明號而民信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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