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려 4

분수를 안 사나이-도양열屠羊說과 범려范蠡

초나라 소왕이 나라를 잃어버리자 도양열은 소왕을 따라 나라 밖으로 몸을 피했다. 소왕이 초나라로 돌아와 자기를 따른 이들에게 상을 내리려고 했다. 도양열에게도 상을 내리려고 했다. 그러자 도양열은 이렇게 아뢨다. “당시 대왕께서 나라를 잃으셨을 때, 저는 짐승 잡는 직업을 잃었습니다. 이제 대왕께서 나라를 찾으시고 저 또한 제 직업을 되찾았는데 무슨 상을 내리신단 말입니까!” 楚昭王失國, 屠羊說走而從于昭王. 昭王反國, 將賞從者, 及屠羊說. 屠羊說曰 : “大王失國, 說失屠羊 ; 大王反國, 說亦反屠羊. 臣之爵祿已復矣, 又何賞之有!” 『장자莊子』「양왕편讓王篇」 범려가 간언하여 말했다. “아니 되옵니다. 제가 듣기로 무기는 흉기이고, 전쟁은 덕을 거스르는 것이며, 다툼은 일 가운데 제일 못난 것입니다. 남몰래 ..

떠나야 할 때 떠난 사람-범려范蠡②

-문 열기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를 펼치면 범려范蠡를 만날 수 있다. 중학 시절이었을까, 춘추시대 미녀로 이름난 서시西施가 범려의 곁에 있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었기에, 사마천을 만나면서『사기』곳곳을 훑었지만 서시라는 이름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는 민간에 떠도는 밑도 없는 이야기를 모은 야사에나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사실도 늦게야 알았다. 그러다가 중국정법대학 리샤오李曉 교수의『상고지혜商賈智慧』를 만나며「화식열전」을 새로이 또 펼쳤고, 이제 범려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부자라면……’, 역사의 무대에 영광스럽게 부활시켜야지, 이렇게 생각했다. *『상고지혜商賈智慧』...리샤오, 商賈智慧, 廣西師範大學出版社, 『중국 옛 상인의 지혜』로 인간사랑에서 출판. 옮긴이 이기흥. 이로부터..

중국의 첫 번째 부자 범려范蠡①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중국 옛적에도 권력이 있으면 돈도 따른다고 했겠다, 춘추 말엽 중국 동남방에 치우친 큰 땅, 월越 나라 군주 구천勾踐을 재기하게 만든 범려쯤 되면, 재물을 통째로 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범려는 현명한 인물이었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공성신퇴功成身退'를 몸소 실천했다. 공을 세워서 이룬 뒤에는 자리를 물러나는 지혜, 그렇다,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지식'이라지 않고 '지혜'라고 이른다. 때는 기원전 536년, 춘추시대 초楚 나라 땅에서 태어난 범려는 집안은 비록 한미했지만 끊임없는 자기 연마로 박학다재했다. 이런 그를 당시 초나라 위정자들은 알아주지 않았다. 정치가 어둠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런 곳에서 제 뜻을 펼칠 수 없음을 알았기에 동쪽..

다다익선多多益善

. 多 - 많다. . 다다多多 - 아주 많다. . 익益 - 더욱, 한층 더. . 선善 - 좋다, 훌륭하다. .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음. . 출처 -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유방이 서한을 세우며 스스로 황제라 칭한 뒤, >한신韓信을 초왕楚王에 봉한다. >얼마 뒤, 유방은 한신이 항우의 옛 부하 종리매와 함께 모반을 획책하고 있다는 정보에 접한다. >유방은 자기 곁의 모사 진평의 계책에 따라 >자신이 운몽택으로 순유할 작정이라고 거짓으로 알린 뒤, >여러 제후들을 진陳 땅에 모이라고 널리 명령을 내렸다.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내리고 유방 앞에 나타났다. >유방은 한신을 그 자리에서 체포하여 낙양으로 압송했다. >이때, 유방은 한신이 모반을 획책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초왕으로 그대로..

사자성어 & 말 2021.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