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계열전 4

한무제 유철이 각별히 대우한 여인-젖어머니

서한의 일곱 번째 황제 무제 유철의 생모는 왕지王娡이다. 이 여인은 애초 금왕손金王孫에게 시집가서 딸 하나를 낳았지만 그녀의 어미를 따라 황태자 유계劉啓의 궁중에 들어와서 미인美人에 봉해진다. 유계는 서한의 여섯 번째 황제로 자리에 오르니, 이 곧 경제景帝이다. 왕미인이 경제에게 안긴 아들이 바로 유철이다. 유철은 왕미인에게는 첫 번째 아들이지만 경제에게는 열 번째 아들이다. 왕미인의 몸으로 낳은 유철에게는 유모가 따로 있었다. 유모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자못 특수한 여인’이었다. 자신의 몸에서 만들어진 따스한 젖을 받아먹으며 자란 아이가 귀족의 자제일 경우 이 여인의 신분도 따라서 현귀해질 수 있었다. 성인이 된 왕공 귀족의 자제는 그 아비의 신분을 그대로 이어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어린 시절 ..

보석처럼 빛난 여인-우맹優孟의 아내

『공자가어孔子家語』에는 공자가 초楚 나라 장왕莊王을 가리켜 ‘어질고 착하구나, 초왕이여! 천승千乘의 나라를 가벼이 여기고 한 마디 말을 소중히 여겼구나.’, 이렇게 찬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장왕은 자그마한 제후국 진陳 나라 군주 영공을 시해한 하징서夏徵舒를 죽이고 이 나라를 초나라의 일개 현으로 만들었다. 그 뒤, 그는 신숙시申叔時의 ‘하징서가 그의 임금을 시해했다고 해서 여러 제후들의 군대를 모아 정의라는 이름으로 징벌하고 또 얼마 뒤에 그 땅까지 차지한다면 어떻게 천하를 호령할 수 있겠느냐?’는 간언에 귀를 기울여 진나라를 후손에 돌려주었다. 공자가 한 말은 바로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이렇게 초나라 장왕은 신하의 간언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다. 초나라 장왕이 처음부터 이렇게 귀를 너그럽게 열지..

세 치 혀의 해학-동방삭東方朔

한나라 무제 유철은 황제에 자리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질고 착한 인재를 불러 쓰겠다고 널리 알렸다. 이때, 제나라 사람 동방삭東方朔이 장안으로 올라와서 자신을 스스로 천거하는 글을 올렸다. 그것도 황제에게 상주할 때 쓰는 죽간 3천 장에 이르는 긴 글이었기에 한무제 유철이 이를 읽는 데만 두 달이 꼬박 걸렸다고 하니, 동방삭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할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성격이 익살스럽고 언사가 민첩한데다 재치까지 넘쳐서 무제 유철도 늘 그와 자리를 함께하며 담소하기를 즐겼다. 그러나 무제 유철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방삭을 익살과 재치 넘치는 광대로 취급하며 높여 쓰지 않았다. 사마천은 ‘열전’ 70편 가운데「골계열전滑稽列傳」의 여러 인물 가운데 동방삭을 넣어 그의 언행을 기록했다..

재치와 해학으로 승리한 사나이-순우곤淳于髡

1. 데릴사위 그리고 작은 키 사마천은 「맹자·순경열전」과「골계열전」두 편에서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 순우곤淳于髡을 등장시킨다. 먼저 「골계열전」부터 펼친다. 순우곤은 제나라 사람의 데릴사위였다. 그는 키가 일곱 자가 채 되지 않아도 익살스러운데다 말재주가 뛰어나 여러 차례 제후 나라에 사신으로 갔지만 굴욕을 당한 일이 일찍이 없었다. 淳于髡者, 齊之贅婿也. 長不滿七尺, 滑稽多辯, 數使諸侯, 未嘗屈辱. 순우곤 ‘열전’의 첫 번째 단락이다. 데릴사위와 작은 키, 그리고 뛰어난 말재주, 이 세 가지이다. 데릴사위. 이는 그의 이름자 가운데 ‘곤髡’과 더불어 출신이 매우 비천했음을 드러낸다. ‘데릴사위’는 춘추시대 제나라에서 시작된 풍속이다. 당시 제나라에서는 맏딸이 출가할 수 없으면 집안에서 제사를 주관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