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말/1. 첫째 마당 - 耳

간언에 귀 막은 군주

촛불횃불 2021. 9. 15. 12:20

 춘추시대 진陳 나라 영공靈公이 행실도 바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는 말도 당치 않은지라, 이 나라 대부 설야泄冶가 이렇게 간언했다. 

 "우리 진나라가 망하게 생겼습니다! 제가 벌써 몇 차례나 고칠 것을 청하여 올렸지만 임금께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갈수록 엄숙함과 장중함을 버리고 있습니다. 임금께서 백성을 교화함은 바람이 풀을 눕히는 것과 같아서 동풍이 불면 풀은 서쪽으로 눕고 서풍이 불면 풀은 동쪽으로 눕습니다. 결국 풀이 눕는 방향은 바람의 방향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임금께서는 일거수일투족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부러진 나무가 어찌 곧은 그림자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임금께서 행동을 바르게 하지 않으시고 말씀을 조심스럽게 하지 않으시면 그 이름을 보존하여 후세에 남길 수 없습니다."

 

-춘추시대 지도, 지도 중앙 채蔡 나라 동북쪽으로 국경을 맞댄, 보라색의 자그마한 제후국이 바로 진陳 나라이다.

 

  설야의 간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역경易經>에는, 군자가 집안에 있어도 하는 말이 온화하고 선량하면 천리 밖에서도 호응하나니, 하물며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야 어떻겠는가, 또 군자가 집안에 있어도 그가 하는 말이 다정하지 않으면 천리 밖에서도 등을 돌리나니, 하물며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야 어떻겠는가, 말이란 자기에게서 나와 백성에게 미치고, 행실은 가까운 곳에서 나와 먼 곳까지 영향을 미치나니, 말과 행실은 군자의 기틀이며, 기틀의 움직임은 영욕과 관계되고, 군자는 이로써 온 천하를 움직이게 할 수 있으니, 어찌 신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렇게 일렀으니, 이는 온 천하가 움직이면 만물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시경詩經>에는,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예의와 법령을 존중해야 하느니라, 그리하면 백성들이 그대를 따르며 칭송하리라, 이렇게 일렀습니다."

 잠시 뜸을 들인 설야는 다음과 같은 말로 간언을 끝냈다.

 "지금 임금께서 되는대로 행동하시고 당치않은 말씀을 마구 하시니,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임금께서 시해될 게 뻔합니다."

 영공은 이 말을 듣고 설야가 백성을 미혹시킬 말을 한다고 여기며 그의 목을 내렸다. 뒷날 영공은 과연 하징서夏徵舒에게 시해되었다.

 

 서한 시대 문학가 유향劉向의 <설원說苑> '군도君道'에서 데려온 이야기이다.

 지금으로부터 2천 6백여 년 전, 춘추시대 정鄭 나라 목공穆公의 후궁 요자姚子가 딸을 낳았다. 하늘이 온통 이 아이에게만 아름다움을 내렸다고 할 만큼 절색이었다. 뒷날, 그녀는 진陳 나라 대부 하어숙夏御叔에게 시집을 갔다. 이 때문에 역사에서는 그녀를 하희夏姬라고 일컫는다.

 

-하희의 모습

 

 그런데 고개를 갸웃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하어숙에게 시집온 지 아홉 달도 채 되지 않은 하희가 사내아이를 낳았던 것이다. 하어숙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하희의 미모에 빠져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이때 낳은 아이의 이름이 하징서였다. 이 아이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 혈기 넘치던 장년의 젊은이 하어숙이 병으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과부가 된 하희는 독수공방하며 은거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 영공의 신하 공녕孔寧과 의행보儀行父, 이 두 사내가 하희의 집을 번갈아 드나들며 그녀의 잠자리 손님이 되었고, 곧이어 이 나라 임금 영공까지 한통속으로 놀아났다. 이들은 하희가 주었다는 속옷까지 내보이며 서로 낄낄거릴 정도였다. 

 이때, 앞으로 나서며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임금께서 시해될 게 뻔하다'며 목소리 높인 설야의 간언은 참으로 간담이 서늘해질 만큼 서슬이 푸르다. 그러나 영공은 이 간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징서의 저 우람한 몸집은 꼭 그대 공녕을 닮았소. 그대가 아버지인 듯하오."

 영공이 의행보에게 던진 말이었다.

 "아니, 하징서의 형형한 눈빛을 보면 주공의 눈빛 그대로입니다."

 의행보가 받았다.

 "잡종입니다, 잡종. 하희도 하징서의 아비가 누군지 모를 것입니다."

 이번엔 공녕이었다. 사마司馬 관직을 받은 하징서가 자기 집에서 제 어미가 베푼 술자리에서 이들이 희희낙락 주고받는 말을 숨어서 듣고 있었다. 하징서는 활을 들었다. 눈에 불이 난 하징서가 화살을 겨누자 이들은 허둥지둥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징서는 영공의 가슴에 화살을 날렸다. 영공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설야의 예언이 그대로 알과녁에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세 치 혀 때문에 죽은 이가 전쟁터에서 칼 맞아 죽은 이보다 많다. 당치않은 말을 삼가며 인간의 길을 벗어난 행동을 삼가라는 간언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영공은 그래도 제 목숨 부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신하의 간언에 귀를 막았다. 그러니 제 가슴 뚫은 화살은 결국 제가 불러들인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역사에는 충성된 간언에 귀를 열지 않다가 불행한 끝장을 맞은 군주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 두려워하지 않고 간언을 올린 충신을 역사의 무대에 다시 모셔 부활시킨다. 그리고 충언에 귀 막았던 군주는 역사의 무대에 다시 끌어내어 무릎 꿇린다.   

 

 유향의 <설원> '군도'에서 인용한 위 이야기는 온전히 '촛불횃불'이 번역하였으며, 이 고전 명문장[말]에 대하여 이어지는 평가[말]도 '촛불횃불'의 창작품입니다.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출처: https://anqial.tistory.com/10 [말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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