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산책

매화를 아내로 맞은 사나이 - 임포林逋

촛불횃불 2021. 11. 18. 15:20

衆芳搖落獨暄妍, 占盡風情向小園.

疏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霜禽欲下先偷眼, 粉蝶如知合斷魂.

幸有微吟可相狎, 不須檀板共金樽.

 

온갖 꽃 떨어진 뒤 홀로 고운 자태로

작은 동산의 풍광을 모두 차지했구나.

성긴 그림자 비스듬히 맑은 물에 잠기니,

그윽한 향기 어렴풋한 달빛에 풍기네.

하얀 학 앉으려다 먼저 슬며시 살펴보고,

나비 미리 알았다면 심히 부끄러웠으리.

다행히 시 읊조리며 친해질 수 있으니,

노래하고 술 마시며 흥 돋울 일 없어라.

 

 <산원소매山園小梅>라는 제목을 가진 이 시의 두 도막 가운데 첫 번째 도막이다. 매화 특유의 자태가 드러내는 아름다움과 고결한 품성이 그대로 보인다. 매화가 어렴풋한 달을 만났으니 이 또한 멋진 풍광인데, 성긴 가지가 달빛에 은은한 그림자 만들며 맑은 물에 잠긴 모습은 바로 이 시를 읊은 작자 자신이 아니겠는가. 

 

매화와 달의 만남은 언제나 예사롭지 않다

이 시를 읊은 이는 전당錢塘(지금의 항저우杭州) 출신으로 북송 시대를 살았던 임포林逋이다. 그가 태어난 해는 967년,  세상을 버린 해는 1028년, 짐작컨대 경제와 문화가 한껏 익었던 북송 앞쪽의 풍요로움을 한껏 누리기에 부족하지 않았을 터이지만, 그는 매화처럼 고고하게 살았다. 모셔온 위의 그림은 비스듬히 화면 왼쪽에서 중앙을 향하던 가지 가운데 하나가 오른쪽 윗쪽으로 살짝 고개를 치키며 둥근 달을 맞았다. 매화와 달의 만남, 이른바 '매월도'이다.

 5만 원 권 지폐에 인쇄된 어몽룡의 <매월도>는 꼿꼿이 선 매화가지 왼쪽 끝에 둥근 달이 우련하고 함께한 이정의 <풍죽도>가 배경이 되어 매화의 조용함과 바람 맞은 대나무의 움직임이 조화롭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은 5만 원 권 뒷편의 이 그림도 함께 감상하기 바란다. 이렇게 매화와 달의 만남은 시대를 건너뛰며 우리 동양 선비들의 고고함을 드러내는 소재였다. 

 

매처학자梅妻鶴子

 세상을 떠나 살기로 이미 예정되었던 걸까? 그의 이름 '포逋'의 1차적 의미는 '도망치다'이다. 그의 선대가 내린 이름일 테지만 그의 운명을 예감하기에 자못 충분한 듯하다. 그는 한평생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학문을 하여 지식이 수준에 이르면 벼슬하는 것이 옛 선비들이 지향하는 목표였지만, 임포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사코 멀리 '도망치려고' 했다. 그가 빠져든 대상은 벼슬이 아니라 '매화'였다. 아, 또 하나 있다. 바로 '학鶴'이었다. 앞의 시에서도 낱말로써 겉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홀로 고운 자태'로 '그윽한 향기 풍기는' 물상은 바로 매화이다. 그리고 원문의 '霜禽'은 '하얀 학'으로 옮겼으니, 바로 그가 매화와 함께 사랑하는 대상이다. 바로 위의 그림은 제목도 '매처학자梅妻鶴子'이다. 임포의 모든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네 글자, '매처학자'는 '매화가 아내요 학이 아들이다'라는 뜻이다. 그림을 살피면, 겨울날, 오래된 매화나무 밑동에 비스듬히 기댄 그의 발치쯤에 학 한 마리가 그와 대화하는 모습이다. 

 

林和靖

 

 그를 소재로 한 그림에서 매화와 학은 빠질 수 없다. 매화 비스듬한 가지 아래 매화처럼 비스듬히 기댄 그 앞에 이번에는 학이 두 마리이다. 왼손으로 머리를 받친 임포의 표정이 어쩜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때가 잔뜩 낀 세상에서 멀리 벗어난 모습, 그대로 자유인이다. 이런 그가 벼슬길에 나설 까닭이 없을 것 같다. 이런 그의 마음을 잘 알았기에 범중엄이나 매요신 등의 명인도 그를 벼슬길로 끌지 않고 단지 시로써 호응할 뿐이었다. 가난을 달게 여기는 굳은 심지가 있었기에 영예나 이익을 붙좇지 않았던 그에게 역사는 '매처학자'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안겼다. 임포는 이렇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가 만년을 살던 서호 곁 고산孤山 기슭에 묻혔다.

 

임화정 처사의 묘, 화정은 임포에게 내린 시호이다

 

 그가 세상을 버린 지 1백 년이 지난 1127년, 그의 조국 북송은 북쪽의 금에게 무릎을 꿇었다. 황족 조구趙構가 큰 땅덩어리를 금에게 안기고 쫓기듯이 남쪽으로 내려와 임안(지금의 항저우)에 도읍을 정하니 남송의 시작이다. 남송 정권은 황실 전용 사원을 서호 곁 고산에 새로 세우기 위하여 그곳에 산재한 주택은 물론 묘지까지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임포의 묘는 홀로 남겨두게 했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 명령이 오히려 화근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미리 내다보지 못했다. 뒷날, 황족의 무덤이라 잘못 판단한 도굴꾼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덤은 파헤쳐졌다. 하지만 금붙이가 쏟아질 거라 생각한 이들 도굴꾼의 판단은 결과적으로는 과녁을 한참이나 벗어난 화살이었다. 겨우 단연端硯 한 점과 옥잠玉簪 한 점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단연
옥잠

 매화를 아내로 맞아 제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이를 소재로 시도 읊고 그림도 그리던 선비 임포의 무덤, 이곳에서 단계에서 생산된 최고 품질의 벼루 한 점이 나왔다. 이는 너무나 당연하여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런데 옥잠이라니, 감추어진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한평생 홀로 살았다고 알려진 인물 아닌가, 고개 아무리 갸웃해도 아직은 알 수 없다. 여기 그가 읊은 시 한 수를 보인다.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吳山靑, 越山靑.

兩岸靑山相對迎, 誰知離別情?

君淚盈, 妾淚盈.

羅帶同心結未成, 江頭潮已平.

 

전당강 북쪽 산도 푸르고, 전당강 남쪽 산도 푸른네.

양쪽 기슭 푸른 산은 서로 영접하는데,

누가 이별하는 마음 알겠는가>

님도 눈물 그렁그렁,

저도 눈물 그렁그렁.

비단띠는 아직 한마음으로 맺지 못했는데,

강가엔 밀물이 벌써 차올랐네.

 

제목은 <장상사長相思>, 옮기면 <한없는 그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