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史記>에서 만난 여인 4

자객 섭정의 윗누이 섭영

전국시대 초기, 한韓 나라는 칠웅 가운데 상대적으로 약소한 제후국이었다. 하지만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 따르면 한나라도 신불해申不害가 펼친 개혁이 성공을 거두며 다른 제후국들이 함부로 넘보지 못했던 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불해는) 학술로써 한나라 소후昭侯에게 유세하여 재상이 되었다. 그는 안으로는 정치와 교육을 바로 닦고 밖으로는 제후들을 상대하기를 열다섯 해 동안 했다. 결국 그가 자리에 있을 때 나라는 다스려지고 군대는 강하여 한나라를 쳐들어오는 자가 없었다. 속의 위 원문을 이어 붙인다. 學術以干韓昭侯, 昭侯用爲相. 內修正敎, 外應諸侯, 十五年. 終申子之身, 國治兵彊, 無侵韓者. 칠웅의 자리에는 올랐지만 상대적으로 약소했던 한나라도 제 몸 하나 간수하며 제법 어깨를 폈던 시기가 있..

굶어 죽을 관상-허부許負의 예언

'당신은 세 해 뒤에 후侯에 봉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봉해진 지 여덟 해 뒤엔 장군과 승상에 임명되어 나라의 큰 권력을 오로지할 만큼 높은 자리에 앉을 터인즉, 대신들 가운데 당신과 겨눌 자가 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뒤 다시 아홉 해가 지나서 굶어 죽을 것입니다." 서한의 개국 공신 주발周勃의 둘째아들 주아부周亞夫가 후로 봉해지지 않고 한낱 군수의 자리에 있을 때, 하늘이 내린 관상쟁이로 널리 알려진 허부許負가 그의 관상을 보며 한 말이다. 위에 단 세 줄로 인용한 글은 '강후 주발 세가' 가운데 한 부분이다. 후작에 봉해지며 귀하게 될 인물이 굶어 죽다니. 얼굴에 웃음을 띤 채 그 까닭을 자세히 알려달라는 주아부의 요청에 허부는 그의 입을 가리키며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 얼굴 코..

평민 유온劉媼의 꿈

전국시대 말엽, 진秦 나라 군주 영정贏政이 칠웅 가운데 최후의 승자가 되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시황제가 된 이후, 중국 역사에 이름을 올린 황제는 모두 4백여 명이다. 이 가운데 하잘것없는 평민 출신으로 황제가 된 이는 서한西漢을 연 유방劉邦과 명明 나라를 연 주원장朱元璋, 이 둘뿐이다. 절간에서 불목하니로 일하던 주원장이 원元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일어선 홍건군에 참가함으로써 마침내 명나라의 개국황제가 된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만나려는 서한의 개국 황제 유방에 비하면 1천 년 하고도 5백 년도 더 지난 뒤의 일이다. 기원전 256년 섣달 스무여드레, 전국시대 초楚 나라 땅 패풍沛豊에서 태어난 유방이 중국 역사상 평민 출신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최초의 인물이 된 데에는 그의 어머니 유온의 간절..

프롤로그

역사에 커다란 공적을 세우며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을 우리는 앞세워 기린다. 그런데 이들 곁에는 곤경과 좌절로 비틀거리는 상대를 따스한 말 한 마디로 안심시키며 일으켜 세운 여성도 있다. 지혜와 총명에 더하여 따스한 모성이 곤경과 좌절에 빠진 남성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살리며 역사에 우뚝 세운 예를 역사는 기억한다. 이와는 달리 사람으로서는 차마 하지 못할 짓을 저지른 여성도 없지 않다. 그 악랄함이 인간이 가야 할 길을 한참 벗어났기에 역사는 또 이들을 기억한다. 역사는 낮은 곳에서 한평생을 보냈던 인물을 높은 무대에 올려 부활시키기도 하지만, 살아생전 큰 권력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못할 짓 마다않던 인물을 다시 무대에 올려 이들의 종아리에 회초리를 안기기도 한다. 사마천의 도 다르지 않다. 사마천도 ..