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양생주養生主
이 편은 양생의 길을 이야기한 문장으로 이루어졌다. ‘양생주養生主’란 양생의 묘한 이치‘라는 뜻이다. 장자는 양생의 길은 자연에 순응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러자면 감정에도 치우치지 않고 외물에도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문은 모두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부분은 ‘可以盡年’까지이다. 이 부분은 전편의 대강大綱으로 양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緣督以爲經’에 이르러야 한다는 점을 알린다. 다시 말하면, 자연의 변화와 발전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부분은 ‘得養生焉’까지이다. 포정이라는 요리사가 소를 분해하는 것으로 사람의 양생에 견주고, 처세나 생활이 모두 ‘因其固然’이요 ‘依乎天理’해야 함을 설명한다. 게다가 ‘中虛’라는 ‘유간有間’을 취해야만이 ‘遊刃有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시비是非와 모순矛盾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부분은 그 나머지가 되겠다. 여기에서 장자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모든 것을 천명天命에 맡기고 자연에 순응하라고 말한다. 곧 ‘安時而處順’의 생활 태도를 강조한다.
장자 사상의 핵심은 무엇에 의지함이나 속박이 없는 자유로움이며, 인위적인 것에 반대하며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다. 장자는 이 편에서 비록 양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철학 사상과 삶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삶은 끝이 있는데
우리 삶은 끝이 있는데, 알아야 할 것은 끝이 없으니,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으니, 위험할 뿐이다.
그런데도 알려고 하는 것은 더욱 위험할 뿐이다.
*우리 삶은 유한한데, 알아야 할 것은 무한하다. 유한한 삶으로 무한한 앎을 추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또 위험하다.
吾生也有涯,而知也无涯. 以有涯隨无涯,殆已;已而為知者,殆而已矣.
2. 착한 일을 하더라도 명성을 가까이하지 말고,
악한 일을 하더라도 형벌에 가까이 말지니.
오직 중中을 따르는 것으로써 기준을 삼으면,
몸을 보존할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고, 천수를 다 누릴 수 있다.
*오직 ‘중中’을 기준으로 삼으면, 保身, 全生, 養親, 盡年할 수 있다.
*‘中’을 따르는 것으로써 양생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緣督以爲經’이 ‘양생주’의 핵심이다. ‘中’은 곧 ‘중허中虛’, 사람이나 사물의 이치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中’을 따르는 것 은 자연의 이치를 따른다는 말이다.
為善无近名,為惡无近刑。緣督以為經,可以保身,可以全生,可以養親,可以盡年。
포정해우庖丁解牛
3. 훌륭한 요리사 포정庖丁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하여 소를 잡았다. 소를 각 뜰 때, 손을 갖다 댄 곳, 어깨를 기댄 곳, 발로 밟은 곳, 그리고 무릎을 굽힌 곳에서 한결같이 써걱써걱 소리가 나고, 빠르게 칼을 놀릴 때는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데, 마치 음악의 선율에 맞지 않는 게 없는 듯하였다. 탕湯 임금 때 무곡舞曲 <상림桑林>에 맞추어 춤추는 듯하였고, 악곡 <경수經首>에 맞춰 율동하는 듯하였다.
庖丁為文惠君解牛,手之所觸,肩之所倚,足之所履,膝之所踦,砉然嚮然,奏刀騞然,莫不中音。合於《桑林》之舞,乃中《經首》之會。
砉然...가죽과 살을 분리할 때 나는 소리.
騞然...칼로 소를 빠르게 각 뜰 때 나는 소리.
中音...음악의 리듬에 맞다.
《經首》...은상 시대의 악곡명.
會...음악의 가락, 리듬.
*文惠君을 양혜왕梁惠王, 곧 전국시대 위魏 나라 세 번째 군주로 보는 이도 있다. 양혜왕은 <맹자孟子> 첫 번째 편장篇章에 등장하는 바로 그 인물이다.
4. 문혜군이 말했다.
“참 훌륭하오! 기술이 어떻게 이런 멋진 경지에 이를 수 있었소?”
포정이 칼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제가 높이 받드는 것은 도道입니다. 기술의 경지를 넘어선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뵈는 것이 온통 소뿐이었습니다. 세 해가 지나자 소가 통째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마음으로 대할 뿐이지 눈으로는 살필 필요가 없습니다. 눈이라는 감각기관은 멈추고 마음이 하자는 대로 움직입니다. 소의 몸뚱이가 만들어진 자연의 결에 따라 살과 뼈 사이의 큰 틈에 칼을 밀어 넣고 골절 사이의 빈 곳으로 향합니다. 이렇게 소의 원래 모습을 따르기에 인대나 힘줄을 건드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큰 뼈야 말할 나위도 없지 않겠습니까!
文惠君曰:「譆!善哉!技蓋至此乎?」庖丁釋刀對曰:「臣之所好者道也,進乎技矣。始臣之解牛之時,所見无非牛者。三年之後,未嘗見全牛也。方今之時,臣以神遇,而不以目視,官知止而神欲行。依乎天理,批大郤,導大窾,因其固然。技經肯綮之未嘗,而況大軱乎!
5. 솜씨 좋은 요리사는 해마다 칼을 바꿉니다. 칼로 고기를 베어내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요리사는 달마다 칼을 바꿉니다. 칼로 뼈를 절단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쓰는 이 칼로 지금까지 열아홉 해 동안 각 뜬 소가 수천 마리나 되지만 칼날이 아직도 방금 숫돌에 갈아낸 것 같습니다. 소의 뼈마디는 틈이 있고 칼날은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칼날이 틈 있는 뼈마디로 들어가니 널찍하여 칼이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이 때문에 열아홉 해를 썼는데도 칼날이 이제 막 숫돌에 갈아낸 듯합니다.
良庖歲更刀,割也;族庖月更刀,折也。今臣之刀十九年矣,所解數千牛矣,而刀刃若新發於硎。彼節者有間,而刀刃者无厚,以无厚入有間,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是以十九年而刀刃若新發於硎。
*族 ... 무리, 따라서 ‘족포族庖’는 일반적인 요리사, 보통의 요리사.
*恢恢 ... 寬廣, 넓다.
6. 비록 그렇지만 근육이나 힘줄이 얽힌 곳에 이르면, 저는 다루기 어려움을 알고 두려움에 조심합니다. 시선은 하는 일에 멈추고, 움직임은 느려집니다. 칼을 지극히 정묘하게 놀리면 흙덩어리가 땅바닥에 쏟아지는 소리처럼 ‘툭’하고 뼈와 살이 갈라집니다. 그러면 칼을 들고 일어나서 사방을 둘러보며 흐뭇한 마음으로 칼을 닦아 보관합니다.”
포정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문혜군이 말했다.
“훌륭하오. 내 오늘 그대 말을 듣고 ‘양생의 도’를 터득했소.”
雖然,每至於族,吾見其難為,怵然為戒,視為止,行為遲。動刀甚微,謋然已解,如土委地。提刀而立,為之四顧,為之躊躇滿志,善刀而藏之。」文惠君曰:「善哉!吾聞庖丁之言,得養生焉。」
*族 ... 뼈마디와 힘줄이 엉킨 부위
*謋 ... 소의 몸뚱이가 분해될 때 나는 소리
*善 ... 이곳에서는 ‘닦다’, ‘씻다’는 뜻임.
외발 우사右師
7. 공문헌公文軒이 우사右師를 보자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이게 누구요? 무슨 일로 외발이 되었소? 하늘이 한 일이오, 아니면 사람이 한 일이오?”
이 물음에 우사가 대답했다.
“하늘이 한 일이지, 사람이 한 일이 아닙니다. 하늘이 나를 낳을 때 외발이 되도록 했습니다. 사람의 모습은 온전히 하늘이 부여한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이 준 것이지, 사람이 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참으로 아리송하다. 우사는 ‘양생’을 잘한 인물일까, 아니면 ‘양생’을 잘못한 인물일까? 해석을 독자의 몫이지만, ‘자연이 순리’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결론은 같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장자는 불구일지라도 자연의 순리에 따라서 살면 양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公文軒見右師而驚曰:「是何人也?惡乎介也?天與,其人與?」曰:「天也,非人也。天之生是使獨也,人之貌有與也。以是知其天也,非人也。」
*公文軒 ... 송宋 나라 사람으로 전해진다. 성은 公文, 이름은 軒.
*右師 ... 관직명, 오른쪽 장군.
*介 ... 獨, 발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뜻. 다리 한 쪽을 잃었다는 의미이다.
못가의 꿩
8. 못가에 꿩 한 마리, 열 걸음에 한 번 쪼아먹고,
백 걸음에 물 한 모금 마시는데도,
새장 속에 갇혀서 길러지기를 바라지 않으니,
신색은 왕일지라도 신명 나지 않기 때문이지.
>새장 속에서 잘 얻어먹고 사는 삶보다는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사는 삶이 더 ‘신’나는 삶이다. 양생의 조건은 이렇게 즐길 줄 아는 것. 부귀영화에 얽매이는 것보다 힘겹더라도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더 가치 있는 것.
澤雉十步一啄,百步一飲,不蘄畜乎樊中。神雖王,不善也。
*王 ... ‘旺’으로 보는 견해와 ‘王’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음.
노자의 죽음
9. 노자老子가 죽었을 때, 진일秦失이 조문하는데, 곡을 세 번만 하고 나왔다.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은 우리 선생님의 친구가 아니십니까?”
“친구지.”
“그렇다면 친구에게 지금처럼 이렇게 조문해도 괜찮은 건가요?”
“괜찮지. 처음엔 나도 자네가 노자의 제자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니네. 방금 내가 들어가서 조문할 때 보니, 나이 든 이는 제 자식 잃은 것처럼 곡을 하고, 젊은이는 제 어미 잃은 것처럼 울더군. 나이 든 이나 젊은이들이 이렇게 소리 내어 우는 것은 노자가 조문하기를 바라지 않는데도 조문하고 소리 내어 울기를 바라지 않는데도 소리 내어 우는 것이지. 이는 하늘의 뜻을 어기고 사물의 본성을 깨뜨리는 것이며 받은 바를 잊어버리는 것일세. 옛날 사람들은 이를 일러 하늘의 뜻을 어기려다 받은 형벌이라고 했네.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때를 만났기 때문이고, 우연히 이 세상을 떠난 것도 순리이기 때문일세. 편안하게 때를 받아들이고 순리를 따른다면, 슬픔도 즐거움도 끼어들 수 없네. 옛날 사람들은 이를 일러 ‘하늘이 내린 고통에서 풀려남’이라고 했네.
*죽음을 ‘현해縣解’라고 보았다. 이때 ‘縣’은 ‘懸’으로 보아야 한다. 거꾸로 매달린 상태를 푼다는 말인데, 죽음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숙명, 곧 하늘의 뜻이기에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은 ‘사물의 본성을 등지는 것’이다. 이는 양생의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다.
老聃死,秦失弔之,三號而出。弟子曰:「非夫子之友邪?」曰:「然。」「然則弔焉若此,可乎?」曰:「然。始也,吾以為其人也,而今非也。向吾入而弔焉,有老者哭之,如哭其子;少者哭之,如哭其母。彼其所以會之,必有不蘄言而言,不蘄哭而哭者。是遁天倍情,忘其所受,古者謂之遁天之刑。適來,夫子時也;適去,夫子順也。安時而處順,哀樂不能入也,古者謂是帝之縣解.」
손가락과 불씨
10. 손가락은 장작을 지피는 일을 하면 그만, 하지만 불씨는 영원히 전해져서 꺼짐을 모른다.
指窮於為薪,火傳也,不知其盡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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