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말/1. 첫째 마당 - 耳

군주가 지켜야 할 도리

촛불횃불 2021. 9. 27. 15:53

 진晋 나라 평공平公이 사광師曠에게 물었다.

 “어떻게 왕도를 펼쳐야 할까요?”

 사광의 대답은 이러했다.

 “왕도를 펼치려면 청정 무위해야 하고 백성을 두루 아끼는 데 힘써야 하며 인재를 뽑아 써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의 의견에 널리 귀를 기울이고 자기의 말과 행동을 하나하나 살펴야 합니다. 게다가 세상의 비속함에 물들어서는 안 되며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이 홀려서도 안 됩니다. 고요한 상태에서 멀리 바라보면 여러 사람 가운데 분명 돋보일 것입니다.

이어서 자신의 정치적 업적을 자주 살피면서 이로써 신하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군주가 왕도를 펼치는 데 갖추어야 할 몸가짐입니다.“

 사광의 말을 다 들은 평공은 이렇게 말했다.

 “정말 훌륭하오!” 

 

 서한시대 문학가 유향劉向이 펼친 <설원說苑> '군도君道'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왕도’란 인仁과 덕德을 바탕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도리를 말한다. 이는 유학에서 이상으로 삼는 정치사상이다.

 ‘청정 무위’라는 말은 억지로 꾸며서 일을 벌이지 말고 언제나 깨끗하고 바르게 나랏일을 펼치라는 말이다.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모자라는 인물을 뽑아 써서도 안 된다. 군주가 귀를 열면 자기를 되돌아볼 수 있다. 그러면 스스로 모범이 될 수 있고, 왕도를 펼치기에 모자람이 없게 된다.

 앞 못 보는 장님 악사 사광이 이런 말을 군주에게 아뢸 수 있었던 건 열린 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귀를 열면 귀를 닫았을 때 보이지 않던 ‘이치’가 환히 열리는 법이다.

 

거문고 타는 사광의 모습

 

 덧붙여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사광의 인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느 날, 평공이 잔치를 베풀었다. 많은 신하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물론 사광도 이 자리에 있었다. 그것도 임금 곁에. 예나 이제나 잔치에는 언제나 술잔이 돌았고 음악도 빠지지 않았다. 주흥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평공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소리를 높였다.

 “하하하, 나보다 더 기분 좋게 사는 이는 없을 거외다. 내 말을 거역할 자 없기에 더욱 그렇소이다.”

 임금의 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바로 곁에 있던 사광이 거문고를 들고 임금을 향해 내려쳤다. 평공이 옷깃을 다잡으며 재빨리 몸을 피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거문고는 벽에 부딪치며 박살이 났다.

 “아니, 태사, 태사께서는 누구를 쳤소이까?”

 사광이 짐짓 이렇게 대답했다.

 “방금 어떤 소인배가 허튼소리를 하기에 화가 나서 혼내려고 했습니다.”

 임금이 정색을 하고 다시 물었다.

 “허튼소리를 한 이가 바로 나 아니오?”

 사광은 이렇게 눙쳤다.

 “아이고, 임금께서 그런 허튼소리를 할 리 있겠습니까?”

 귀를 열면 왕도는 눈앞에 있다. 

 

 맨앞 단락에 인용한 글의 원문을 여기 모셨다. 한문에 관심 있는 이는 살펴보시라. 

晉平公問於師曠曰:“人君之道如何?”對曰:“人君之道清淨無爲,務在博愛,趨在任賢;廣開耳目,以察萬方;不固溺於流俗,不拘系於左右;廓然遠見,踔然獨立;屢省考績,以臨臣下。此人君之操也。”平公曰:“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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