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령子靈의 여자(곧 하희夏姬를 말함)가 사내 셋을 살해했다. 나라님 하나에 아들 하나도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한 나라도 망치고 두 재상도 몸을 피했으니,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지나친 아름다움은 분명 지나친 추함도 있다고 했으니, 이 여인은 정鄭 나라 목공穆公의 작은이 요자姚子의 딸로서 자학子貉의 누이이다. …….”
(子靈之妻殺三夫, 一君, 一子, 而亡一國, 兩卿矣. 可無惩乎? 吾聞之 : “甚美必有甚惡, 是鄭穆公少妃姚子之子, 子貉之妹也.……,”)
<좌전左傳> '소공28년昭公28年'
무슨 일 있어 주림으로 가시나요?
하남 찾으러 갈 뿐입니다.
주림에 이르지 않았나요?
하남 찾을 생각뿐입니다.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에 올라,
주읍 교외에 멈추었지요.
네 필 망아지에 내 몸 올려,
주읍에 이르러 아침을 먹는답니다.
胡爲乎株林? 從夏南!
匪適株林, 從夏南!
駕我乘馬, 說于株野.
乘我乘駒, 朝食于株!
<시경詩經> '국풍國風⦁진풍陳風' 가운데 진영공陳靈公과 하희夏姬의 음란함을 까발린 시이다. 이 시는 물론 모나지 않고 부드러운 수사법으로 접근한다. 직언으로 표현하기에는 마땅치 않아 이리저리 얼버무리기도 한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진영공이 주림으로 하희를 찾아가지만, 시인은 오히려 하남을 찾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뒤이어 곧 하남을 찾을 생각뿐이라고 이른다. 그럼 누구를 찾는가? 끝까지 밝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는 어물어물 넘어가려는 말 속에서 시인이 가리키는 바를 얼른 알아낸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방향을 슬쩍 바꾼다. 덜커덕거리는 수레가 마침내 사람들이 싫어하는 문답에서 벗어난다. 저 멀리 보이는 주읍에 이제 곧 도착하게 생겼다. 진영공과 신하들은 드디어 한숨을 돌리며 여유를 찾는다.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는 나라님이 으스대며 뽐내는 모습을 표현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주읍에 이르렀을 때, ‘하남’ 따위의 위장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아름다운 하희의 시중을 받을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아침[朝食]’은 남녀 사이의 성애性愛를 가리키는 은어隱語로 당시에 널리 쓰였다고 한다. 이는 ‘주읍 교외에 멈추었지요.’, 이 구절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즉 짐승처럼 무리지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마구 음탕한 짓을 벌이는 하희의 뻔뻔스러움까지 읽을 수 있다. 오늘, 이 시는 2천 몇 백 년 전의 풍경을 독자 눈앞에 데려다 놓는다. 그리고 독자는 머릿속에 주읍 교외에 이르러 수레에서 내린 나라님과 신하들의 얼굴에 번진 음탕한 웃음을 떠올린다. 오늘 우리 한국에도 음탕한 웃음을 애써 감춘 채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버린 자 없지 않기에 그 모습 더욱 선명하다.
지금으로부터 2천 6백여 년 전, 춘추시대 정鄭 나라 목공穆公의 후궁 요자姚子가 하희를 낳았다. 요자는 일찍이 아들 자학子貉을 낳았으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보냈다. 그녀가 뒤이어 얻은 하희는 하늘이 온통 이 아이에게 아름다움을 내렸다고 할 만큼 절색이었다. 누에나방의 촉수처럼 가늘고 긴 데다 활처럼 완만하게 굽어진 미인의 눈썹을 가리켜 ‘아미蛾眉’라 이르고, 아름답고 둥글고 큰 미인의 눈을 살구씨에 빗대어 ‘행안杏眼’이라 이르고, 복사꽃 같은 미인의 뺨을 일러 ‘도시桃顋’라고 하는데, 이 모든 것을 두루두루 갖추고 태어난 인물이 바로 하희였다. 그런데 하희는 아직 출가하기 전에 목공의 또 다른 후궁에게서 난 배다른 오라비 만蠻과 남몰래 정을 통했다. 이 일은 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남으로써 끝이 났다.
그 뒤, 하희는 주읍을 식읍으로 받은 진陳의 대부 하어숙夏御叔에게 시집갔다. 정나라 도읍지에서 이곳까지는 무려 6백 리에 이르는 곳, 산 넘고 물 건너 좁은 길 굽이굽이 펼쳐진 이 길을 상상하면, 오늘 생각해도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그녀는 하씨의 부인이 된 이때부터 하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고개를 갸웃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하어숙에게 시집온 지 아홉 달도 채 되지 않은 하희가 사내아이를 낳았던 것이다. 하어숙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하희의 미모에 빠져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이때 낳은 아이의 이름이 하징서夏徵舒였다. 이 아이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 혈기 넘치던 장년의 젊은이 하어숙이 병으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과부가 된 하희는 독수공방하며 주읍에 은거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하희의 나이 서른이 넘었지만 눈처럼 흰 피부에 매력적인 눈은 아름다운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오래지 않아 주읍에 살고 있던 공녕孔寧과 의행보儀行父가 하희네 집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얼마 뒤 앞뒤로 하희의 잠자리 손님이 되었다. 이들 둘은 벌써부터 하희의 미모를 엿보며 한시도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의행보를 만난 공녕이 바지를 슬쩍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깜짝 놀라 눈을 비비던 의행보가 이렇게 물었다.
“아니, 그건 속옷이 아닌가? 그것도 여자 속옷이…….”
공녕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자랑스럽다는 듯이 한 마디 툭 던졌다.
“하희가 내게 주었지, 자기가 입던 속옷을.”
의행보의 머릿속이 재빨리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도 벌써부터 그녀를 마음속으로 애틋하게 생각하며 그리워했던 터였다. 그랬기에 가만가만 하희에게 접근했다.
하희도 의행보에게 마음이 끌렸다. 큰 키에 우뚝한 콧날을 보자 그대로 빠졌던 것이다. 물론 의행보도 그녀에게 환심을 사기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그녀도 결국 그에게 기우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날, 하희는 그와 운우의 정을 나눈 뒤, 몸에 걸쳤던 비단 속옷을 그에게 주었다. 이때부터 그는 번질나게 그녀의 집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공녕이 눈에 쌍심지를 켜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러나 공녕은 끓어오르는 질투를 애써 누르며 마음속으로는 이를 이겨낼 계책을 떠올렸다. 홀로 진영공을 찾은 건 이 때문이었다.
“하희의 농염함을 따를 여인은 없습니다. 게다가 방중술도 천하제일입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핵심은 이 두 마디였다.
사실 진영공은 나라님이긴 하지만 엄숙한 용모나 장중한 태도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경솔한데다 오만하기까지 했다. 또 주색을 심히 밝혔으며 놀이에 빠져 헛되이 세월을 보냈다. 그러니 나랏일에 관심을 두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신들의 바른 말에 귀를 기울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희의 나이 벌써 마흔이 다 되었으니, 아름다운 복사꽃도 이미 철 지난 꽃 아니겠소?”
입맛은 당기지만 단맛 빠지고 쓴맛 날세라 저어한다는 말투였다. 그러나 공녕이 얼른 받았다.
“방금 말씀 올렸듯이 하희는 방중술에 정통합니다. 이 때문인지 얼굴이 팽팽하기가 아직도 열여덟 아가씨입니다.”
이 말에 진영공의 얼굴이 금세 벌겋게 타올랐다.
이튿날, 진영공은 미복을 한 채 공녕의 안내를 받으며 주읍으로 향했다. 미리 이 소식을 전해 들었던 하희는 화려하고 아름답게 몸단장을 하고 진영공의 수레가 문간에 이르자 사뿐사뿐 나아가 영접을 했다.
“귀하신 분께서 먼 길 오셨습니다, 어서 드시옵소서.”
자그마한 입에서 흘러나온 꾀꼬리 노래처럼 감미로운 목소리가 처음부터 진영공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후궁의 미녀들에 견줄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미녀를 이제야 만나게 한 하늘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예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달빛 받은 배꽃이요 눈 속에 핀 매화였다. 술이 한 순배 돌자, 하희는 진영공에게 은근한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진영공의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흐트러졌다. 술에도 취하고 사람에도 취하며 진영공은 끝내 곤드레만드레 되었다. 그날 밤, 진영공은 하희를 품에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 뒤, 진영공은 공녕과 의행보를 대동하고 주읍으로 달려가 하희를 만났다. 이 날, 하늘도 땅도 놀라 뒤집힐 만한 일이 벌어졌다. 벌거벗은 네 사람이 한데 얽혀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짐승보다 못한 모습을 연출했던 것이다. 한 여자와 세 남자가 함께 이러했으니, 이들은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짐승이었다. 그러기에 하희만을 뚝 떼어내어 ‘음녀淫女’라는 명패를 내린 사람들의 평가는 자못 편파적이다. 이성 잃은 이들 남성의 모습을 애써 외면한 평가는 역사를 기록하는 이가 이성을 멀리한 남성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들은 하징서의 존재를 애써 외면했을까? 아니면 존재 자체를 생각지도 않았을까?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때 하희의 아들 하징서는 벌써 열여덟 살, 우뚝한 키에 힘도 대단한 젊은이였다. 게다가 활쏘기에도 명수가 되어 있었다. 이런 하징서에게 진영공은 하희의 비위를 맞추느라 그 아비의 관직을 세습시켜 사마司馬라는 관직을 내린 터였다. 이 직책은 병권을 오로지할 수 있는 자리였다.
어느 날, 하징서는 이런 은혜에 감사하는 뜻에서 집안에 잔칫상을 차리고 진영공과 공녕, 그리고 의행보를 모셨다. 하희는 아들이 이 자리에 있었기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런데 술이 몇 순배 돌자, 불콰해진 진영공과 공녕, 의행보, 이 세 사람이 서로 농지거리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자리를 잠시 비웠다가 돌아오던 하징서는 그만 병풍 뒤에 몸을 숨기고 이들이 주고받는 농지거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징서의 저 우람한 몸집은 꼭 그대 공녕을 닮았소. 그대가 아버지인 듯하오.”
진영공이 의행보에게 던진 말이었다.
“아니, 하징서의 형형한 눈빛을 보면 주공의 눈빛 그대로입니다.”
의행보가 이렇게 받았다.
“잡종입니다, 잡종. 하희도 하징서의 아비가 누군지 모를 것입니다.”
희희낙락거리며 이들이 주고받는 농지거리에 인간의 모습이라곤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병풍 뒤에 가만히 숨어서 엿듣던 하징서는 제 어미의 내실을 가만히 잠근 뒤 밖으로 나와 수행 군졸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이 집을 겹겹이 에워싸라, 그리고 진영공과 공녕, 그리고 의행보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해라.”
군령은 무섭기가 추상이었다. 감히 이 명령에 이유를 되묻는 군졸은 하나도 없었다. 갑옷으로 바꿔 차려입은 하징서는 새파랗게 날 선 칼을 오른손에 쥐고 힘센 하인 몇을 데리고 대문 안으로 세차게 달려들었다.
일이 잘못되었구나, 순간적으로 깨달은 세 사람은 펄떡 몸을 일으켰다. 먼저 진영공은 하희에게 매달릴 마음으로 내실로 내달았다. 아하, 이럴 수가, 내실은 이미 잠겨 있었다. 갈 곳 잃은 진영공은 뒤뜰로 내뺐다. 하지만 하징서가 바싹 쫓아왔다. 진영공은 어쩔 수 없이 동쪽 외양간을 향해 허둥지둥 뛰었다. 외양간 바깥쪽으로 난 나지막한 담장을 넘을 작정이었다. 바로 이때, 쌩, 하고 화살이 날아왔다. 하징서과 활을 쏘았던 것이다. 그러나 맞지 않았다. 진영공은 깜짝 놀라 외양간으로 뛰어들었다. 이곳에서 잠시라도 몸을 숨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척에 놀란 말들이 울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때, 그를 찾던 하징서와 맞닥뜨렸다. 피융, 하징서가 날린 화살이 진영공의 가슴을 뚫었다. 공녕과 의행보, 이 두 사람은 개구멍으로 빠져나와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나 이 둘은 감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초나라로 몸을 피했다.
하징서는 진영공이 술에 취하여 갑자기 쓰러진 뒤 일어나지 못했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대신들과 함께 태자 오午를 새 임금으로 추대하여 자리에 앉혔다. 이가 곧 진성공陳成公이다.
진나라 백성들이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이들은 진영공의 죽음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나랏일에 관심 두지 않고 주색에 절어 사는 나라님을 그들은 줄곧 경멸했음이 분명하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불거졌다. 개구멍으로 기어 나와 몸을 피한 공녕과 의행보가 찾아간 곳이 어디였던가? 초나라 아닌가. 초나라 장왕庄王은 오로지 이들 두 사람의 말만 듣고 하징서를 가만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진성공은 진晋 나라에 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대신들은 초나라와 대적할 수 없었기에 두려움에 떨었다. 이들은 모든 잘못을 하징서에게 떠넘기기로 작정했다. 초나라 대부 원파轅頗가 군사를 이끌고 도성 밖에 이르자 활짝 성문을 열고 이들을 맞아들였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원파는 주읍으로 내달아 하징서를 붙잡아 그 자리에서 거열형에 처했다. 거열형이란 죄인의 머리와 사지를 다섯 마리 말이 끄는 수레에 각각 묶은 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말을 달리게 하여 죄인의 몸뚱이를 여섯 도막으로 찢는 형벌을 가리킨다. 분노의 끝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원한을 가슴에 그대로 안고 살기엔 젊음이 하징서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주림에 달려온 원파는 하희도 사로잡았다. 그러나 원파는 그녀의 목을 내리지 않고 초나라 궁중으로 보냈다. 하희의 처분은 장왕의 손에 맡겼던 것이다. 하희를 만난 장왕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마구 뛰었다. 용모가 너무 아름다웠던 것이다. 게다가 자기 물음에 대답하는 하희의 목소리마저 그대로 반할 만큼 은근하고 부드러웠다. 그녀를 후궁으로 맞아들이기로 마음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를 눈치 챈 대부 무신巫臣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장왕에게 가만히 아뢰었다.
“하희는 상서롭지 못한 여인입니다. 곁에 있던 남자들이 모두 저주를 받으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게다가 진나라도 하희 때문에 망하지 않았습니까? 세상에는 미녀가 숱하게 많은데, 어찌하여 꼭 하희란 말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무신을 일러 달리 굴무屈巫라고 한다. 장왕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후궁으로 맞아들일 마음을 접었다. 그 대신 당시 아내를 여의고 홀로 살고 있던 초나라 귀족으로 연윤連尹 자리에 있던 양로襄老에게 하희를 내렸다.
초장왕 17년(기원전 597년), 연윤 양로가 전쟁터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었다. 어쩌다 얻은 염복은 불과 며칠 만에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의 아들 흑요黑要가 제 아비의 주검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서모를 제 것으로 만들고 말았다. 인간답지 못한 일은 꼬리를 물었으니, 하희가 보기에 세상은 온통 검은빛이었을 것이다. 뒤이어 하희는 정나라로 떠났다. 남편의 주검을 모시기 위해서였다. 당시 초나라 대부 무신은 오랫동안 하희의 아름다움을 사모해오던 터라 그녀를 자기가 맞아야겠다고 큰소리쳤다. 무신은 남편의 주검을 모시겠다며 정나라로 돌아간 하희를 뒤따랐다. 마침 사신이 되어 제齊 나라로 가는 길에 아예 정나라에 들러 하희를 만나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그는 제나라에 올릴 예물을 아예 결혼 예물로 바꾸어버렸다. 그리고 하희와 함께 진晋 나라로 향했다. 그는 역참에 딸린 객사에서 하희와 첫밤을 맞았다. 이튿날, 무신은 초왕에게 벼슬에서 물러난다는 글을 올리고 진晋 나라에 몸을 의탁했다. 진나라 임금은 천하에 똑똑하기로 이름난 무신을 얻자 몹시 기뻐하며 형邢의 대부에 봉했다. 한편 초나라에 있던 무신 일족과 흑요 집안은 모두 몰살당했다. 초장왕의 노여움이 두 집안을 큰 재앙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나이 벌써 마흔을 넘어선 하희였다. 그러나 그녀는 왕명을 받고 제나라로 향하던 한 외교관으로 하여금 가족까지 버리고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게 만들었으니, 그 아름다움이 빚은 살상력이 소름끼치도록 두렵다.
춘추 시대는 음란한 기풍이 매우 왕성하여 방탕한 여인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희는 그 가운데 머리를 차지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하희가 일찍이 나라님 셋과 관계를 가졌다고 하여 ‘삼대왕후三代王后’라고 이름붙이며 빈정댔다. 이뿐이 아니다. 잇달아 아홉 차례나 시집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끄집어내어 ‘칠위부인七爲夫人’이라는 명패까지 안겼다. 여기에 더하여 아홉 사내가 그녀의 방중술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며 ‘구위과부九爲寡婦’라며 그녀를 나무랐다. 그러면서 세상은 그녀의 음란함에만 관심과 흥미의 초점을 맞출 뿐 음란함으로 함께 어깨를 결었던 사내 곁에는 다가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지금도 이런 점에서는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하희를 애써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녀도 시대를 뒤집어엎기엔 흙탕물의 흐름은 거침이 없고 힘찼다. 어쩌면 타고난 아름다움이 원죄였을까. 여성을 한낱 남성의 부속물로 여기던 시대였기에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지난날 역사 기록은 항상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역사 인물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을 얻은 숫자 - 사마상여司馬相如와 탁문군卓文君 (0) | 2021.12.08 |
---|---|
청루의 여자가 된 황후① - 호황후胡皇后 (0) | 2021.12.05 |
매맞은 임금-초평왕楚平王 (0) | 2021.11.24 |
중국의 첫 번째 부자 범려范蠡① (0) | 2021.11.21 |
매화를 아내로 맞은 사나이 - 임포林逋 (0) | 2021.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