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마당

우리말의 속살

촛불횃불 2021. 10. 7. 19:30

 한국어를 모국어로 익힌 우리는 시각을 나타낼 때, '시'는 고유어와 짝을 이루고, '분'은 한자어와 짝을 짓는 데 아무런 저항을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한, 두, 세, 네, 다섯...열'은 '시'와 결합하고 '일, 이, 삼, 사, 오...십'은 '분'과 결합한다. 우리말에는 수를 나타내는 말에도 고유어와 한자어가 서로 짝을 이룬다. '한, 두, 세, 네...'는 고유어이며 '일, 이, 삼, 사...'는 한자어이다. 양을 셈하든 차례를 나타내든 고유어와 한자어가 함께한다.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이 지은 <한글갈> 차례 첫 페이지

  대체로 '한, 두, 세, 네...'와 만나는 의존명사는 고유어인 경우에, '일, 이 삼, 사...'와 만나는 의존명사는 한자어인 경우에 결합한다. 예컨대, '한 살, 두 살, 세 살, 네 살...'로, '일 세, 이 세, 삼 세, 사 세...'로 발화한다. '마흔 살'이지 '마흔 세'가 아니며, '육십 세'이지 '육십 살'이 아니다. 꽤 많은 이들이 생각없이 사용하는 '오십 다섯 살'도 '쉰다섯 살'이나 '오십오 세'로 해야 맞다. 

 이거 왜 그런가? 이유는 없다. 그러니까 그렇다. 하지만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이들에게는 이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닌 모양이다. '십 시 십 분'이나 '열 시 열 분'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현실이 속을 썩인다. 나이를 세는 단위로서의 의존명사가 '살'도 있고 '세'도 있으니 헷갈리고, 이와 결합하는 수를 나타내는 낱말도 고유어와 한자어가 따로 있으니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아. 한 마디 덧붙이면, 차례가 정하여진 시각을 이르는 말 조각 '시'나 '분'은 모두 한자어인데도, '시'는 고유어와, '분'은 한자어와 결합하니, 나이를 세는 '살'과 '세'의 경우에 적용되는 원칙도 여기 오면 또 달라지니, 아, 미안하다,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배우는 이들이여. 

 

'산문 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느님과 하나님  (1) 2022.05.18
개신교와 기독교  (0) 2022.05.17
오리무중 五里霧中  (0) 2022.01.18
쟁공爭功  (0) 2022.01.18
'장님'의 높임말이 '시각 장애인'?  (0) 2021.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