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는 달리 『남화경南華經』이라고 한다. 이는 전국시대 중엽 장자와 그의 후학들이 쓴 도가의 경문이다. 한나라 때에 이르러 장자를 ‘남화진인南華眞人’이라 높여 우러렀기에『장자』를 『남화경』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노자老子』 · 『주역周易』과 함께 ‘삼현三玄’이라고 일컫는다. 『장자』는 내편 · 외편 · 잡편, 모두 합하여 52편이었으나, 전국시대 중엽을 거쳐 말엽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지며 섞이고 더해지면서 서한 때 이르러 대체로 꼴을 이루었으나, 전해지던 원래의 판본이 사라지고, 지금은 33편만이 남았다. 서진 시기 곽상郭象이 정리한 이 책의 차례와 장절은 한나라 때와는 달랐다.
내편은 전국시대 장자 사상의 핵심을 대체적으로 대표하고 있지만 외편과 잡편은 이리 얽히고 저리 얽히기 1백여 년 동안 황로黃老 사상까지 끼어들었다. 장자의 후학들에 의해 더욱 복잡한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다.
소요유逍遙遊
‘소요逍遙’는 달리 ‘소요消搖’라고도 표기한다. 얽매임 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노닌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소요유’는 어떤 속박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는 말이다.
『소요유』편은 모두 세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성인 무명聖人無名’까지, 이 편의 가장 주요한 부분이다. ‘소요’할 수 없는 수많은 예를 대비하면서 진정으로 속박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려면 ‘무기無己’, ‘무공無功’, ‘무명無名’이 반드시 필요함을 설명한다.
두 번째 부분은 ‘요연상기천하언窅然喪其天下焉’까지, 첫 번째 부분을 이어받으면서 한 발 더 나아가 ‘무기無己’란 갖가지 속박과 의지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임을 설명한다. 진정으로 자기 자신은 물론 모든 것을 잊어버려야만 ‘소요’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무기無己’에 이른 사람이라야 정신적으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는 말이다.
세 번째 부분은 나머지 부분이다. 여기에서는 무엇인 진정한 ‘유용有用’이며 ‘무용無用’인지를 논술한다. 외물에 얽매이지 않고 ‘무용’을 ‘유용’으로 여겨야 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에 뛰어드는 것을 반대한다. 또 뜻은 어떤 구속도 받지 않는 데 두어야 하고 아무런 얽매임 없이 유유자적한 생활을 추구한다.
이 편은『장자』를 대표하는 편목 가운데 하나이다. 또 제자백가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이기도 하다. 기발한 상상과 낭만적인 색채로 가득한 데다 우언과 생동하는 비유를 통하여 이치를 풍자적으로 풀어냄으로써 매우 두드러진 풍격을 이룬다. 게다가 ‘소요유’는 장자 철학 사상의 중요한 부분이다. 전편에서는 몇 차례나 거듭 ‘의지할 데 없다’는 주장을 펼치며 정신 세계의 절대 자유를 추구한다.
장자가 보기에는 객관적 현실 속에서 인간 자체를 포함한 모든 것들은 대립하거나 상호 의존적이어서 절대적인 자유는 없다. 곧 ‘의지할 데 없으려면’ 바로 ‘무기無己’라야 한다. 그러기에 장자는 모든 것이 자연에 순응하며 현실을 초탈하고 사람이 가진 사회 생활 속에서의 일체의 작용을 부정하고, 인간의 삶과 만물의 생존의 혼연일체를 희망한다. 또 외물에 얽매이지 않고 아무런 조건 없이 정신적 자유를 추구할 것을 주장한다.
한없이 큰 것-곤鯤과 붕鵬
1. 북쪽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이름은 곤鯤이다. 곤의 크기가 몇천 리나 되는지 모를 정도로 컸다. 이것이 변하여 새가 됐는데 그 이름은 붕鵬이다. 붕은 등짝만 해도 몇천 리나 되는지 모를 정도로 컸다. 붕이 한번 떨치고 하늘로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을 드리운 구름 같았다. 이 새가 바닷물이 용솟음치면 이제 남쪽 바다로 옮겨가는데, 남쪽 바다란 하늘의 못, 곧 천지天池이다.
北冥有魚,其名爲鯤。鯤之大,不知其幾千裏也;化而爲鳥,其名爲鵬。鵬之背,不知其幾千裏也;怒而飛,其翼若垂天之雲. 是鳥也,海運則將徙於南冥. 南冥者,天池也.
*冥 ... 溟, 바다를 말한다.
*北冥 ... 북쪽 큰 바다. 다음에 오는 ‘南冥’도 이와 비슷하여, 남쪽 큰 바다. 전설에 따르면 이 바다는 가없이 넓은 데다 수심은 깊고 색깔은 검다고 함.
*鯤 ... 본시 물고기 알을 가리켰으나, 이 글에서는 큰 고기 이름을 나타내는 데 씀.
*鵬 ... ‘鳳’, 그러나 이 글에서는 큰 새의 이름을 나타내는 데 씀.
*怒 ... 기운을 내어 힘차게 날아오르다.
*海運 ... 바닷물의 움직임, 이 글에서는 용솟음치는 바다의 파도.
*天池 ... 천연적인 큰 못.
2.『제해齊諧』는 전적으로 괴이한 일을 모은 책인데, 여기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붕이 남쪽 바다로 옮겨갈 때 날개로 수면을 치면 3천 리에 이르는 물결을 일으킬 수 있고 돌개바람 따라 날아오르면 9만 리 높은 하늘이라, 유월 바람 타고 북쪽 바다를 떠나는지라.
야생마가 내닫는 듯이 뛰어오르는 기운에 높이 떠오르며 날리는 먼지가 살아서 움직이는 기운으로 서로 거들며 흔들기 때문이다. 하늘이 푸르고 드넓은 건 그것 본래의 색깔이 아니겠는가? 끝없이 넓고 넓은 데다 높고 높은 것도 끝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붕이 날아가면서 내려볼 때에, 보이는 모습도 당연히 이와 같지 않겠는가?
《齊諧》者,志怪者也。《諧》之言曰:“鵬之徙於南冥也,水擊三千里, 摶扶搖而上者九萬里,去以六月息者也。”野馬也,塵埃也,生物之以息相吹也。天之蒼蒼,其正色邪?其遠而無所至極邪?其視下也,亦若是則已矣。
*齊諧 ... 책의 이름, 사람 이름이라는 설도 있음.
*志 ... 기록하다, 기재하다.
*擊 ... 털다, 두드리다, 흔들다. 이 글에서는 鵬이 날개를 치며 날아오르며 두 날개로 수면을 친다는 뜻.
*摶 ... 둘레를 빙 돌아 오르다.
*扶搖 ... 지면에서 급속하게 휘돌아 오르는 폭풍.
*野馬 ... 봄나라 늪이나 숲에 보이는 안개나 아지랑이, 움직이는 모양이 달리는 말처럼 보이 기에 이런 이름이 붙음.
*生物 ... 생명이 있는 갖가지 물상들.
3. 모인 물이 깊지 않다면 한 척의 큰 배도 띄울 힘이 없을 터. 앞마당 움푹 패인 곳에 물 한 잔 부으면 자그마한 풀잎 하나도 한 척의 배가 되지만 잔 하나 그 위에 놓으면 바닥에 달라붙는 것은 물은 얕고 배는 크게 때문이다. 모인 바람이 넉넉할 만큼 세지 않으면 거대한 날개를 가져도 날아갈 힘이 없다. 이 때문에 붕은 9만 리 높은 하늘을 날아도 바람은 그 몸뚱이 아래 있기에 바람의 힘을 빌리며 아무런 가로막힘 없이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나서 남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한다.
且夫水之積也不厚,則其負大舟也無力。覆杯水於坳堂之上,則芥爲之舟;置杯焉則膠,水淺而舟大也。風之積也不厚,則其負大翼也無力。故九萬里,則 風斯在下矣,而後乃今培風;背負青天而莫之夭閼者,而後乃今將圖南。
*芥 ... 자그마한 풀잎.
*斯 ... 곧, 즉.
*培 ... ~에 의하다, ~을 기반으로 하다.
*夭閼 ... 저지, 억지, 방해.
매미와 비둘기
4. 매미와 비둘기가 붕을 비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날아도 느릅나무 박달나무 맞닥뜨리면 멈춰야 하고 날아오르지 못하면 땅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구태여 9만 리 높이 날아 남쪽 바다까지 갈 까닭이 있는가?”
넓고 먼 교외의 들판으로 나가도 하루에 돌아올 수 있는 데다 배도 아직 부르다. 백 리 밖으로 나간대도 밤새 먹거리 준비하면 되고, 천 리 밖으로 나간대도 석 달 전에 양식 준비해야 한다. 늦가을 매미나 산비둘기, 하찮은 이것들이 무얼 알겠는가!
蜩與學鳩笑之曰:“我決起而飛,搶榆枋,時則不至而控於地而已矣,奚以 之九萬里而南爲?”適莽蒼者,三飡而反,腹猶果然;適百里者,宿舂糧;適千里者,三月聚糧。之二蟲又何知?
*蜩 ... 매미.
*學鳩 ... 일종의 자그마한 피리새, 이 글에서는 자그마한 새를 낮추어 가리킴.
*決 ... 새나 곤충의 날개를 뜻하는 ‘翅’와 통함. 신속한 모습을 나타냄.
*控 ... 떨어지다.
*奚以 ... 어찌, 어떻게.
*之 ... 가다.
*適 ... ‘往’과 같음.
*湌 ... ‘餐’과 같음.
*果然 ... 배가 부른 모습.
*宿 ... 이 글에서는 하룻밤.
*之 ... 그, 이, 따라서 ‘之二蟲’은 바로 위에 나오는 매미와 산비둘기를 가리킴. 직역하면 ‘이 두 마리 버러지’.
잔꾀와 큰 지혜
5. 잔꾀는 큰 지혜를 따르지 못하고 명이 짧은 것이 명이 긴 것을 따를 수 없다. 어떻게 이렇다는 걸 알 수 있는가? 이른 아침 피었다가 시드는 팡이가 그믐이나 초하루가 무엇인지 알 리 있는가? 또 늦가을 매미도 봄과 가을을 알 리 있는가? 이것은 바로 명이 짧기 때문이다. 초나라 남쪽에 명령冥靈이라 불리는 큰 거북이 있었는데, 이놈은 5백 년을 봄으로 삼고 다시 5백 년을 가을로 삼는다. 또 옛적에 참죽나무라는 고목은 8천 년을 봄으로 삼고 다시 8천 년을 가을로 삼았으니, 이게 바로 명이 긴 것이다. 그러나 팽조彭祖는 지금에 이르도록 명이 긴 것으로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니, 사람들이 그와 비교하다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닌가?
小知不及大知,小年不及大年. 奚以知其然也?朝菌不知晦朔,蟪蛄不知春 秋,此小年也. 楚之南有冥靈者,以五百歲爲春,五百歲爲秋;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爲春,八千歲爲秋。而彭祖乃今以久特聞,眾人匹之,不亦悲乎!
*知 ... ‘智’와 통함. 智慧.
*朝 ... 이른 아침,
*晦朔 ... 한 달 중 마지막 날과 첫 날. ‘晦’를 깜깜한 밤, ‘朔’을 이른 아침으로 풀이하기도 함.
*冥靈 ... 전설 속의 큰 거북, 나무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彭祖 ... 전설 속의 최장수 인물.
또 다른 이야기 하나
6. 상商 나라를 연 탕湯이 신하 하극夏棘에게 이렇게 묻는다.
“초목이 자라지 못하는 북쪽 땅에 아주 깊은 바다가 있는데, 이 바다가 바로 ‘천지天池’이다. 그곳에 고기가 살았다. 이놈의 등짝이 몇 천 리나 되어 얼마나 긴지 아는 이 없어도 이름은 곤鯤이라고 불렀다. 또 그곳에 붕鵬이라는 이름을 가진 새도 있는데 등짝이 큰 산과 같고 두 날개를 펼치면 하늘을 드리운 구름 같다. 붕이 힘차게 날개를 펼쳐 빠른 속도로 빙빙 돌아 9만 리 높은 하늘로 솟구치며 구름을 뚫고 올라 푸른 하늘을 등에 지면, 그제야 남쪽으로 향해 방향을 틀어 남쪽 바다로 간다.
이를 본 메추라기가 그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놈은 어디로 날아가려는 걸까? 나는 온 힘을 다해 솟구쳐 날아도 불과 몇 길 높이에 이르면 떨어져서 쑥대밭 가운데에서 퍼덕일 뿐인데. 이게 내가 날아오른 최대치였지. 그런데 저놈은 어디까지 날아갈 작정인가?’
이게 바로 작은놈과 큰놈의 다른 점이다.”
湯之問棘也是已。窮髮之北有冥海者,天池也。有魚焉,其廣數千裏,未有 知其修者,其名爲鯤。有鳥焉,其名爲鵬,背若太山,翼若垂天之雲,摶扶搖羊角而上者九萬里,絕雲氣,負青天,然後圖南,且適南冥也. 斥鷃笑之曰:‘彼且奚適也?我騰躍而上,不過數仞而下,翱翔蓬蒿之間,此亦飛之至也。而彼且奚適也?’”此小大之辯也.
*湯 ... 商나라를 연 임금.
*棘 ... 탕 임금 때의 대부.
*窮髮 ... 초목이 자라지 않는 지방.
*羊角 ... 회오리바람. 말리며 올라가는 모습이 양의 뿔 같다고 하여 전용됨.
*辯 ... ‘辨’과 통용. 변별하다, 구분하다는 의미.
자유
7. 그러기에 재능과 지혜는 관리의 직분을 능히 감당할 수 있고, 행위는 한 고을 백성을 능히 감쌀 수 있으며, 덕행은 군왕의 마음에 쏙 들 수 있고, 능력은 온 나라의 신임을 얻을 수 있어도, 그들은 앞에서 말한 자그마한 새들처럼 자신을 취급한다. 그래서 송영자宋榮子는 이런 이들을 더욱 비웃는다. 송영자, 이 양반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를 칭찬해도 이 때문에 특별히 분발하거나 노력하지도 않았으며,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를 비방해도 이 때문에 기가 꺾이거나 실망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과 외물外物에 대한 한도를 인식하고 영욕의 한계를 분명하게 구분한 것뿐이라고 여겼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이렇게 대했기에 죽기 살기로 추구하는 일이 없었다. 이와 같았음에도 그가 도달하지 못한 경지는 있었다.
열자列子는 바람 타고 노닐며 유유자적 다니는데 숙달되어 보름이 지나면 돌아오곤 했다. 그는 행복을 찾는 데 아등바등하는 일이 없었다. 이렇게 하면 비록 발로 걷는 일은 면할 수 있을지라도 필요한 것은 있었다. 천지 만물의 본성에 순응하고 육기六氣의 변화에 따라 노닐며 끝없는 경지에서 유유자적하는데 무엇이 더 필요할까?
그러기에 이르노니, 최고의 수양에 이른 이는 자연의 모습에 순응하며 자신을 잊어버릴 수 있으며, 수양이 입신의 경지에 이른 이는 공을 차지하는 데 뜻을 두지 않으며, 도덕과 학문이 성인의 경지에 이른 이는 이름을 날리는 데 마음을 두지 않는다.
故夫知效一官、行比一鄉、德合一君、而徵一國者,其自視也,亦若此矣。而宋榮子猶然笑之. 且舉世譽之而不加勸,舉世非之而不加沮,定乎內外之分,辯乎榮辱之境,斯已矣。彼其於世,未數數然也. 雖然,猶有未樹也。夫列子御風而行,泠然善也,旬有五日而後反. 彼於致福者,未數數然也. 此雖免乎行,猶有所待者也. 若夫乘天地之正,而御六氣之辯,以遊無窮者,彼且惡乎待哉? 故曰:至人無己,神人無功,聖人無名.
*效 ... 효능, 효과. 이 글에서는 ‘능히 감당하다’는 의미로 쓰임.
*官 ... 관직. *行 ... 품행. *比 ... 비교하다
*而 ... 재능, 능력. (이 경우, 이 글자의 음은 ‘능’이다.) *徵 ... 신임을 받다, 신용을 얻다.
*宋榮子 ... 전국시대 송나라의 사상가. *猶然 ... 비웃는 모양, 조소하는 모양.
*擧 ... 온, 모든 *勸 ... 노력하다, *非 ... 비난하다, 비방하다.
*內外 ... 자신과 자신 밖의 사물. 장자가 보기에 자주적 정신은 내재적이며 영예와 비난은 모 두 외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로지 자주적 정신만이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 라고 보았다.
*境 ... 한계
*數數 ... 허둥지둥하는 모양. *列子 ... 전국시대 정鄭 나라의 사상가.
*御 ... (거마車馬 따위를) 몰다, 부리다. *冷然 ... 품위 있고 우아하여 아름다운 모양.
*旬 ... 열흘. *有 ... 또. *致 ... 초빙하다, 물색하다, 모으다. 이 글에서는 찾다는 의미.
*惡 ... 무슨, 어떤, 무엇.
*至人 ... 도덕적 수양이 최고 경지에 이른 이
*無己 ... 외물과 자아의 경계를 깨끗이 허물고 자기 자신을 잊어버린 경지에 이름.
*神人 ... 정신 세계가 완전히 초탈한 인물.
*無功 ... 공업을 내세우지 않음.
*聖人 ... 사상적으로 수양이 완전한 경지에 이른 이.
*無名 ... 명예나 지위를 추구하지 않음.
요堯 임금과 허유許由 이야기
8. 요堯 임금이 천하를 허유許由에게 넘겨줄 때에 이렇게 말했다.
“해와 달이 떠올랐지만 자그마한 횃불은 아직도 꺼지지 않고 있소. 그놈의 밝기를 해와 달에 비교하면 헛된 일 아니겠소? 때마침 비가 내려, 온 세상이 잠길 것 같소. 이는 어린싹을 촉촉하게 적시는 데는 너무 지나친 수고가 아니겠소? 그대가 임금이 되어야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릴 것이오. 그런데 내가 그 자리를 할 일 없이 한가롭게 차지하고 있으니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소. 내가 천하를 이제 그대에게 줄 터이니 응낙하기 바라오.”
요 임금의 이런 요구에 허유가 입을 열었다.
“임금께서 천하를 다스려서 천하는 이미 훌륭하게 정리되었는데, 제가 임금을 대신하면, 이는 제가 명예를 얻으려는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명예란 실질적인 것에 붙어 있는 객체일 뿐인데, 제가 그래 이름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객체가 되어 무엇하겠소? 굴뚝새는 깊은 숲속에 둥지를 만드는 데 나뭇가지 하나만 있으면 되고, 두더지는 황하의 물을 마시는 데 제 배만 채울 물이면 그만입니다. 임금께서는 이만 돌아가시지요. 천하가 제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주방장이 비록 부엌에 들어가지 못할지라도 제사를 주관하는 이가 시동尸童이나 신주神主가 되어 술단지나 도마를 들고 와서 그 노릇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성군 요와 은자 허유...제 몸 다스리는 일이 나라 다스리는 일보다 중요하다.
*뱁새와 두더지...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에 만족하는 삶.
*알렉산더와 철인 디오게네스 이야기 연상
堯讓天下於許由,曰:“日月出矣,而爝火不息;其於光也,不亦難乎?時雨降矣,而猶浸灌;其於澤也,不亦勞乎?夫子立而天下治,而我猶屍之;吾自視缺然,請致天下.” 許由曰:“子治天下,天下既已治也;而我猶代子,吾將爲名乎?名者,實之賓也;吾將爲賓乎?鷦鷯巢於深林,不過一枝;偃鼠飲河,不過滿腹.歸休乎君,予無所用天下爲!庖人雖不治庖,屍祝不越樽俎而代之矣!”
*堯 ... 중국 역사에서 전설시대에 살았던 현명한 군주
*許由 ... 고대 전설 속의 선비. 箕山에 은거했다고 함. 요가 천하를 그에게 넘겨주려고 했지 만, 그는 스스로 고결한 선비임을 자처하며 받지 않았다고 한다.
*爝 ... 횃불. *時雨 ... 때 맞춰 내리는 비. *浸灌 ... 관개.
*澤 ... 윤기 있다, 적시다. *勞 ... 이 글에서는 ‘지나친 수고’, ‘헛수고’의 뜻으로 쓰임.
*立 ... 재위. 尸 ... 神主, 이 글에서 ‘자리를 헛되이 차지함’
*缺然 ... 부족한 모습, 모자라는 모양.
*子 ... 상대방에 대한 존칭, 그대, 당신.
*休 ... 止. *庖人 ... 요리사
고야산姑射山의 신인
9. 견오肩吾가 연숙連叔에게 가르침을 간청하며 입을 열었다.
“제가 접여接輿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허풍이 이어지며 끝이 없는데 한번 입을 열면 원래의 화제로 돌아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가 하는 말에 자못 놀랍고 두려웠습니다. 마치 하늘 위 은하수처럼 끝 간 데가 없어서 보통 사람의 말이랑 다른 점이 너무 많았으며, 사리에도 분명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연숙이 이렇게 물었다.
“그자가 무슨 말을 했소?”
견오는 들은 말을 이렇게 전했다.
“머나먼 고야산姑射山 위에 신인神人이 살고 있는데, 그 양반의 피부는 얼음이나 눈처럼 하얗고 자태는 처녀처럼 부드럽고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이 신인은 곡식의 낟알은 입에 대지도 않고 맑은 바람 들이키고 단 이슬 마시며 구름 타고 용을 몰며 온 세상을 노닌답디다. 그의 모습은 자못 진지하여 세상 만물을 병들지 않게 하고 해마다 온갖 곡식이 풍년을 맞도록 만든답니다.”
이렇게 전한 뒤, 견오는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이게 모두 날조라고 생각되어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肩吾問於連叔曰:“吾聞言於接輿,大而無當,往而不反. 吾驚怖其言。猶河漢而無極也;大有徑庭,不近人情焉. ”連叔曰:“其言謂何哉?”曰:“藐姑射之山,有神人居焉. 肌膚若冰雪,淖約若處子,不食五穀,吸風飲露,乘雲氣,禦飛龍,而遊乎四海之外;其神凝,使物不疵癘而年穀熟. 吾以是狂而不信也.
*肩吾와 連叔 ... 모두 덕이 있는 인물, 실재 인물이 아니라 장자가 만든 허구의 인물.
*接輿 ... 초楚 나라의 은사 陸通, 접여는 그의 字.
*當 ... 끝, 궁극. *反 ... 返, 돌아오다, 되돌아오다. *河漢 ... 은하. *極 ... 끝.
*逕 ... 문밖의 좁은 길, 庭 ... 몸채 밖의 땅. 이 두 글자가 연용되어 ‘逕庭’은 차이가 매우 큼을 나타낸다.
*藐 ... 먼 모양. *姑射 ... 전설 속의 산 이름
*以 ... 여기다, 인정하다. *狂 ... 誑, 속이다, 기망하다.
10. 이 말을 다 듣고 난 연숙이 말했다.
“그렇지! 눈먼 사람과는 꽃무늬나 색깔을 감상할 수 없고, 귀머거리와는 종과 북이 만드는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없다네. 어찌 그들의 몸뚱이만이 눈멀고 귀먹었겠소? 의식도 눈멀고 귀먹었겠지. 이게 바로 그대 일이구려. 그 신인이나 그의 덕행은 온갖 일이나 갖가지 물상과 하나로 되었소. 세상이 다 잘 다스려지기를 바라는데, 누가 분주하게 천하 다스리기를 알려야 할 일로 여기겠소! 이런 사람은 말일세, 외물이 그를 해칠 수 있는 어떤 것도 없고, 하늘까지 가득 찰 홍수도 그를 집어삼킬 수 없고, 어떤 큰 가뭄이 쇠붙이와 돌까지 녹이고 흙산이 쩍쩍 갈라지도록 타도, 그는 이글거리는 뜨거움을 느끼지 않네. 그는 먼지 한 톨과 쭉정이나 밀기울 같은 쓸데없는 것들도 요 임금이나 순舜 임금 같은 성현 군주로 빚어낼 수 있네. 그러니 어떻게 제 몸 바삐 움직이며 만물 다스리기를 자기 할 일로 여기겠소?”
連叔曰:“然。瞽者無以與乎文章之觀,聾者無以與乎鍾鼓之聲。豈唯形骸有聾盲哉?夫知亦有之!是其言也,猶時女也。之人也,之德也,將旁礴萬物以爲一,世蘄乎亂,孰弊弊焉以天下爲事!之人也,物莫之傷:大浸稽天而不溺,大旱金石流,土山焦而不熱. 是其塵垢秕糠將猶陶鑄堯舜者也,孰肯以物爲事?
*瞽 ... 눈이 멀다, 보이지 않다. *文章 ... 꽃무늬, 색채
*時 ... 이 *女 ... 너, 그대
*旁礡 ... 혼동된 모습 *蘄 ... 바라다, 구하다.
*亂 ... ‘治’로 해석해야 한다. 옛적에는 이렇게 의미를 반대로 해석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弊弊焉 ...너무 바빠서 몹시 피곤한 모습.
*大浸 ... 큰물, 홍수. *稽 ... 至
*秕 ... 쭉정이.
송나라 모자 장수와 요 임금
11. “북쪽 땅 송宋 나라에 모자 파는 사람이 남쪽 당 월越 나라로 갔다네. 그런데 월나라 사람은 머리카락을 기르지도 않고 몸에는 문신을 하기에 모자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었지. 요 임금은 천하의 백성을 훌륭하게 다스리며 정국을 안정시켰는데, 고야산에 살며 득도한 스승 네 분을 만나 뵙고, 돌아오는 길에 분수汾水 북쪽에 이르러 망연자실하여 자신이 천하를 다스리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네.”
“宋人資章甫而適諸越,越人斷髮文身,無所用之. 堯治天下之民,平海內之政,往見四子藐姑射之山,汾水之陽,窅然喪其天下焉.”
큰 박과 손 트는 데 바르는 약
혜자惠子가 장자에게 말했다.
“위魏 나라 임금이 내게 박씨를 보냈네. 내 이놈을 심고 길러서 다섯 섬은 들어갈 열매를 거두었네. 여기에다 물을 채웠지만 너무 무거워서 들 수가 없었네. 쪼개어서 바가지를 만들었더니 깊이가 얕아서 담을 수가 무얼 담을 수가 없데. 크기만 하지 달리 쓸 데가 없어서 깨어버렸다네.”
이 말을 들은 장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는 큰놈을 쓰는 데 정말로 서투네. 송宋 나라에 손이 트지 않는 약을 잘 만드는 이가 있었는데 이 약을 바르고 대대손손 무 명 빨아서 바래는 일을 했다네. 지나가던 길손이 이런 사실을 알곤 금 백 냥을 줄 테니 약 만드는 비방을 팔라고 했다네. 그 양반은 가족을 모아놓고 이렇게 의논하기를,
‘우리 집안에 대대로 무명 빨아서 바래는 일을 해 왔지만 기껏 금 몇 냥도 만져보기 힘들었는데, 오늘 금 백 냥으로 이 약의 비방을 사겠다는 이가 있으니, 그만 팝시다.’, 했다네.
길손은 이 비방을 손에 넣자 오吳 나라 임금에게 가서 (약효를) 설명했네. 공교롭게도 이때 월越 나라가 전쟁을 걸어오자 오나라 임금은 이 양반을 장군으로 내세웠네. 마침 겨울이었는데 월나라 군대와 수전을 벌여서 이들을 크게 깨뜨렸네. 오나라 임금은 땅을 떼어 내리고 영주로 삼았네.
손 트지 않는 약은 하나뿐인데, 땅을 내려받으며 영주가 되기도 하고 무명 빨아서 바래는 일을 못 벗어나기도 하니, 바로 같은 것을 서로 달리 썼기 때문이 아닌가! 지금 자네는 다섯 섬이나 넣을 수 있는 박으로 큰 술통 만들어 강이나 호수에 띄워놓고 즐길 생각 못 하고 바가지가 작아서 담을 것 없다는 걱정만 하는가? 그러니 그대는 융통성 없이 앞뒤 막혔다는 말일세!”
惠子謂莊子曰:“魏王貽我大瓠之種,我樹之成而實五石。以盛水漿,其堅不能自舉也. 剖之以爲瓢,則瓠落無所容. 非不呺然大也,我爲其無用而掊之.” 莊子曰:“夫子固拙於用大矣. 宋人有善爲不龜手之藥者,世世以洴澼絖爲事. 客聞之,請買其方百金. 聚族而謀曰:“我世世爲洴澼絖,不過數金;今一朝而鬻技百金,請與之.” 客得之,以說吳王. 越有難,吳王使之將,冬與越人水戰,大敗越人,裂地而封之. 能不龜手,一也;或以封,或不免於洴澼絖, 則所用之異也. 今子有五石之瓠,何不慮以爲大樽而浮乎江湖,而憂其瓠 落無所容? 則夫子猶有蓬之心也夫!”
쓸모 없는 나무의 쓸모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내게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사람들이 이놈을 가죽나무라 부른다네. 이놈의 큰 줄기는 옹이가 박힌 데다 울퉁불퉁하여 먹줄을 칠 수가 없고, 작은 가지는 꼬불꼬불하여 자를 대어 잴 수가 없네. 길가에 서 있지만 대목이 거들떠보지도 않네. 지금 자네 말은 크지만 쓰임이 없어서 사람들이 떠나는 걸세.”
이 말을 듣고 장자가 입을 열었다.
“자네는 살쾡이나 족제비를 본 적이 없는가? 몸을 낮추고 땅에 납작 엎드려서 먹이를 노리다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높이 뛰고 낮게 뛰다 마침내 덫이나 그물에 걸려 죽는다네. 또 들소는 어떤가? 크기는 하늘 드리운 구름처럼 크고 능력도 대단하지만 쥐 한 마리 못 잡네. 지금 자네는 큰 나무를 가지고도 쓰임이 없다고 걱정하고 있으니, 어떻게 ‘아무것도 없는 마을’ 끝없이 넓은 들판에 심어놓고 그 곁에서 유유자적 방황하다가 그 나무 밑에서 낮잠이나 자려고 하지 않는가? 그러면 그 큰 나무는 도끼에 찍힐 일도, 또 달리 해칠 자도 없을 터, 쓰일 데 없다고 어찌 괴로워하겠는가!”
惠子謂莊子曰:“吾有大樹,人謂之樗. 其大本擁腫而不中繩墨,其小枝卷曲而不中規矩. 立之途,匠者不顧. 今子之言,大而無用,衆所同去也. ”莊子 曰:“子獨不見狸狌乎?卑身而伏,以候敖者;東西跳梁,不辟高下;中於機辟,死於罔罟. 今夫斄牛,其大若垂天之雲. 此能爲大矣,而不能執鼠. 今子有大樹,患其無用,何不樹之於無何有之鄉,廣莫之野,彷徨乎無爲其側,逍遙乎 寢臥其下.不夭斤斧,物無害者,無所可用,安所困苦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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