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성어는 항상 짝을 이루기에 한 곳에 모실 수밖에 없다.
. 見 - 볼 견
. 利 - 이익 리
. 思 - 생각할 사
. 義 - 옳을 의, 정의 의
--눈앞의 이익을 보면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의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見 - 볼 견
.危 - 위태로울 위
.授 - 줄 수
.命 - 목숨 명
--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
견리사의
*전고典故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며, 위태로운 것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이라는 구절이 있다.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어떠해야 '사람다운 사람'[성인成人]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공자께서는 '지혜'와 '탐욕하지 않음'과 '용기'와 '기예'에 더하여 '예악'까지 '사람다운 사람'의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러자 자로는 '견리사의'와 '견위수명'이면 '사람다운 사람'으로 넉넉하지 않겠느냐, 하며 스승인 공자의 가르침을 다 받아들이지 않고 제 생각을 피력하였다.
따라서 '견리사의 견위수명'은 공자께서 내세운 말씀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공자의 제자 자로가 내세운 말이다.
눈앞에 놓인 재물과 이익을 보고 '도道'와 '의義'를 생각한다면,
나라가 위험과 재난에 처했을 때 기꺼이 제 목숨 내놓으며 나라 위해 뛰어들 수 있다면,
이런 인물이야말로 '위인' 아닌가, '참 큰 인물' 아닌가.
*어느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현충원을 참배하며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나라를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기꺼이 바친 호국 영령 앞에 이렇게 다짐한 그분의 충정이 거짓 한 톨 없는 참이라고 믿는다. 현충원, 그곳이 어떤 곳인가, 옷깃 여미며 영령들을 추모하며 자신의 마음 추스리고 다짐해야 할 자리 아니겠는가.
*안중근 의사께서 우리를 침략한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사살한 뒤, 여순감옥에서 '見利思義 見危授命', 이 네 글자를 휘호할 때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오늘, 서른 살을 갓 넘겨 목숨 내놓고 떠난 젊은 청년을 역사의 무대에 부활시켰다. 그는 영원히 살아야 마땅하다. 김훈의 소설 <하얼빈>도 따라서 오랫동안 읽힐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위 <논어論語. 헌문憲問>에서 이 부분의 원문만 보이면 아래와 같다.
子路問成人,子曰:“若臧武仲之知、公綽之不欲、卞莊子之勇、冉求之藝,文之以禮樂,亦可以爲成人矣。”曰:“今之成人者何必然?見利思義,見危授命,久要不忘平生之言,亦可以爲成人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