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衛 나라 영공靈公 때 미자하彌子瑕가 임금의 총애와 신임을 받으며 나라를 오로지했다. 어느 날, 어떤 난쟁이가 영공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 꿈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영공이 물었다.
"무슨 꿈을 꾸었소?
난쟁이가 대답했다.
"아궁이를 보았는데, 결국 임금님을 뵙는군요."
이 말에 영공이 화를 내며 소리 높였다.
"임금을 뵈려면 꿈에 태양을 본다는데, 어찌 꿈에 아궁이를 보고 과인을 만나려 한단 말이오?"
난쟁이가 임금의 말에 대답하여 입을 열었다.
"태양이 온 세상을 두루 비춘다면 물건 하나가 이를 막아설 수 없습니다. 임금님께서 이 나라 모든 사람을 두루 비춘다면 어느 한 사람이 임금님을 막아설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임금님을 만나려는 자는 꿈에 태양을 보는 것입니다. 만약 아궁이를 한 사람이 막아서며 불을 쬔다면 뒤편에 있는 이는 불빛조차 볼 수 없습니다. 지금 혹여나 어떤 이가 임금님의 찬란한 빛을 막아서지는 않았는지요? 설령 신이 꿈에 아궁이를 보았을지라도 이 또한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위 나라 영공
<한비자韓非子> '내저설상內儲說上'에서 데려왔다. 미자하는 위나라 영공의 남총男寵으로서 젊은 시절 군주의 굄을 독차지했다. 법과 도덕을 어긴 미자하의 행동도 영공의 눈에는 사랑스러울 뿐이었다.
그 시절, 난쟁이는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몸집이 특별히 자그마한 이들은 귀족들의 노리개로서 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즐거움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에는 예술에 뛰어난 재질을 발휘하는 이들은 물론 풍유諷喩의 명수도 있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난쟁이가 바로 풍유의 명수였던 모양이다.
난쟁이가 겉으로는 지난 밤 꾼 제 꿈을 해몽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도리를 따지며 임금의 불편부당함을 깨우치고 있다. 군주의 말 한 마디가 그대로 법이었던 시절, 아무리 완곡한 표현이라지만 풍간 한 마디로 하나뿐인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는 상황을 난쟁이가 몰랐을 리 없다. 직간으로 역린逆鱗을 건드렸다가 목을 내려놓은 이가 역사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잖은가! 그러했기에 난쟁이는 '직간'을 버려두고 이렇게 '풍간'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난쟁이가 아니라며 어깨 으스대는 무리들이 군주 곁에 수도 없이 많았겠지만, 권력의 조각을 붙안고 부귀와 영화의 달콤함에 젖은 자는 난쟁이보다 더 난쟁이다. 제 한 목숨보다 정의를 더 소중히 여기며 앞으로 나섰던 난쟁이의 목소리가 한층 더 우렁차고 당당하다. 이때, 이 난쟁이는 이미 난쟁이가 아니다. 큰 권력을 오로지했던 미자하는 말할 것도 없지만, 미자하의 빛에 가려진 위 영공이 외려 난쟁이다.
세상을 향해 두루 귀를 열면 밝아지고 한쪽을 향해 귀를 열면 어두워진다. 난쟁이의 해몽은 권력을 손에 쥔 자에게 보내는 경고이다. 이런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는 군주의 끝장은 어디일까?
귀를 닫은 군주의 끝장은 벽으로 사방이 닫힌 공간, 곧 감옥이다. 아니 죽음이다.
위 인용한 글의 원문을 여기 붙인다. 한문에 관심 있는 이는 살펴보시라.
衛靈公之時, 彌子瑕有寵, 專於衛國. 侏儒有見公者曰:“臣之夢踐矣.” 公曰:“何夢?” 對曰:“夢見竈, 爲見公也.” 公怒曰:“吾聞見人主者夢見日, 奚爲見寡人而夢見竈?” 對曰:“夫日兼燭天下, 一物不能當也;人君兼燭一國, 一人不能擁也. 故將見人主者夢見日. 夫竈, 一人煬焉, 則後人無從見矣. 今或者一人有煬君者乎? 則臣雖夢見竈, 不亦可乎!”
* 중국 고전 명문장은 온전히 '촛불횃불'이 번역하였으며, 이 고전 명문장[말]에 대한 '말'도 '촛불횃불'의 창작품입니다.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말의 말 > 1. 첫째 마당 - 耳'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주가 지켜야 할 도리 (2) | 2021.09.27 |
---|---|
귀 둘 입 하나 (1) | 2021.09.26 |
간언에 귀 막은 군주 (1) | 2021.09.15 |
달콤한 아첨 멀리하기 (5) | 2021.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