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산책

매맞은 임금-초평왕楚平王

촛불횃불 2021. 11. 24. 10:00

 오자서는 초나라 평왕의 묘를 파헤치고 주검을 꺼내어 3백 대의 매를 때린 뒤에야 채찍을 내려놓았다.

 (伍子胥乃掘楚平王墓, 出其尸, 鞭之三百, 然後已.)

 <사기史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대왕, 따라온 계집종을 매만져 곱게 꾸민 뒤 동궁으로 들여보내면 될 것이옵니다.”

초나라 평왕의 명을 받아 태자비를 맞으러 진나라로 건너간 이는 태자 건建의 소부 비무기費無忌였다. 태자비로 예정된 이는 맹영孟贏, 바로 진나라 왕 애공哀公의 누이였다. 태자비를 맞으러 진나라 왕궁에 들어간 비무기는 맹영을 보는 순간 그녀의 아름다움에 가슴이 뛰었다. 바르지 못하고 간교한 신하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좀 더 움켜쥐어야 할 권력만이 모든 것이었다.

 비무기의 머릿속은 재빨리 회전하기 시작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이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비무기는 평왕의 속마음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리하오면, 진나라 애공의 누이 맹영은 대왕의 것이옵니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키며 행해야 할 인륜을 거스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평왕은 인륜을 거스르는 일에 머뭇거림이 없었다.

 “그대 뜻을 따르겠소.”

 

초나라 평왕

 그러나 문제는 그 뒤였다. 세상에 어디 비밀이 있는가! 밝혀지지 않거나 알려지지 않을 일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이런 일일수록 그 속내는 빠른 속도로 나들이를 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날개까지 달고 먼 곳 마다않고 내달린다.

세상에는 비무기처럼 자기 이익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비 같은 인물도 많지만 바름과 옳음을 지키기 위해 한목숨 버릴 줄 아는 인물도 적지 않다. 그러하기에 역사를 보면 당장은 비틀거리는 듯해도 긴 흐름은 언제나 바른 길을 향해 나아갔다.

 

이 사건을 다룬 경극 <초궁한楚宮恨>의 한 장면

맨 처음 이 사실을 알고 기꺼이 앞으로 나선 이는 태자 건의 태부 오사伍奢였다. 태자를 가르치는 스승을 일러 태부라 했다. 비무기는 태자 건을 가르치는 스승이긴 했지만 소부로서 오사보다 한 등급 아래였다. 오사는 비무기의 행동을 맨눈으로 지나칠 수 없었다. 인륜을 거스르는 평왕에게 간언을 올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올리는 간언은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지만 평왕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간신 비무기가 세 치 혀로 만들어내는 꾀가 훨씬 더 달콤했기 때문이다.

“태부 오사를 없애야 대왕의 옥체를 보존할 수 있나이다. 게다가 태자를 내치지 않으면 대왕께 큰 후환을 안길 것이옵니다.”

그랬다. 한눈에 반할 만큼 아름다운 미녀를 아비에게 빼앗겼는데 이를 갈지 않을 아들이 어디 있겠는가? 태자 건이 태부 오사와 어깨를 겯고 모반을 꾀하여 성공하는 날에는 소부 비무기뿐만 아니라 자신도 끝장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했던 것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벌이는 음모와 획책은 예나 이제나 그 교활함의 높낮이에서 큰 차이가 없다. 평왕의 눈에는 이제 올곧은 신하도 눈엣가시였고 태자로 선택할 만큼 온 마음 다해 사랑했던 아들도 자기를 옭아맬 덫이었다.

 

오자서의 모습

 평왕은 비무기의 간사한 꾀를 좇아 먼저 오사를 없애기로 했다. 태자를 오랫동안 가르쳐온 태부 오사는 올곧은 처신으로 주위의 신망도 대단했을 뿐만 아니라 어느 날 태자 건과 손을 잡고 자기에게 반기를 들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평왕은 먼저 태부 오사를 감옥에 넣었다. 비무기의 참언과 모함으로 평왕은 처음부터 제 정신이 아니었다. 평왕으로서는 오사를 당장 끝장내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사 한 사람을 없애는 것으로 끝낼 수는 없었다. 오사에게는 젊고 당당한 두 아들이 있었다. 맏아들 오상伍尙과 둘째아들 오자서伍子胥였다. 평왕은 이들을 서울로 불렀다.

 두 형제는 손을 맞잡고 의논했다. 평왕은 감옥에 갇힌 오사의 두 아들이 자기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으면 이들의 아비를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말을 두 형제는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두 형제는 모두 평왕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는 순간 삼부자가 모두 함께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아버님 가시는 길에 함께하는 게 아들로서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하네.”

 맏아들 오상의 결심은 굳었다. 그러나 둘째아들 오자서의 뜻은 달랐다.

 “저는 뒷날 아버님의 원수를 갚는 걸로 효를 다하겠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희생 제물이 되고 말았다.

 

소관昭關의 모습

 평왕은 오자서의 얼굴 형상을 그려 도처에 내걸고 체포령을 내렸다. 오자서는 먼저 송나라로 달아났다. 하지만 당시 송나라에서 벌어진 난리로 더 이상 머물 수 없었기에 오나라로 가기로 작정했다. 오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소관昭關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양쪽에 산이 우뚝 솟은 데다 앞쪽에는 큰 강이 가로막았고 병사들도 무장한 채 눈을 번뜩였기에 이곳을 통과하기란 하늘에 오르기보다 더 어려웠다. 세상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오자서는 전설적인 명의 편작의 제자 동고공의 교묘한 꾀에 힘입어 이 관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오나라에 온 오자서는 오왕 합려를 보좌하며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병사들을 강하게 변화시켰다.

 오자서는 아버지와 형을 죽인 평왕의 무릎을 꿇리기 위해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한마음으로 움켜쥔 주먹을 풀지 않았다. 마침내 오왕 합려의 명령을 얻어낸 오자서는 병사를 이끌고 나아가 초나라 서울 영郢을 공격하여 깨뜨렸다. 그러나 아버지와 형을 죽인 원수 평왕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향해 내달았다.

 

평왕의 주검에 채찍질하는 오자서

 “무덤을 파헤쳐라.”

 오자서는 이미 뼈밖에 남지 않은 주검에 3백 차례나 채찍질을 하며 분을 풀었다.

 평왕은 태자비를 가로채며 패륜을 저질렀다. 온갖 감언이설로 자기 이익을 위해 나쁜 짓을 일삼은 비무기도 평왕과 짝짜꿍이 되어 우선은 영화를 누렸다. 더구나 평왕은 살아생전 부귀와 영화를 누리다가 천수를 다했다. 그러나 그는 땅속에 묻혀 제 한 몸이 완전히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만천하에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역사를 기록하는 이의 날선 붓끝을 끝내 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태자 건을 박해하며 태부 오사와 그 아들을 죽음에 빠뜨렸던 비무기도 제 명을 다하지 못했다. 평왕이 세상을 뜨고 어린 소왕이 자리를 이었다. 당시 초나라의 집정관이었던 낭와囊瓦는 비무기를 향한 백성들의 들끓는 원망을 잠재우기 위하여 소왕의 명령을 얻어내어 비무기와 그 가족을 한꺼번에 처리했다.

따지고 보면, 맹영의 아름다움이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조각을 더 차지하려고 눈이 뒤집힌 간신의 탐욕이 문제였다. 거기에 판단력이 흐려진 최고 권력자의 끝 모를 탐욕이 더해지며 그 시대의 왕궁은 마침내 오물덩어리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지나친 탐욕이 자기뿐만 아니라 아름다워야 할 역사까지 그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